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어셈블!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저항의 역사이자 승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신연 감독은 [봉오동 전투]만의 차별점에 대해서,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최태성 강사가 했던 이야기를 인용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최태성 강사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제의 지배 정책에 대해서는 10페이지가 넘지만, 저항에 대해서는 2페이지밖에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액션 장면일 것입니다. 영화 시작 1시간이 지나고 난 뒤부터는 상당히 많은 전투가 벌어지는 영화입니다. 두 집단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내용보다는 일본군을 유인해야 하는 봉오동 전투의 성격상 도망가고 쫓기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덕분에 영화 속에서는 달리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산 꼭대기를 달리고, 비탈진 돌밭을 달리고, 산을 달리면서 올라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담은 카메라의 움직임도 상당히 역동적입니다. 드론을 이용한 촬영과 스테디 그리고 배우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은 장면 또한 등장합니다. 그리고 과감한 줌인을 사용하여서, 기존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촬영이 더욱 빛나게 하는 점이 바로 다양한 풍경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멋있는 장소가 많이 등장합니다. 영화의 스토리 대부분이 산속에서 이뤄지는 만큼 엔딩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많은 지자체의 로고들은 이 영화가 얼마나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연경관을 찍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은 좋지만 영화는 피할 수 없는 논란이 있습니다. 촬영을 하던 장소가 할미꽃의 서식지로 이 곳을 훼손했다는 지적과 함께 이에 대해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제작사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지적했던 환경단체인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측이 최근 이 논란에 대해서 다시 입장을 내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일부 악의적인 왜곡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동강 할미꽃의 멸종은 사실이 아니며, 해당 촬영 장소는 일반 할미꽃이 있던 장소라고 했습니다. 물론, 일반 할미꽃이라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멸종이 된 것을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사의 원문은 본문에 링크를 남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xportsnews.com/?ac=article_view&entry_id=1151118
그렇다고 영화의 액션 장면이 완벽하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우선, 인물들이 어느 지점에 있고 두 집단의 간격이 어떤지에 대한 표현이 없습니다. 때문에 두 집단은 서로 허공에 총질을 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해철의 검 액션도 과도하게 잘랐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다 보니, 액션을 하는 척만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영화 [사자]에서는 롱테이크를 이용해서 인물의 감정을 표현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최대한 많이 잘라서 긴박함을 유발하려고 했습니다만, 이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져서 전투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위치적인 표현이 가시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작전의 진척도를 알 수 없었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영화의 초반은 봉오동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인물들의 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해철과 장하, 그리고 춘희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사실,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이들의 배경이 영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런 사연들이 모아지는 하나의 지점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지점이 강조되고 있는 부분은 아니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인물들의 배경 설명이 없어도 이 영화는 충분히 진행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2시간 15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반 이상은 전투 장면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때문에 후반부에 갈수록 전투 장면의 지속적인 등장은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전투들이 이어지면서, 긴장감을 이어가다가 그 흐름이 끊기는 구간은 바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장하가 혼자 일본군들과 싸움을 하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영화의 흐름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전까지 치밀한 작전으로 이뤄지고 있던 영화가 갑자기 주인공의 무모한 듯한 모습과 갑자기 등장하는 어떤 인물의 모습은 조금 어리 둥절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 인물이 왜 등장하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겠으나, 이때부터 영화의 집중이 깨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2번을 봤는데, 2번 다 이 지점에서 집중이 깨졌습니다.
---- 스포일러 구간
장하의 누이의 등장은 해철의 등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장하의 어린 시절, 장하는 누이를 자신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해철이 등장하여,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며 그를 보살펴줍니다. 그렇게 해철은 장하에게는 누이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이고, 혼자 남겨진 장하가 죽음을 각오한 순간에 등장한 누이의 모습 이후 해철이 등장하면서 장하에게는 해철이 있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영화 초반에 등장한 장면과도 이어집니다. 해철은 일본군에 의해서 자신의 동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장하가 채워주게 되었고, 영화 속 대사 및 상황을 통해서 둘은 나름의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분명 설명이 되었다면, 충분히 감동적인 장면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투 장면의 분량을 늘이기 위해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감정적인 장면을 최대한 자제하려는 모습 또한 이 장면이 생략된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 스포일러 구간 끝
영화의 주요 액션은 총격전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총격전이 영화의 특징이 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현대의 총격전은 비교적 짧은 거리에서 이뤄지는 액션으로 사격 실력보다는 날렵한 움직임과 상대를 속이는 동작들이 더 중요하게 작용됩니다. 하지만, [봉오동 전투]의 총격전은 비교적 먼 거리에서 이뤄지는 총격전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매복을 하고 있다가 급습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급습에서 느껴지는 통쾌함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거리 총격전에서 느낄 수 있는 스릴은 바로 조준에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중반부에 장하를 노리는 일본군과 그런 일본군을 노리는 병구 사이에서 오는 긴장감이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런 총격전이 흔치 않다는 점 또한 영화의 괜찮은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총격전을 포함한 액션 장면의 모습들이나 의미들도 다 괜찮다고 느껴지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은 점은 필요 이상으로 영화가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피가 마구 튀거나, 목이 잘리고, 잘린 목이 굴러가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초반에 긴장감 조성 및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모습을 보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영화 초반에 호랑이가 나오는 장면들에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장면은 호랑이를 한반도로 비유하여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독의 입장에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철창에 갇혀있는 호랑이와 난도질당하는 호랑이 모두 한반도의 상황을 표현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원신연 감독의 특기가 스릴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연출은 그의 특기를 살리는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잔인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특히나 일본군의 극악무도함이 필요 이상으로 표현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독립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뮤지컬 [영웅]은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영웅]이 보이는 태도는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 뮤지컬의 주인공인 안중근의 업적과 고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 그리고 인간 안중근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영웅]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것보다는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웠던 안중근이라는 인물과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항의 역사를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나쁘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저항하고 승리했던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저급한 행동에 우리까지 저급하게 대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저항의 역사, 승리의 역사에 대해서 보여주고 싶었다면, 극악무도한 행동을 일삼는 일본군의 모습은 자제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준 뒤에 독립군의 승리를 보여준다면, 그 승리가 더욱 통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많은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 하는 감독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한 모습은 보였습니다. 전국에 다양한 사람들이 독립군이 되었다는 점을 각자 다른 사투리를 쓰는 상황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도 모자라서 해철이 그들에게 다시 한번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관객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독립군의 시선에서 영화를 풀어내었다면, 그들의 고민과 사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유키오의 존재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스스로의 행동을 보면서 반성하고, 부끄러운 줄 알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느껴졌습니다. 이를 위해서 만행에 대한 표현과 유키오라는 캐릭터가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하려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메시지에 대한 표현이 조금 부족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호랑이에 대한 모습도 그렇고, 유키오, 춘희와 개똥이 그리고 끝끝내 살아난 일본 장교 등 영화 속에는 여러 장치들을 통해서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모습들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이 모든 요소들을 눈치챌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도 그것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화는 성수기 개봉한 영화인만큼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투라는 확실한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저항, 승리의 역사를 그리는 영화입니다. 감독도 독립신문의 내용을 참고하여서 영화를 제작했다고 했던 것처럼 역사 고증에도 신경을 쓴 듯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반일 감정을 조금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촬영 중 생긴 생태계 파괴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조로운 캐릭터까지 굳이 따져보자면 단점이 더 많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