그것이 꼭 죽어봐야 아는 일이던가
한국 영화를 보며,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나 싶다. 수 없이 빠져드는 몰입감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그리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까지. 단점이 있을까 싶은 이 영화다. 영화를 보던, 상영관 내에 많은 관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 중간에 화장실을 갔다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시간 조금 넘는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이 영화의 몰입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뒤로 갈수록 조금씩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 라는 말처럼 말이다. 부풀어 있는 풍선의 입구를 열어, 조금씩 바람이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늘로 찔러서 터트리는 것이 필요했다고 본다.
이 글은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용순]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청소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어른의 자세를 비슷해 보인다. 어쩌면, [죄 많은 소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든다.
영화 [용순]에서도, 선생님이 학생인 ‘용순’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를 다그치고, 어떤 행동을 강요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원했던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아마, 모든 학생들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을 달래 줄 사람이 필요하다. [죄 많은 소녀]에서 주인공인 ‘영희’는 ‘경민’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먼저 죽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은 들은 선생과 형사의 태도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에게 ‘왜 죽으려고 하느냐?’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을 그녀에게 오히려 화를 내며 그녀를 나무랐다. 그들에게는 이미 꺼진 불에 다시 불을 붙이려는 잔불로 보인 것 같다.
이런 내용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한 번 더 나온다. ‘영희’의 얼굴에 멍이 든다. 선생은 얼굴의 멍에 대해 형식적인 이야기만 할 뿐, 왜 들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선생이 정말 ‘영희’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학생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영희’를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생들은 ‘경민’의 죽음이 학교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다. 자신들의 제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 일은 사건이기 때문에, 이 사건을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장례식에도 애들을 사고만 치는 사고뭉치로 생각하는 것 같다. 선생은 학생들을 챙기기보다는 교장이라는 작자를 챙기기 바쁘다. 교장이라는 사람도, 학생보다는 자신의 조문이 더 중요하다. 또한, ‘영희’의 병문안도 자발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학생이 참석한 것을 보면 도대체 그에게 학생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선생들에게 아이들은 자신들이 책임을 가지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영화에 나온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다. 형사도 진심으로 ‘영희’가 걱정되었다면, 사건이 종결되어도 그녀를 종종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종결된 후에는 경찰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말 정 없는 세상이다.
그 소녀의 죄는 무엇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많이 든 생각이다. ‘과연, 이 소녀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직까지 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한 사람들은 죄가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바로 ‘영희’였던 것이다.
어떤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결론지으려고 한다. 특히나 피해자, 이 영화에서는 ‘경민’의 부모일 것이다. 모든 부모가 같은 생각이겠지만, 자신의 자식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자식이 문제가 아니라 남의 자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경민’의 엄마는 ‘영희’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딸의 죽음을 끝까지 밝히고 싶어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죽은 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영희’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보여졌다. ‘경민’의 장례가 끝난 후에도 그녀는 ‘영희’를 찾아가서 그녀를 챙기는 듯한 행동을 한다. ‘경민’의 엄마는 ‘영희’가 진짜 가여워서 그랬던 것일까, 복수를 하는 것일까. 사실, 어떤 쪽이던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그녀는 감당 못할 진실에 알게 되면서 그녀의 삶에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이다. 때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희’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 상황 자체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영화적 상황이라기보다는 그 현실이 너무 싫었다. 그녀는 학교, 같은 반 학생들에게 괴롭힘도 당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깃거리로 입방아에 오르고 내렸다.
늪에서 겨우 빠져나온 ‘영희’를 다시 늪에 던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영희’가 자신의 반 친구들에게 했던 인사가 아주 인상적이다. 결국, 죽음의 완성은 범인이 잡히는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범인이라는 것은 진짜 원인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무언가 일이 벌어졌을 때 그 탓을 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 탓을 할 대상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그저 말 한마디면 된다. 말 한마디면, 사실이 아이여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되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희’가 자신의 친구를 때린 후 안아준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해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고, 당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언젠가 터질 폭탄을 서로에게 돌리기만 하는 것이다. 아마, 나한테는 안 터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너무 의심만 받는 것은 아닐까 싶다. 생리 때문에, 양호실에 온 ‘영희’를 의심하던 양호 선생님. ‘영희’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던 형사. ‘영희’가 자신이 먼저 죽으려고 했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화만 내는 ‘선생’. 그리고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말하는 자제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 집 앞에서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하며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현실.
이 영화에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들으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그것들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지낸다. 선생도 학생들에게 잘 지내라고 말만 할 뿐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서투른 그들은 누군가의 죽음에도 서투르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그 죽음의 원인 제공자에 대한 증오를 통해 자신들의 우정을 다질 뿐이다. 어른들이 신경을 안 쓰고 있는 사이에 그 어른과 똑같은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힘, 연기의 힘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주연인 ‘전여빈’ 배우를 이야기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내내, [죄 많은 소녀]라는 영화 제목처럼 그녀가 품고 있는 한과 이야기들이 그녀의 얼굴 표정만으로도 보였다. ‘전여빈’ 배우는 ‘이상희’ 배우와 더불어 ‘독립영화의 전도연’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연기와 다양한 작품을 보여줬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 그만큼 그녀의 연기는 검증이 되었고, 그 연기를 이번 작품인 [죄 많은 소녀]에서 유감없이 보여줬다.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모든 사람이 화장실에서의 연기를 말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영화 초반부 취조를 받는 장면이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눈물이나, 표정, 대사 톤까지 모든 것이 ‘영희’였다. 그녀에게 무언가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것과 그가 받고 있는 압박감이나 불안함을 너무 잘 보여줬다. 그리고 그녀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했던 ‘유재명’ 배우(형사 역)와 ‘서영화’ 배우(경민母 역), 그리고 담임 역을 했던 ‘서현우’ 배우의 연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서현우’ 배우는 이 영화에서 담임선생님이 보여줘야 하는 느낌 그 자체였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 영화의 가장 중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이 영화 전체에서 주연인 ‘전여빈’ 배우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경우, 영화의 장르상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편집이나 음향편집으로 이어갈 수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이 중요하다. 어떤 한 배우가 다른 배우들과 다른 톤으로 연기를 한다면, 이 영화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것은 배우끼리의 케미도 중요하지만, 감독의 디렉팅이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정하는 사람은 감독이다.
감독의 디렉팅을 통해 연기를 못하는 배우라도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잘하는 사람이라도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것은 감독이 배우에게 극 중 인물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들도 시나리오 숙지를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컷 연결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지는 않다. 모든 스태프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일은 ‘김의석’ 감독은 잘 해냈다. 첫 장편영화를 잘 마무리한,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한국 영화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영화 같다.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을 보면서 한숨과 실망이 가득했었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한 방을 주는 영화 같다. 물론, 단점이 아예 없는 영화는 아니다. 결말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타이밍이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후반부에서 힘이 빠지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모양새는 아주 좋다. 한국 사람들이 원하는 ‘무엇을 말하는가’도 잘 부합하고, 긴장감이나 완성도도 괜찮다. 상업영화에서는 나오기 힘든 장르지만, 이런 영화들이 상영이 많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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