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스포일러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우는 속담입니다. 무언가 이상하게 보이신다면, 정확하게 보신 겁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가 올바른 속담입니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소중하고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 속의 사회에서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다른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어스]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본래 제목이 [데칼코마니]로 제작된 것처럼 이 영화 또한 상류층 가족과 저소득층(난민) 가족의 가족 구성원을 동일시하여, 마치 같은 가족이지만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좋은 반응을 보였던 [어스]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이해가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철학적 메시지나 이야기의 문제가 아니라 [어스]는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생충]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때문에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막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기생충]은 [어스]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가 될 것입니다.
앞선 영상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기생충]은 영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것이 영화라고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설정들은 많은 나라에서도 공감하고 있었고, 다양한 장르와 상징적인 요소들이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시켜주는 매력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영화도 누군가는 재미없게 볼 수도 있습니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가 호불호 갈리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포함한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만족하지 못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론가와 관객의 반응이 일치하는 영화 자체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작품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영화의 재미까지 있는 그런 영화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기생충]의 등장은 한국 영화계에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송강호 배우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의 봉준호 감독을 만든 것은 관객 여러분의 힘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관객들이 그의 영화에 좋은 반응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영화 [괴물]을 통해서 천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상업성에서는 이미 인정을 받은 감독입니다. 그런 [괴물]에 단순히 재미만 녹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주제의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관객들은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되었을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은 출연한 모든 배우에게 큰 커리어가 될 것입니다. 단순히, 영화가 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출연한 모든 배우가 좋은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매력을 보여준 배우는 조여정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연기력은 이미 인정을 받았습니다만, [방자전]에서의 노출이 사람들에게 너무 크게 주목을 받으면서 그녀의 노출 이미지가 강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때문에 뒤에 출연한 작품들도 [후궁], [워킹걸], [인간중독] 등의 청불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그녀를 영화에서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기생충]에서 그녀는 정말 그녀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연교라는 역할을 통해 유감없이 보여줬고, 그 결과 또한 상당히 좋았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제대로 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완벽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이나,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높이에 대한 표현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수직적인 이미지가 많이 강조된다는 것을 영화를 보신 분들은 모두 공감할 수 있으실 겁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는 처음부터 이 들의 높이를 전면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과의 소통 또한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집에서 가장 높은 화장실 변기 앞에서야 남들과 비슷한 높이가 됩니다. 그제야 와이파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박사장의 집에서 여유를 즐기던 이들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또한 상당히 먼 길을 내려가야 그들의 집에 도착합니다. 집 앞 골목에 도착한 이들은 물에 잠긴 길을 마주하게 됩니다. 박사장 네 집 앞마당에 다송이 쳐놓은 텐트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지만, 정작 기택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는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비가 그 친 뒤, 비 덕분에 날이 맑다면서 좋아하면서 ‘전화위복’을 말하는 사람들과 하룻밤에 비 때문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이들의 대비는 이 영화를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는 물론이고, 햇빛 또한 차이가 생깁니다. 집에 있는 통 유리를 통해, 집 안 가득 햇살이 들어오는 박사장의 집과 달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리는 햇빛 또한 특정한 시간대에 조금만 들어오는 반지하의 기택의 집에 들어오는 햇빛의 모습을 통해서도 이들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햇빛이 기택의 집에 들어와서 소파에 앉아있는 기우의 머리에 살짝 비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앞으로 기우가 이 집의 희망이 될 것이라는 작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낮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소독 연기처럼 집 안 소독을 위해서 창문을 닫지 않았지만, 이는 생각한 것보다 더 큰 반향을 불어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연신 기침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택은 이런 예상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이들에게 벌어질 일이 생각과는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경고하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듭니다.
위치적인 요소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박사장의 집에 등장하는 지하실에도 이런 요소가 존재합니다. 집의 지하실, 거기에도 비밀의 문을 통해 더 내려가면, 건축가의 대피 공간용으로 지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문광의 남편, 근세입니다. 그 근세 또한 기택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살기 위해서 박사장의 집에 기생하고 있는 두 가족이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 싸우게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생각해보면, 두 가족 모두 평화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에 조금만 침착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상생을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여유조차 없는 것이죠.
