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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Sep 18. 2018

[영화] 죄 많은 아이

그것이 꼭 죽어봐야 아는 일이던가

한국 영화를 보며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나 싶다수 없이 빠져드는 몰입감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그리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까지단점이 있을까 싶은 이 영화다영화를 보던상영관 내에 많은 관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영화 중간에 화장실을 갔다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시간 조금 넘는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이 영화의 몰입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단점이라고 한다면뒤로 갈수록 조금씩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박수 칠 때떠나라’ 라는 말처럼 말이다부풀어 있는 풍선의 입구를 열어조금씩 바람이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늘로 찔러서 터트리는 것이 필요했다고 본다.

 


이 글은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용순]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영화의 분위기는 다르지만청소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어른의 자세를 비슷해 보인다어쩌면, [죄 많은 소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어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든다.

 

영화 [용순]에서도선생님이 학생인 용순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를 다그치고어떤 행동을 강요하려고 한다하지만그녀가 정말 원했던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아마모든 학생들이 아니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그리고 자신을 달래 줄 사람이 필요하다. [죄 많은 소녀]에서 주인공인 영희는 경민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자신이 먼저 죽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그 말은 들은 선생과 형사의 태도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 것이 아닐까 싶다그녀에게 왜 죽으려고 하느냐?’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을 그녀에게 오히려 화를 내며 그녀를 나무랐다그들에게는 이미 꺼진 불에 다시 불을 붙이려는 잔불로 보인 것 같다.

 

이런 내용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한 번 더 나온다. ‘영희의 얼굴에 멍이 든다선생은 얼굴의 멍에 대해 형식적인 이야기만 할 뿐왜 들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선생이 정말 영희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학생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영희를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선생들은 경민의 죽음이 학교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다자신들의 제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다그들에게 이 일은 사건이기 때문에이 사건을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장례식에도 애들을 사고만 치는 사고뭉치로 생각하는 것 같다선생은 학생들을 챙기기보다는 교장이라는 작자를 챙기기 바쁘다교장이라는 사람도학생보다는 자신의 조문이 더 중요하다또한, ‘영희의 병문안도 자발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학생이 참석한 것을 보면 도대체 그에게 학생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선생들에게 아이들은 자신들이 책임을 가지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단순히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이 영화에 나온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다형사도 진심으로 영희가 걱정되었다면사건이 종결되어도 그녀를 종종 찾았을 것이다하지만사건이 종결된 후에는 경찰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정말 정 없는 세상이다.

 


 

그 소녀의 죄는 무엇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많이 든 생각이다. ‘과연이 소녀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직까지 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하지만이 영화 속에 등장한 사람들은 죄가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그 사람이 바로 영희였던 것이다.

 

 어떤 일이 생기면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결론지으려고 한다특히나 피해자이 영화에서는 경민의 부모일 것이다모든 부모가 같은 생각이겠지만자신의 자식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자신의 자식이 문제가 아니라 남의 자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경민의 엄마는 영희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물론그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딸의 죽음을 끝까지 밝히고 싶어할 것이다그것이 우리가 죽은 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영희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보여졌다. ‘경민의 장례가 끝난 후에도 그녀는 영희를 찾아가서 그녀를 챙기는 듯한 행동을 한다 ‘경민의 엄마는 영희가 진짜 가여워서 그랬던 것일까복수를 하는 것일까사실어떤 쪽이던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결국그녀는 감당 못할 진실에 알게 되면서 그녀의 삶에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이다때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희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그 상황 자체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영화적 상황이라기보다는 그 현실이 너무 싫었다그녀는 학교같은 반 학생들에게 괴롭힘도 당했다그리고 그들의 이야깃거리로 입방아에 오르고 내렸다.

 

늪에서 겨우 빠져나온 영희를 다시 늪에 던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영희가 자신의 반 친구들에게 했던 인사가 아주 인상적이다결국죽음의 완성은 범인이 잡히는 것이다적어도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그 범인이라는 것은 진짜 원인이 아니어도 된다그냥무언가 일이 벌어졌을 때 그 탓을 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그 탓을 할 대상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그저 말 한마디면 된다말 한마디면사실이 아이여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그리고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되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희가 자신의 친구를 때린 후 안아준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해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고당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언젠가 터질 폭탄을 서로에게 돌리기만 하는 것이다아마나한테는 안 터질 것이다.

 

 그렇다면그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너무 의심만 받는 것은 아닐까 싶다생리 때문에양호실에 온 영희를 의심하던 양호 선생님. ‘영희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던 형사. ‘영희가 자신이 먼저 죽으려고 했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화만 내는 선생’. 그리고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말하는 자제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집 앞에서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하며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현실.

 

 이 영화에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들으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결국그들은 스스로 그것들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지낸다선생도 학생들에게 잘 지내라고 말만 할 뿐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모든 것이 서투른 그들은 누군가의 죽음에도 서투르다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그 죽음의 원인 제공자에 대한 증오를 통해 자신들의 우정을 다질 뿐이다어른들이 신경을 안 쓰고 있는 사이에 그 어른과 똑같은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힘연기의 힘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주연인 전여빈’ 배우를 이야기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너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영화 내내, [죄 많은 소녀]라는 영화 제목처럼 그녀가 품고 있는 한과 이야기들이 그녀의 얼굴 표정만으로도 보였다. ‘전여빈’ 배우는 이상희’ 배우와 더불어 독립영화의 전도연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연기와 다양한 작품을 보여줬다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그만큼 그녀의 연기는 검증이 되었고그 연기를 이번 작품인 [죄 많은 소녀]에서 유감없이 보여줬다.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모든 사람이 화장실에서의 연기를 말 할 것이다그와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영화 초반부 취조를 받는 장면이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한다그녀의 눈물이나표정대사 톤까지 모든 것이 영희였다그녀에게 무언가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것과 그가 받고 있는 압박감이나 불안함을 너무 잘 보여줬다그리고 그녀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했던 유재명’ 배우(형사 역)와 서영화’ 배우(경민母 역), 그리고 담임 역을 했던 서현우’ 배우의 연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특히, ‘서현우’ 배우는 이 영화에서 담임선생님이 보여줘야 하는 느낌 그 자체였다이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 영화의 가장 중점이라고 생각한다어찌보면이 영화 전체에서 주연인 전여빈’ 배우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경우영화의 장르상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편집이나 음향편집으로 이어갈 수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이 중요하다어떤 한 배우가 다른 배우들과 다른 톤으로 연기를 한다면이 영화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이것은 배우끼리의 케미도 중요하지만감독의 디렉팅이 가장 중요하다실제로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정하는 사람은 감독이다.

 

감독의 디렉팅을 통해 연기를 못하는 배우라도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잘하는 사람이라도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이것은 감독이 배우에게 극 중 인물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배우들도 시나리오 숙지를 하지만전체적인 구성과 컷 연결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지는 않다모든 스태프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그 일은 김의석’ 감독은 잘 해냈다첫 장편영화를 잘 마무리한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한국 영화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영화 같다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을 보면서 한숨과 실망이 가득했었다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한 방을 주는 영화 같다물론단점이 아예 없는 영화는 아니다결말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타이밍이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후반부에서 힘이 빠지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그럼에도 이 영화의 모양새는 아주 좋다한국 사람들이 원하는 무엇을 말하는가도 잘 부합하고긴장감이나 완성도도 괜찮다상업영화에서는 나오기 힘든 장르지만이런 영화들이 상영이 많이 되었으면 좋겠다.

 

 

4.5 / 5  그것이 꼭 죽어봐야 아는 일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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