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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Dec 31. 2019

과학이야기보단 두 사람의 브로맨스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리뷰

이전에 개봉했던 [시동]과 [백두산] 그리고 [캣츠]까지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연말에 볼만한 영화를 찾는 관객들이 길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천문]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영화들과 장르적 차이가 존재하는 작품이라 절대적인 기준을 두고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좀 나은 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많은 분들이 실망할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영화의 제목을 봤을 때는 장영실의 과학적인 업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세종을 그렸다고 생각했죠. 물론, 영화는 그런 내용으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포커스가 과학적 업적보다는 두 인물의 브로맨스에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천문학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답을 얻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라 느껴졌는데,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과학 혹은 전기 영화보다는 버디 무비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세종이 장영실을 아끼는 모습의 시작은 자신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과학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죠. 장영실의 입장에서는 그런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자신의 능력을 뽐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을 것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감정은 서로에게 인간적인 우정 그리고 그 이상을 보여주려 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만드는 영화가 모든 것을 사실로 만들 수 있는 없습니다. 불가피하게 영화적 각색이 들어가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사실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는 태도가 느껴집니다. 기록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영실의 존재를 견제하는 세력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사극에서는 빠질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항상 비슷하게 그려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임금과 그를 반대하는 관료들, 그리고 그들의 음모를 그리는 것은 사극이라면 필수 조건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부분에서 이 영화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우 배우가 연기한 남손이라는 인물들은 그런 인물의 전형으로 느껴졌지만, 신구 배우가 연기한 영의정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겉으로 보면 기존 사대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취하는 태도는 세종의 뜻에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닌, 견제 및 실리를 추구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는 듯합니다. 세종이 하려는 일이 사대부들에게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지 이야기함과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일에 대해 걱정하는 인물로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사대부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장면에서 강경하게 말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며, 추의를 보고 판단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쩌면 이상적인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결말부에도 세종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라도 이룰 수 있도록 거래를 제안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천문]이라는 영화가 기존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이 영화에는 장영실의 과학적 업적, 세종과 장영실의 우정, 그들을 견제하는 세력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표현하는 시간대가 한 개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화가 보여줘야 할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132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나온 이유로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 할 이야기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했음에도 영화를 보면서 크게 와 닿지 못했습니다. 무언가 하나로 섞이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각 자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영화의 초반에는 장영실의 과학적 재능에 대한 이야기와 장영실을 견제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중반부를 넘어서면 장영실과 세종의 브로맨스와 그를 견제하는 세력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줄기가 약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보다는 흐름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종과 장영실 일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두 인물의 버디 무비에 가까운 영화이면서도, 이들을 연기한 배우들인 최민식, 한석규 배우의 캐스팅이 영화의 세일즈 포인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의 인물 묘사는 상당히 좋고,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이 두 인물을 감독은 자신의 특기인 로맨스로 풀어낸 듯합니다. 영화 [불한당] 이후 한국 영화에서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을 앞세워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감정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들이 꽤 등장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에게 기대를 했던 모습과는 전혀 반대되는 모습이기 때문이죠. 장영실의 업적 및 조선시대의 과학을 기대했던 관객 중 한 명이었고, 그 기대화는 달리 두 남자의 브로맨스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죠.

영화 [불한당]은 범죄 액션이라는 장르의 특징적인 면과 포스터에서부터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애초에 두 남자의 우정이 주요 스토리일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측이 되었고, 거기서 조금씩 전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죠. 그러면서도 영화의 메인 스토리인 범죄 액션의 분위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두 남자의 브로맨스가 아닌 범죄 액션을 기대했더라도 영화는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범죄 액션 장르 속 우정 이야기로 보였던 영화가 어느 순간은 우정 이야기 속 범죄 액션 영화로 자연스럽게 변화한 것이죠.


물론 [천문] 또한 마지막까지 두 사람의 우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그 단계가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두 인물이 감정을 쌓아가고, 서로 의지하게 되는 과정이 등장하지 않아서 간절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극에서 실존 인물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부담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신분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우정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제작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장영실의 과학적 업적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세종과 명의 뜻을 등에 없은 사대부들과의 정치적 싸움으로 보입니다. 그 시작이 과학적인 업적에 대한 것인데, 그 표현이 사라지니 영화는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사대부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올해 연말에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나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의 중심에는 최민식과 한석규라는 두 배우가 존재하고 있고,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코미디들은 3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아닌 기록을 기반으로 한 재해석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보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으며,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자격루 및 여러 도구들의 작동 원리는 보는 것도 꽤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장영실을 통해 여러 도구들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를 보여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러한 점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해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 조선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의 한국이 배울 수 있는 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죠. 세종이 왜 우리의 것을 필요로 했는 지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문]은 나름의 메시지를 주면서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어느 정도의 구색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예상과 다른 스토리 전개가 등장하더라도 나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고, 그런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고, 집중하게 되는 요인으로 두 주연배우의 훌륭한 연기 덕분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기대하시는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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