그에 비하면, 연교는 상당히 여유가 있습니다. 기우 및 기정, 기택의 말을 아주 잘 믿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녀는 피해를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겠죠. 기존 가정부였던 문광이 그만두게 되고 박사장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줌마야, 다시 구하면 되는데’라는 대사처럼 그들에게 기택의 가족은 그저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 이상의 인간적인 유대관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나기 위해서는 이런 관계가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죠. 이 점은 다송의 생일파티에 그들을 초대하지만, 수당을 챙겨준다는 말에서도 두 가족은 돈이 아니면, 마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연교가 한 대사 중 하나인 아는 사람에 의한 소개로 인해서만 그들의 관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우 또한 진혁이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부자 집과 사람은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관계 덕분에 기택의 가족은 일을 하게 되면서 상황이 나아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변화합니다. 그 변화점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들이 먹는 술입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보면 이들이 모여서 맥주를 먹는 장면이 있습니다. 민혁이 갑자기 집에 방문하는 장면이죠. 이때, 이들이 먹는 술은 필라이트를 먹고 있습니다. 필라이트는 한국 맥주에서도 가장 단가가 낮은 맥주입니다. 다른 맥주와 달리 맥아 함량이 10% 미만이기 때문에 기타 주류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맥주의 세금이 72%인 것에 비해, 필라이트는 30% 세금이 책정됩니다. 맥주라고 부르지만, 실질적으로는 맥주가 아닌 샘이죠.
그러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서, 그들이 먹던 술은 수입 맥주가 됩니다. 그리고 박사장의 집에서 양주를 먹으면서, 그들의 형편이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술과 함께 먹는 안주 또한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시,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이 점을 눈여겨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경계라는 의미는 영화 속에서는 선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봉준호 감독의 장점은 경계를 잘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어디 하나에 속하지 않고, 그 경계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봉 감독의 특징 때문에 그의 영화는 장르를 하나로 한정 짓기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그의 특징은 [기생충]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선 하면 떠오는 것이 바로 이선균 배우가 연기한 박 사장일 것입니다. 그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바로 기택을 기사로 채용하기 위한 테스트하는 장면입니다. 본인은 테스트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 장면은 누가 봐도 테스트를 하는 것이죠. 박사장은 뒷좌석에 커피를 가득 차 있는 자신의 회사 로고가 있는 잔을 들고 있습니다. 이 잔에 담겨있는 커피가 넘치냐 안 넘치느냐를 보는 것이겠죠. 자신만의 기준으로 그 넘침의 정도에 따라 채용여부가 갈릴 것입니다. 기택은 그 커피를 한 방울도 쏟지 않고 운전을 해냅니다. 여기서 영화는 기택이 운전을 잘한다는 것도 함께 보여줍니다. 단순히 사기를 통한 취직이 아니라, 나름의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뒤에서 이야기할 어떤 점과 맞물리게 됩니다.
이 박사장은 내내 선을 강조합니다. 기택이 운전기사로써 마음에 드는 이유 또한 운전을 잘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가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선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 선을 넘을 때, 대부분의 사람을 불쾌감을 가집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박사장이 하는 이야기는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가 선을 이야기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위선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박사장이 강조하는 선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박사장은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기택의 가족은 그럴 영역 조차 없습니다. 특히, 기우는 자신의 방조차 없습니다. 반지하 방에는 기택, 충숙의 방과 기정의 방만 존재합니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도 버거운 그들에 비하면, 박사장은 그 선을 지킬 수 있는 여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좁은 공간에 있을 필요가 없고, 심리적으로도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사장은 악인과 호인의 경계에 있는 인물입니다. 기택과 그의 가족들에게 상당히 친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 안에서 기택이 박사장에게 ‘그래도 사랑하시죠?’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박사장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연교와 거실에 누워있으면서 이뤄지는 대화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박사장이 기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선에 대한 이야기와 냄새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이 냄새는 꾸준히 등장해서 박사장네와 기택의 가족은 다른 세상의 사람이고,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혹은 이 냄새가 이들이 선을 넘은 것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박사장네 가족에 대해서 안 좋게 보여주는 장면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그냥 돈이 많은 가족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그들을 보여줄 때,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은연중에 계급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모든 일에 항상 밝아 보이고 긍정적인 느낌이지만 그들의 행동들은 영화 속 관객 혹은 기택의 가족들에게 긴장감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기택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들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서 극이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서스펜스가 극 전반적으로 깔리면서,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겉모습이나 말투 및 행동을 통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속일 수는 있어도 그 냄새까지는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영화의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겉모습에 대한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기우가 병원에 깨어났을 때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형사 같지 않은 형사와 의사 같지 않은 의사’ 이 대사를 통해서 그는 보이는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죠. 