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의 문을 여는 방법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합니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합니다.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가늘고 길게 혹은 짧고 굵게.
특히나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희망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 [수상한 교수]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큰 성공보다는 크게 망하지 않은 것을 더욱 선호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거스르다
의문의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인 혜정은 유령이 되어서 자신이 살았던 시간을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일이 없는 유령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길을 반대로 걷는다.’ 이 이야기가 영화의 시간 순서를 거슬러 가는 이유가 됩니다.
시간을 거스르는 영화에서 특징적인 것은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시작에 등장한 어떤 남자의 죽음 그리고 혜정의 죽음이 연관이 되어 있는 것처럼 영화는 보여주면서,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떤 내막이 있는지를 쫓아가는 영화입니다. 이런 경우 영화는 그 원인이나 내막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주제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생생활에서는 거스르다는 표현보다는 거슬린다는 표현이 더 많이 쓸 것입니다. 영화 속 혜정 또한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에 거슬리는 것들이 몇 가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자신에게 고백을 한 민성의 존재일 것입니다. 그전까지 자신의 집 앞까지 함께 해주던 그의 고백은 혜정과 민성의 사이를 서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혜정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어둠은 그전과 다르게 더욱 무섭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도와달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것이 혜정에게 두 번째로 거슬리는 부분일 것입니다. 어떤 아이의 모습을 본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고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작지만 선명하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혜정은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옵니다.
방으로 돌아온 혜정은 방의 불을 켜지만,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로 거슬리는 부분일 것입니다. 혜정은 그런 형광등의 불을 꺼버립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혜정은 방으로 들어갔지만 깜빡거리는 불은 꺼지지 않았고, 그날 혜정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빛과 빚
또 다른 주인공인 효연은 어린 나이지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살게 된 효연과는 반대로 혜정은 자신의 선택으로 타인의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합니다. 이런 형태로 두 인물은 전혀 반대된 성격과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영화 속 효연은 의도적으로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빛이 없는 곳으로 숨는 모습이 몇 번 등장합니다. 지연의 방에 숨어있는 효연은 지연을 찾는 외침에 방구석으로 숨는 장면이 등장하고, 언니와 함께 있던 호텔에서도 암막 커튼 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으로 빛이 직접적으로 쐬어지는 장면이 클라이맥스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채 사무실에 있는 그녀는 켜져 있는 불을 끄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은 깜빡이면서 영화가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혜정의 모습을 보면 이런 깜빡임이 영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런 빛의 깜빡임이 꽤 자주 등장합니다. 혜정의 방에서도 등장하지만, 가로등의 깜빡임도 잠깐 등장하는 등 영화는 이런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등장시킨 이유를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작은 외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목소리
혜정은 영화의 마지막에 민성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은 돈을 빌리는 것도 싫고, 빌려주는 것도 싫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는 빚을 지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지만, 이는 혜정의 성격을 표현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눈에 띄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 혜정의 태도와 함께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본래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빚을 지면서 유지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인이 나에게 신세를 지고, 그리고 그것을 핑계로 만나게 되거나 내가 다른 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인간관계도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에 민성은 혜정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표현으로 그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그런 민성을 보며, 혜정은 평소에 자신이 몰랐던 그의 모습을 알게 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혜정은 그제서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혜정은 500만 원 때문에 사채를 쓰기도 하냐는 질문을 하고, 둘은 그럴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전의 혜정은 자신 말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도와달라는 아이의 목소리에도 그냥 지나치며, 민성의 고백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 수양이 등장합니다.
만약, 혜정이 죽음을 맞이한 상태가 아니었어도 이런 부탁을 했을까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줄 수 있을 것이라 보이는 수양에게 끈질긴 부탁을 합니다.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 생각됩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면, 나중에는 그 사람이 나에게 부탁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은 한두 사람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 사회 전체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유령이 되어서 알게 된 것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깜빡이던 불과 혜정의 모습을 연관 지어서, 영화의 앞 장면으로 가져와서 생각해본다면, 혜정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일들은 혜정이 눈에 띄지 않으려고 남들이 가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입니다. 유령이 되어 시간을 거스르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기 때문이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뜻에 거스른 적이 없다면 말이죠.
유령이 사라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느낌이 들 것이고, 무언가 빠트린 것 같은 느낌일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잊어버렸을 때, 왔던 길을 되돌아가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그 문을 열 수 있던 것이라고 생각 봅니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는 비교적 흔한 전개 방식과 코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구석구석 디테일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은 느껴졌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감독의 첫 장편이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전개가 늘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가 가장 완벽한 상태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영화에서는 편집되었어도 괜찮을 장면들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전개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지고, 이 지루함 때문에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과는 별개로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이나 상태를 영화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 두 캐릭터는 현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인물들이 타인을 조금 이해하는 결말은 영화가 말하는 어두운 밤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