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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Dec 20. 2019

260억으로 만든 생각 없이 보기 좋은 영화

영화 [백두산] 리뷰

올해 연말, 가장 주목을 받고 있던 영화 [백두산]이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이 영화가 촬영이 올해 7월 21일에 종료되었는데, 개봉일(12월 19일)까지 약 5개월의 시간 동안 편집은커녕, CG가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물론, 기간이 길다고 퀄리티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CG가 별로 없는 영화라도 후반 작업이 촬영 종료 후 5개월이 걸린다는 것은 조금은 촉박한 일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은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몇몇 CG 장면으로 영화를 판단하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대한민국의 CG를 할리우드의 CG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CG 작업을 한 덱스터 스튜디오의 전작과 비교했을 때, 크게 떨어지는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 감흥은 없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건물과 도로가 무너지면서, 주인공 인창이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등 도심 시가지에서 탈출하려는 장면은 그래도 볼만 했습니다. 카메라 움직임도 차량을 잘 따라갔고, 긴박하게 진행되는 재난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재난 영화를 보려는 이유에 대해서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좋았습니다. [해운대]처럼 재난 영화인데, 재난은 안 나오고, 결말의 신파를 위한 스케치만 1시간 내내 보여주어, ‘도대체 재난은 언제 시작되는 거야?’라고 생각하게 만들지는 않았죠




이 영화에 본격적으로 실망하기 시작한 것은 사운드 믹싱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대사 믹싱에 대한 지적을 할 것입니다. 대사가 잘 안 들리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인데, 극장의 사운드가 별로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성수 MX관에서 봤습니다. 그럼에도 대사가 안 들린 것은 분명한 기술상의 문제입니다. 영화 [우상]에 대한 리뷰를 하면서도 이러한 부분은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극장의 사운드 시스템이 문제라면, 그 시스템에서도 들리도록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죠. 이는 영화 [원스]에서도 나오는 기초적인 이야기입니다.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환경과 비슷한 환경에서도 문제없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작은 영화 유튜브를 하고 있는 저도 그런 것을 고려하는데, 독립 영화나 학생 영화도 아니고, 250억이 쓰인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프로가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적인 부분의 연장선상에서 영화를 보면서 [PMC]와 [신과 함께]가 떠올랐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제작사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관람을 했는데, 앞에 영화들이 떠올라서 찾아보니 [PMC]를 제작한 제작사와 같은 제작사였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두 영화에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남과 북을 소재로 하고 있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미국. 그리고 두 남자의 우정, 남쪽 요원은 하정우. 그리고 [신과 함께]에서 쓰인 CG 레퍼런스가 동일하게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두산의 폭발인데, 염라대왕이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기존에 어디서 본 것 같은 설정과 캐릭터, 그리고 모습까지도 철저하게 덱스터 스튜디오의 CG 기술의 커리어를 위해서 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과 함께]가 많은 사람들의 비판은 들었지만, 많은 돈과 기술적 발전을 보여주었다는 이득을 챙겼던 것을 다시 한번 해보려고 한다는 의도로 느껴집니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백두산이 폭발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영화가 아니라, ‘재난을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재난의 표현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재난을 표현하는 것과 상관없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의 주인공들도 그냥 재난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그들의 예측은 전혀 맞지도 않습니다. 재난 또한 영화상 지루해진다 싶을 때 느닷없이 등장합니다. 



이런 문제점을 제작하는 당사자들도 분명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스토리보다는 재난의 표현에 집중을 한 영화였고, 그렇기에 관객들에게 스토리 상으로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 필요하죠. 그것이 바로 인창, 지영 부부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전체 스토리만 봐도 크게 의미가 없는 내용이죠. 영화의 결말을 보아도 이 내용이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영화의 어느 부분에 인창이라는 인물에게 살아남아야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상당한 속도감을 밀어붙이고 있죠. 다르게 생각하면, 관객들에게 무언가 생각할 시간을 안 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장면을 등장시켜서, 지나간 장면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것이죠. 이는 영화에게 영리한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는 보여주는 것에 중점이 되는 영화이기에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추천하기에 크게 부담 없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내용이나 여러 요소들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을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간다면 크게 나쁘지도 않습니다. [백두산]이 의도한 것이 이러한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의 내용이 부족하더라도 재난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냥 보기에 무난하다는 것이죠.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이 영화에서 원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 개봉하지는 않았지만, 영화 [천문]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관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주연배우의 브로맨스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라는 점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 될 것입니다. 분명 이러한 점은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분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올 것입니다. 같은 값이라면, 제작비가 더 많이 투자된 영화를 찾기 때문에 이 점 또한 영화의 매력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죠.


그렇기에 영화 [백두산]은 철저하게 상업적인 세일즈 포인트들을 모아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블록버스터, 많은 제작비, 화려한 출연진, 재난이라는 키워드는 많은 영화 중에서 [백두산]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들이죠. 하지만, 막상 영화를 관람하면서는 위의 키워드에 해당하는 내용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보다는, 2시간 동안 나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물론, 영화는 어느 정도의 긴장감도 유지되고 있고, 어느 정도의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화려한 출연진과 260억이라는 큰돈이 투자된 콘텐츠에서 느끼는 재미라고 생각하면 상당히 부족합니다. 

[백두산]의 반도 안 되는 돈으로 제작된 [부산행]이 천만이 넘는 관객 수를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 좀비에 대한 표현과 화려한 출연진, 재난이라는 코드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좀비와 재난이라는 공포와 화려한 출연진이라는 키워드 속에서도 가장 무서운 장면으로 꼽은 장면은 김의성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일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소재들을 이용하여, 영화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상당히 잘 녹여내었기 때문입니다. [부산행]의 목적은 무서운 좀비들이 [창궐]하는 세상에서 그보다 무서운 인간이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부산행]만큼의 메시지는 아니더라도 [백두산]에게도 어떠한 목표가 존재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영화의 결말을 통해서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가 조금은 억지스럽더라도 영화의 마지막에 교훈을 주려고 하는 이유가 이러한 것입니다. 어떤 행동이 있다면, 그에 따르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정부의 시스템을 개선한다던가, 인물이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등의 결과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꼭 메시지나 어떠한 결과가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말에 나온 텐트폴 영화가 보여줄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한국만의 사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 [캣츠]의 토마토 지수...) 

재난이라는 코드도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재난영화로 시작한 이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버디무비와 가까운 영화가 됩니다. 이병헌 배우도 한 인터뷰에서 [백두산]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버디무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병헌 배우는 재난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영화 [백두산]은 보이는 것이 전부인 영화입니다. 무언가 뜯어볼 것도 없이, 보고 듣는 것이 전부인 영화죠. 물론, 그것 또한 신통치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몇몇 기사에서 할리우드 CG와 비교를 하는데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물론, 한국의 기준으로 본다면 괄목할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칭찬해주고 싶지만, 언제까지 그런 핑계로 비슷한 형태의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태 다른 한국 영화에서 문제 된 적이 없던 곳에서도 문제를 보이는 것은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이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한국 영화의 부흥과 정확하게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기생충]이 기술적으로 좋은 영화라서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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