형사가 형사의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형사가 아닌 것이 아니 듯이, 사람의 겉모습만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박사장은 연교가 집안일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만약, 박사장의 집이 일반적인 가정집이었어도 집안일을 못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유가 있기 때문에 굳이 집안일을 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던 것입니다. 이런 노력하지 않은 모습은 연교의 모습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기정과의 대화 장면에서 연교는 아는 사람을 통한 소개만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 또한 스스로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는 사람을 통한 어느 정도 검증이 되어 있는 것에만 의존하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그들은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서 소개해주려고 하고 사람들이 접근을 합니다. 그런 접근이 없었다면 그들 또한 어떠한 노력을 통해서 사람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기택의 가족이 살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한 것에 비해 박사장의 가족은 비교적 손쉽게 본인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을 얻은 것입니다. 이 또한 현실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노력과 맞닿는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지하 벙커에 살고 있는 문광의 남편은 근세는 종종 주방으로 올라와서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었다고 합니다. 혹시 집에서 집안일을 하시는 분 중에서 지금 냉장고에 뭐가 얼마나 있는지 하나도 모르시는 분 있으신가요? 처음 한 두 번은 몰라도 지속적으로 사놓은 것을 알고 있다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물론, 연교가 직접적으로 집안일을 안 한다는 것 또한 그 이유가 될 것입니다.
사과 5개 중에 1개가 없어진 것은 티가 나지만, 100개 중에 하나가 없어지면 티가 안 나는 것처럼 이미 풍족하게 살고 있는 그들은 두 가족이 기생하고 있었음에도 전혀 모른다는 것이 이 영화의 아이러니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기택의 가족은 꼭 누군가에 기생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면서, 굳이 이 가족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가족들은 각자 잘하는 것이 다 있습니다. 기택은 운전을 잘하고, 충숙은 집안일을 잘하고, 기우는 영어를 잘하고, 기정은 디자인 및 위조를 잘합니다. 그들이 잘하는 장기를 살리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그들은 왜 백수 가족이 된 것일까요?
영화는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겠죠.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잘하는 것이 있음에도,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음에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실직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 중에서 백수 가족에게 왜 아무런 일을 하지 않냐며 그들을 욕하는 관객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일부 그런 관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냥 노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겠죠. 피자 박스를 접는 일을 시작하는 것 또한 노력의 일부 일 것입니다.
특히, 기우가 문서 위조를 하면서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때조차 그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문서 위조는 범죄입니다. 범죄는 범죄지만 그들의 의도는 자신이 살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가 선 해 보입니다. 그런 모습에 관객들도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응원하게 되는 대상이 또 있습니다. 영화의 멜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다혜와 기우입니다. 민혁의 도움으로 기우는 다혜의 과외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기우가 수업 첫날에 다혜에게 기세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마치 자신이 민혁이 된 것처럼 이야기하고 행동합니다. 그리고 민혁이 했던 대사를 똑같이 합니다. ‘나 지금 진지해. 다혜가 성인이 되면 정식으로 결혼할 거야’라는 대사가 그 대사입니다. 민혁이 처음 등장할 때, 충숙은 민혁의 기세가 좋다며 칭찬을 했습니다. 기우 또한 그런 그의 산수 경석을 이어받아서 민혁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세는 기정이 제대로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중요한 소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산수 경석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봉준호 감독님의 직접적인 언급이 있었습니다. 산수 경석은 무엇이라고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산수 경석의 가장 큰 의미는 민혁의 존재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시작은 이 산수 경석에 의해서 시작합니다. 민혁의 할아버지가 육사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산수 경석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기우는 영화 내내 이 산수 경석과 함께 합니다. 어쩌면, 이 산수 경석을 기우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혁이 산수 경석을 처음 가져왔을 때, 충숙은 먹을 것을 사 오는 것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산수 경석을 닦고 있는 충숙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집이 수해를 당할 때 기우는 수석을 껴안고 있습니다. 기우는 산수 경석이 물 위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산수 경석으로 근세를 죽이려고도 하고, 마지막에는 산수 경석을 냇가에 두고 옵니다.
