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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Dec 20. 2019

더 큰 행복을 욕심낼 수 없는 사람들

영화 [미안해요, 리키] 리뷰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연출했던 켄 로치 감독의 작품으로 전작과 비슷하게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조명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가 영화의 내용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이걸 한글 제목을 바꾼다고 했을 때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안해요, 리키]라는 제목도 원어 제목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 한국 관객들에게 이해가 될 수 있도록 배급사 측에서 신경을 쓴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한 이유는 이 원어 제목의 문구가 영화에서 등장하는데, 그 의미가 상당히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영화 내에서 딱 두 번 등장하는데, 한 번은 리키의 딸인 리사에 의해서, 또 한 번은 주인공 리키에 의해서 나타납니다. 같은 문구가 등장하지만, 이들이 이야기를 전하려는 대상을 생각해보면, 켄 로치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욱 와 닿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영어에서 이 표현은 주인공 리키의 직업인 배송업무와 연관 있는 문장입니다. 택배를 받을 사람이 없을 때 배송원이 붙이고 가는 배송 안내문이죠. 영화를 본 뒤에 생각해보면, 켄 로치 감독이, 제목을 상당히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영화의 내용으로 생각해보면, 그가 우리를 놓친 것인지, 우리가 그를 놓친 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간단한 감상을 말씀드리자면, 전작에 비해 무기력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전작에서는 주인공이 불합리한 사회와 맞서는 모습이 다뤄진다면, 이번 영화의 리키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는 생활을 보여줍니다. 다르게 보면 영화 [조커]의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를 보다 보면 화가 나고, 답답한 심정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으며, 저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특히나 영화의 결말은 영화가 끝나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많은 영화를 봤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짧다고 생각되는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인 것 같네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할 부분은 배송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배송 기사들은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현실이 한국의 현실과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이입하여서 보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리키가 겪고 있는 갈들이 단순 사회와의 갈등이 아닌 가정 내의 갈등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가정 내의 리키와 셉의 갈등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갈등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편으로는 셉이라는 인물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부모님인 리키와 애비가 자신 때문에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보였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를 좋아하고, 가족과 함께 애비의 출장을 같이 가는 것에도 셉은 좋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가족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죠. 


결국 영화가 말하고 싶은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분명 리키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회사 내에서 누군가는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일도 리키는 성실히 해왔으며, 불평과 불만 가지지도 않았습니다. 담당자에게 인정을 정도였죠.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리키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들에게 조금만 고생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행복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성실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한국 독립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과 비슷합니다. 자신의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성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빠른 속도로 꿈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영화 속 리키에게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감독은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키와 가족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리키가 하는 일은 자본주의에 의해서 생겨난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대부분의 물건을 집 주변 상점에서 구매했던 것과 달리, 온라인 유통 시장이 발달하면서 배송 시장도 자연스럽게 발달되었고, 그 발달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늘어갔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그만큼 늘어난 샘이죠. 개인사업자라는 핑계로 보험이 적용되지도 않고, 휴가가 지급되지도 않으면서, 배정된 일을 하지 못하면 자신의 돈으로 대체 기사를 구하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리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죠. 개인사업자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죠. 심지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일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셉이 다니는 학교 또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셉이 정학 처분을 받고 집에서 컴퓨터를 통해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집에서는 컴퓨터가 없습니다. 애초에 학교 또한 학생들의 집안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런 단적인 상황을 통해서, 사회나 학교나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리키는 너무 가난해서 끼니 걱정을 하거나, 생활이 어려운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여유가 없는 것이죠. 영화 속 리키의 가족은 분명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가정입니다. 현상 유지만을 목표로 살아간다고 하면, 이들은 조금 여유롭게 일을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리키는 원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리키는 자신의 일을 끝까지 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 어떤 누구도 리키에게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해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리키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셉도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했죠. 리키가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들은 리키가 많은 돈을 벌어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을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리키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리키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욕심을 내는 것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이죠. 진짜 문제는 그 노력이 온전한 결과로 돌아오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이뤄지도록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분명 리키는 영화 초반과 같은 상황이더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리키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사람들의 노력을 이용하기만 하여, 그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죠. 리키와 비슷한 삶은 사는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욕심조차 낼 수 없게 말이죠.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강제로 주입시키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에 관객들은 이미 리키의 가족들은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과 상황에 크게 공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무언가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들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저들의 삶이 힘들다는 것을, 대부분의 관객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그들을 한없이 불쌍하고, 가여운 인물로만 그리지 않는 것도 영화의 장점입니다. 영화 사이사이에 리키와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도 많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장면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애비와 리키 모두 편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런 두 사람의 자녀인 셉과 리사도 그들의 자신들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특히나 셉은 자신 때문에 리키가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잘하는 것이 있음에도 리키에게 말을 하려고 하지 않고, 혼자서 해결을 하려고 하는 것이죠. 학교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4명의 가족 모두 자신 나름대로, 서로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서,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 노력이 조금씩 틀어지면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들과 다툼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리키는 자신이 일을 하는 것이 가족들을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가족들은 그가 일하는 것이 아닌 그의 건강이 중요한 것이죠. 건강을 기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바로 그 사람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고, 집 나간 셉의 안부를 걱정하는 것은 서로의 존재가 그들에게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괜히 걱정이 됩니다.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던 리키와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리키. 개인적으로는 리키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관람평 중에는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영화를 천천히 뜯어보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문제가 관심이 많은 저에게는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고, 그 모습이 영화만의 모습이 아닌 가까운 누군가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셉의 마음이 더욱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리키와 같은 처지가 된다면, 저 또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그런 선택들을 해왔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임에도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이야기는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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