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는 살기 위해 부지런히 날개짓을 한다
영화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
이미 25개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면서, 여러 감독들의 찬사를 받은 [벌새]는 그 칭찬만큼이나 좋은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관람한 많은 분들의 반응이 좋을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1994년 하면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계신가요? 영화는 그 기억 속으로 관객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김보라 감독의 전작인 [리코더 시험]이라는 단편 영화는 단편 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많이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9살 은희는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이런 은희가 리코더 시험을 잘 봐서, 가족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상당히 흥미로운 점은 어린아이의 이야기지만, 희망적이거나 꿈이 가득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벌새]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영화는 가식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당시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가부장적인 가정과 아버지와 오빠의 폭력 그리고 학교의 이상한 선생님 등 그 시대에 존재하고 있던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악인으로 과장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고 있고, 그것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최대한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영화 속 은희는 그런 가정에서 살아가는 여자 중학생입니다. 당시에는 사회적인 지위로 보면 가장 낮은 지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빠에게 맞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반항을 하지는 못하고 그 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아이입니다. 영화는 이 아이의 일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다른 것에 집중하지 않고, 오로지 이 아이가 가는 길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는 은희라는 기차를 타면서 거치는 역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던 영화가, 어느 순간에는 한 점으로 모아 지거나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는 식의 전개는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전개 방식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전개 방식이 아닌 은희를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은희의 주변 인물은 은희의 가족, 친구 지숙과 선생님 영지, 남자 친구 지완과 유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그룹들은 서로를 만나지 않습니다. 은희라는 인물이 없다면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의 구성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구성이 현실에서는 더욱 맞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족과 회사 동료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고, 그들과 친구들도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영화가 현실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 부분은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봤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우선, 전개 자체가 그리 빠르지 않기 때문에 느린 호흡과 컷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런 이유로 영화 자체가 재미를 유도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움직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시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상황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점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같은 상황에 대한 여러 번의 반복보다는 각 장면들이 영화에 차지하는 비중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도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이 변화하기 때문에 늘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긴 편이라서 길다는 생각은 들 수도 있습니다. 조금 독특한 점은 대부분의 독립 영화는 짧은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편 영화를 하던 감독들이 장편 시나리오를 쓰면서 발생하는 어려움 혹은 긴 시간을 끌고 갈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꽤 긴 시간을 상영하는 하지만, 짧게 느껴졌다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영화가 길다는 것은 체감이 되지만, 그 길다는 느낌이 지루하기 때문에 길게 느껴진다는 느낌은 아닙니다. 이는 영화가 긴장감 유지를 잘하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 이 부분입니다. 영화는 믿었던 것은 배신을 하고, 믿지 않았던 것은 의외의 신뢰를 주는 장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죠. 가령 영화 내내 가부장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아빠가 은희가 입원을 하자 우는 모습이 등장한다던가, 은희의 남자 친구인 지완이 다른 여자아이와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는 것이죠.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는 성수대교도 그렇습니다. 아무도 다리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물에게 벌어지는 사건들 또한 전혀 새로운 형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영화의 제목이 벌새인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중학교 2학년인 은희는 작고 어린아이입니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모습이죠. 이런 모습은 앞서 언급한 김보라 감독의 단편 영화 [리코더 시험]의 은희와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은희가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의 관심이 은희에게 쏠리게 되고 그런 이유로 은희는 병원생활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같은 병실에 있는 아주머니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자신을 좋아하는 유리와 자신이 좋아하는 영지 선생님도 자신을 찾아왔기 때문이죠. 어쩌면 은희, 더 나아가서는 세상의 모든 물체에는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성수대교의 균열에 관심을 가졌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관심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큰 사고나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어딘가에는 남아있다는 것이죠. 그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깨진 유리 조각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부모님의 한 차례 싸움을 통해서 유리병이 깨집니다. 당시에는 깨진 유리 조각을 모두 치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치운다고 해서 모두 치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꽤 시간이 지나고, 은희는 이 깨진 유리 조각을 발견하게 되죠.