이 수석이라는 것이 참 희한합니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가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돌에 생긴 무늬를 인간이 자체적으로 판단하여서, 그 돌에 가치를 부여하면 수석이 되는 것이죠. 그중에서도 산수 경석은 그 형태가 자연의 경치 같은 조화를 이룬 것처럼 보일 때, 산수 경석이라 부릅니다. 다른 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저 겉모습이 다르다는 것으로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서 비싼 돈에 거래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처럼, 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기우가 산수 경석을 냇가에 두고 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을 때, 산수 경석은 상당히 귀하고 고가인 물건으로 취급받았지만 다른 돌과 함께 있을 때는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우가 했던 말 중에서 산수 경석이 스스로 떠올랐다는 말 또한 착각이었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냇물에 산수 경석은 떠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시고 나오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것 중 하나가 포스터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오는 배우들의 눈을 가리고 있어서, 누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분간이 안 됩니다. 이런 포스터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의도를 모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포스터는 봉준호 감독이 제작에 관여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포스터를 디자인한 분은 김상만 영화감독 겸 디자이너입니다. 김상만 감독은 [기생충]의 시나리오를 읽고, 촬영 현장을 몇 번 방문한 뒤에 이런 포스터를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이 포스터를 보고 봉준호 감독도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이 동의를 했다는 점에서는 이 포스터가 영화의 내용을 잘 담고 있다 혹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다른 점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보통 영화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약간 거리가 느껴지는 그런 관계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기생충]에서는 조금 다르게 그려지죠. 영화 속 기택은 충숙과 기정에게 핍박받는 사람입니다. 영화 초반, 충숙이 기택을 발로 차며 잔소리를 하는 장면부터 그런 관계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기우는 아버지에게 상당히 호의적입니다. 이런 점은 기우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가족이 구박을 하지만, 기우만은 아버지인 기택을 챙겨주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기우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 이해심에 표현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는 그럼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기우가 시작이 됩니다. 영화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반지하의 창문 통해서 보이는 것들이 나옵니다. 사람의 다리와 자동차, 자전거의 바퀴만 보이는 그런 창문 앞에 간신히 달려있는 양말이 그들의 상황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기우의 머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게 기우로 인해서 모든 가족이 취업을 하게 됩니다. 여러 사건들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도 기우가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책임감은 문광과 근세를 처음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햇살이 닿은 그 머리에는 자신이 아끼던 산수 경석으로 내려쳐지게 됩니다.
이러한 책임감은 단순히 기우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 집안의 가장인 기택과 박사장에게도 그런 책임감이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두 사람이 같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알 수 없는 신경전 혹은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나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그것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두 사람이 인디언 분장을 하면서 나누는 대화의 장면도 그렇지만, 마지막에 기정이 칼에 찔린 뒤에 두 사람이 마주 보는 장면에서도 각 자의 가족을 챙기기 위한 두 가장의 모습이 대비됩니다. 자신의 딸이 칼에 찔렸지만, 마음 편하게 걱정할 수도 없는 그의 모습과 칼에 찔린 기정에 대한 걱정 없이 오로지 다송만 걱정하는 박사장의 모습이 그런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사장은 차 키를 던지라고 합니다. 이 차키가 충숙과 근세에 의해서 전달이 안됩니다. 결국 박사장은 스스로 차 키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근세와 대면하게 되고, 박사장은 그에게 나는 냄새에 코를 막고 그에게 접근합니다.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죠. 그동안 가면과 같은 모습으로 상대에게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던 박사장의 민낯이 공개되는 순간입니다. 기택은 박사장의 행동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냄새에 대한 반응이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 생각하는 근세를 대하는 태도, 기정은 안중에도 없는 그의 태도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박사장을 칼로 찌른 행동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근세와 같이 본인도 지하실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비교적 낮은 지대에 살던 인물들이 높은 제대로 올라와도 결국 그들은 지하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마저도 눈에 안 띄는 곳에 숨어야 하고, 그 숨을 곳은 아래쪽 밖에 없다는 큰 이야기들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택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그렇게 많은 세월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알리 없는 기우와 충숙은 기택을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오히려 형사들이 그들의 뒤를 쫓으며, 기택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옛 박사장의 집에서 깜빡이는 센서등을 통해 기택이 지하실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기우는 기택이 보내는 모스부호를 통해 기택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 속 내용은 자신이 돈을 벌어서 그 집을 사서 아버지와 함께 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내용을 상당히 현실처럼 보여줍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눈이 내리는 반지하 창 밖의 모습과 반지하 방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 기우의 모습입니다. 기우의 편지는 기택에게 전달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이들에게 희망이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영화의 결말은 그들의 현실을 살아갈 것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암시합니다.
