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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Aug 10. 2019

영화 [지구 최후의 밤] 리뷰

해석이 필요합니다?

제목만 들어보면 마치 SF 재난 영화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극히 조용한 미스터리 드라마입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익숙하다고 하실 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영화를 마음에 드는 것만 보려고 했었다면, 이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름 일주일에 4편 정도의 영화를 보자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보게 된 영화입니다. 





이것이 중국 영화다


편견을 가지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사람은 이전에 보여준 모습을 통해서 지금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 대상은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까지 중국 영화는 자본은 많지만, 영화 제작 기술의 부재로 인상적인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자본이 투자된 할리우드 영화는 안 본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중국의 영화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유랑지구]가 괜찮은 평가를 받으면서 중국 영화의 가능성을 보인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국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술력은 돈과 시간이 있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지구 최후의 밤]은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상업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재미는 아니지만, 영화적으로 파고들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일까 환영일까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시작 후 1시간 뒤에 나오는 제목 타이틀입니다. 영화 중간에 타이틀이 나오는 대부분의 경우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영화의 시작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서도 두 주인공이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의 절정에서 제목 타이틀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알려줬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한 여자를 찾는 뤼홍우가 극장에서 잠이 들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뉘앙스를 주고 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는 이전의 이야기들을 1부, 뒤의 이야기들을 2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부에서 보여준 이야기들은 경계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영화는 마치, 주인공의 머릿속에 어지럽게 펼쳐진 기억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것처럼 혼란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행동에 대한 결과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처럼, 유기적인 연결보다는 어렴풋이 떠오는 기억처럼 순간순간의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인물이 꿈과 현실 속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그 상황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는 인물의 외모입니다. 현실의 뤄홍우는 흰머리와 수업을 길러있고, 꿈속 혹은 과거의 그는 깔끔한 턱과 검은 머리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현실과 과거의 이야기를 잘 조합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1부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2부에 반영되어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다른 세계라고 보이지만 모든 것은 한 세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부의 내용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머리를 빨갛게 염색했을 것이라고 예상한 뒤에 2부에 빨간색으로 염색한 여성이 등장하고, 영화의 첫 장면부터 등장한 마이크를 잡은 여성의 손목에는 낡은 시계가 있습니다. 이는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시계와 같은 시계로 이 여성이 뤄홍우가 찾는 완치원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녹색, 사과, 시계, 자몽 등을 통해서 뤄홍우의 과거,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향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현실과 과거 속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로 영화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상당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감독이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에 대해서 100%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느린 호흡과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이야기들과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대사들을 보면서 영화에 흥미를 가지고 보기에는 영화가 주는 단서나 실마리가 너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극장을 나서면서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왜 다시 보고 싶은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어렵고 난해한 영화임에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알게 모르게 단서를 많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은 그 단서의 노출이 적기 때문에 단서라고 알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초반, 뤄홍우는 그녀가 나타나면 자신이 꿈 속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자신의 기억력은 돌과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즉, 그는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고, 그 기억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해석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살다 보면, 100%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요소에 정답을 정해두지 않습니다. 관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관객들과 공유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보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듯 말듯한 기억 속에 있는 단서 하나 없는 그녀를 찾으려고 하는 뤄홍우는 처음부터 그녀를 찾기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릴 적 자주 들었던 음악이 이제는 가물가물해서 어떤 노래인지 찾기도 어렵지만, 종종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머릿속 어딘 가에서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을 완치원으로 표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기억은 선명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하면서 사는 것을 불행한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오늘은 마지막 순간이지만,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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