현실의 이야기로 대입해보면, 하나의 큰 사건을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성수대교의 붕괴나 삼풍 백화점, 세월호 사건 등은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겉으로는 그 흔적들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조각들은 우 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박혀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를 보거나, 일상생활에서 앞에 사건들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잊었다고 생각하던 기억에 떠올라서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단순히, 국가적인 사건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개개인의 성장 환경에서 받았던 충격이나 사건들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어서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은희도 아빠나 오빠의 폭력들이 몸 어딘가에 파편이 되어서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그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 자신도 모르게 반응이 나타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폭력에 반항하는 두 가지 상황이 존재합니다.
은희의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아빠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그 장면에서 아빠는 엄마에게 더 큰 폭력을 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되려 그런 엄마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엄마 또한 그런 아빠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으면서 TV를 보고 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은희가 가족들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에서 은희는 이 상황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이라고 보기에는 그 정도가 약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쌓여있던 것이 있는 것이죠. 이는 앞서 언급한 관심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그전까지 오빠의 폭력에도 참기만 하면서 살았지만, 그 쌓였던 것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한 순간에 화를 내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것이 어느 순간에 폭발하게 되는 것이죠.
모든 감정이나 행동에는 과거의 일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영화의 첫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은희는 집으로 돌아와서 초인종을 누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갑자기 불안해진 은희는 초인종을 여러 번 누르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습니다. 그리고 문을 거세게 두드리면서 집에 있던 엄마를 찾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에 은희는 조용해집니다. 자신의 집이 아닌 아래층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종종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겉보기에는 모두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아파트는 외관은 거의 비슷하여, 동과 호수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구분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초인종을 눌렀지만, 집에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영화의 배경은 94년도여서 전화를 사용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거 저의 어린 시절 집의 열쇠가 없는 경우에는 무작정 앉아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혹은 옆집에서 기다리며,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등장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은희는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죠. 자신이 버려질 수도 있다는 불안에 살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일 것입니다. 영화가 전개되면서도, 은희는 그 누구의 사랑도 받기가 어렵습니다. 위태로워 보이는 관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분명한 것은 은희는 단짝 친구도 있고, 남자 친구도 있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후배와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까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은희는 불안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은희가 불안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을 이야기하라면 은희와 영지의 관계입니다. 우선 각자의 사회에서 두 사람의 위치는 비슷하게 그려집니다. 사람들에게 약간 소외가 된 인물이고,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친 인물로 추정됩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인물 모두 왼손잡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의도를 가지고 캐스팅한 것은 아니지만, 캐스팅을 하고 보니 두 사람 모두 왼손잡이라는 기막힌 우연이 생겼습니다. 그 우연 덕분에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메시지가 더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더욱 확고해진 샘입니다.
은희가 영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어른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지는 아이들을 건조한 태도로 대합니다. 하지만, 그 태도가 불쾌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낮은 사람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대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과도한 배려는 오히려 불쾌함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자신보다 어리다고 무조건 살갑게 대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은희는 영지에게 많이 의지를 합니다. 반대로 영지도 은희에게 의지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인간관계도 한 사람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죠. 영지가 은희에게 소포와 편지를 보낸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은희에게 받았던 것들에 대한 보답인 샘이죠. 그런 영지의 속마음과 내막이 영화에서는 자세히 등장하지는 않지만 영지 또한 은희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많은 영화제와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던 만큼 영화는 좋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완성도가 아주 큰 재미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시는 분에 따라서 이 영화는 아주 지루하고, 따분한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자체도 친절한 편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느껴지는 감상들의 대부분은 영화가 표현하려는 것과 일치한다고 보여집니다. 이는 영화의 해석이 굳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저의 생각입니다. 영화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이게 이런 의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대부분 그 생각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영화가 보여주는 메시지나 이야기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들]을 통해서 한국 독립 영화의 희망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벌새] 또한 새로운 감독의 발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한국 영화계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다음 리뷰는 영화 [블라인드 멜로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