영화를 본 뒤에 씁쓸함이 드는 이유는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 혹은 우리의 모습을 영화가 잘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기택은 지하실에서 평생 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를 지하실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다시 그 집에 머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외부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만 올라올 수 있는 그 집은 누군가는 평생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조차 지하실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누군가가 선을 그어 자신의 구역이라고 하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구역이 아닌 곳에서 살기 위한 기생을 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적었지만, 다루지 못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영화 [기생충]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그중에 답은 없습니다. 해석이라는 것 자체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 내용이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이 리뷰를 보는 여러분들도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나름의 해석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해석을 찾아보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해석을 찾아보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되는 것이고, 이런 놀이로 즐길 수 있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을 자막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에 황금종려상을 받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국 관객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해당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면 영화의 모든 것을 100%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생충]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필라이트’라는 맥주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디테일까지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봉준호 감독이 보여준 영화 중에서 가장 봉준호 다운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연스럽게 유머들과 블랙 코미디가 [기생충]에서도 아주 돋보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다룬 이야기를 할 때는 약자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그렇지도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약자에 가까운 저소득층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일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서 불편하다고 하시는 분들 또한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혼자서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저는 신이 났습니다. 기대만큼 영화가 재밌었고,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영화 팬으로서 마냥 좋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부모님과 함께 이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괜히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것은 그들이 살기 위해 했던 노력만큼, 당신의 세월 또한 그리 녹록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져서 저도 괜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냥 혼자서만 봤다면, 전 이런 감상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생각하지도 못한 감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내가 이 영화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생충]의 기우라는 인물의 모습이 나의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은 이미 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기우가 기택의 편지를 해석한 기쁨에 편지의 답장을 써 내려갑니다. 자신이 돈을 많이 벌어서 효도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반지하 방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달콤한 상상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의 표정은 아직 밝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기택의 가족은 가난한 삶을 살고 있던 영화 초반에도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름 즐겁게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박사장 집의 거실 테이블 및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마주한 현실은 그들을 더더욱 절망으로 빠뜨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 리뷰를 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뷰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 가짐과 마무리를 하는 지금의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영화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계층은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박사장의 가족과 기택의 가족을 봤을 때, 가족 구성원이 모두 등장하는 장면은 기택의 집이 많았습니다. 다혜와 다송은 항상 과외 및 수업으로 따로 있고, 연교가 직접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박사장 또한 다송과 무전을 할 뿐 스킨십이나 직접 대면하는 장면이 적습니다.
그에 비하면 기택의 가족은 거의 대부분 함께 합니다. 돈을 벌었다고, 부모님께 밥을 사주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빠의 취업을 위해 힘쓰고, 엄마의 취업을 위해 온 가족이 나섭니다. 이런 부분에서 저는 기택의 가족이 조금 더 이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의 눈에만 기택의 가족이 더 행복해 보였던 것일까요?
[기생충]의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그 행복은 무엇일까요? 영화 속에서는 돈을 나누려고 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행복은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해 봤습니다. 답이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이 환하게 웃는 장면을 생각해봤습니다. 박사장과 연교가 웃는 모습은 크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물들 또한 인물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얻는 것 같습니다. 기정이 기사식당에서 밥을 사줄 때, 기택의 식구들이 모여서 맥주 한 잔 할 때, 박사장의 집 거실에서 기택의 가족이 술 한잔을 할 때 등 무언가를 함께하고 있을 때 인물들은 웃고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그런 것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현실 속에서도 분명 행복은 존재하고 있고, 그 행복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항상 자각하지 못한다고 있습니다. 삭막한 현실 속에서 기택이 웃으며 살 수 있던 이유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저의 리뷰는 여기까지 입니다. 긴 리뷰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리뷰를 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영화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른 영화 리뷰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