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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Aug 09. 2019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 리뷰

종교보다 순수함과 추억


제목만 들었을 때는 종교를 완강히 거부하는 인물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호시노 유라라는 아이가 왜 예수님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제목입니다.




적은 변화의 결과

일본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상당히 명확한 편입니다.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와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듯한 영화의 톤이 일본 영화의 특징이고, 이를 좋아하는 마니아분들 또한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일본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적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변화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물의 변화 혹은 공간이나 앵글 등이 있겠죠. 한 영화 안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도전적이거나 실험적이거나 과감한 시도를 하는 횟수가 비교적 적습니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통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들게 만듭니다.


이렇게 적은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얻는 효과는 변화를 더 돋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앵글과 비슷한 장소들이 쭉 보여주다가, 조금의 변화만 주어도 관객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같은 장소를 찍는 카메라 앵글의 변화입니다. 영화에 어떤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유라의 집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 기존에 보이던 카메라 앵글과 다른 위치에서 가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 교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약간 기울어져 있는 앵글로 촬영한 장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화려한 영화에서 나왔다면,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화려하고, 과감한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에서는 어떤 변화에서 대해서 강조할 때는 더욱 과감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클로즈업을 주로 보여주던 영화는 더욱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클로즈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물의 표정 또한 변화가 없습니다. 주인공인 유라의 모습이 담긴 장면들을 생각해보면 인물의 표정 변화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유라와 마찬가지로 표정 변화가 없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카즈마의 엄마입니다. 유라는 카즈마의 엄마를 보면서, 항상 웃는 얼굴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무표정한 모습을 보여주던 유라와는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카즈마의 엄마는 영화 후반부에 상당히 다른 표정과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서 그녀의 감정에 대해서 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관찰자의 시점 (스포일러 포함)-----

영화는 주인공인 유라를 따라다니고 있지만, 관객들은 유라의 감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표정 변화가 많은 것도 아니고, 감정이나 기분에 대한 표현도 적습니다. 말 그대로 영화는 유라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라가 소원을 빌 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감독의 이야기는 영화의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창호지로 되어 있는 문에 구멍을 내는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이는 유라의 할아버지 생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 가족들이 혼자 계신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곳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유라는 학교의 일정에 따라 기도를 하는 법에 대해 알게 됩니다.

유라가 기도했던 것들이 몇 가지 이뤄지면서, 유라는 종교에 대한 신뢰를 가집니다. 하지만, 그 신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카즈마의 죽음 이후 유라는 많은 기도를 했지만, 카즈마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카즈마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추도사를 읽고 기도 중 나타난 예수를 책으로 눌러버립니다. 이때의 모습이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 있으면서,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창호지에 구멍을 내는 유라가 구멍을 통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감독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영화의 마지막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구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과거 자신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나름의 추측을 해보자면, 카즈마에 대한 안 좋은 소원을 빌었던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유라가 빈 소원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 소원의 내용이 없다면 영화 속 유라가 카즈마에게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고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카즈마에 대해 부러움을 가지고 있던 유라가 안 좋은 소원을 빌었던 것이고, 그것을 예수가 이뤄주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카즈마의 사고에 무표정으로 보였던 것도 이런 이야기들이 반영된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물론, 정확한 사실은 감독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모습은 감독 본인이 투영되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봅니다. 유라의 기도 혹은 행동에 의해서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예수가 카즈마의 병실로 안내할 때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모습은 과거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남아있던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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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영화라고 생각했던 이 영화는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7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가 보여주는 깊이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추억으로 생각하며 지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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