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한 이야기를 위해 이용된 펭귄
귀여운 펭귄이 나오는 영화로 알고 봤다. 물론, 펭귄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이게 펭귄이랑 무슨 상관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펭귄이 나오는 귀여운 애니메이션을 생각하고 보러 들어갔다면 실망하고 나올 수 있는 영화다. 영화 [펭귄 하이웨이]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관객에게 생각할 이야기를 전해준다기보다는 그냥 이야기 전개 방식이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보다보면, ‘이게 무슨소리야?’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즉, 아무 생각 없이 이 영화를 보면 아무것도 기억에 안 남고, 펭귄과 가슴밖에 생각이 안 날 것이다.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조금은 난해한 이야기 전개 방식을 보여준다. 확실한 건, 아이들과 함께 보는 영화는 아니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렵고, 그 내용도 연구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논리적인 설명이 많다. 영화를 보러 들어가기 전에 학창시절에 배운 연구 및 실험을 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익히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럼 이해가 잘될 것이다. 이들이 연구하는 과정만 이해가 되고, 영화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도 조금은 아쉽다. 왜 자꾸 가슴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영화에서 중요한 해결책도 아닌데 말이다. 일본 애니에서는 이런 것을 소재로 자주 쓰지만, 최근 영화들이 다 별로여서 그런지 이 영화도 가슴을 소재로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화 [가슴배구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가슴이라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언급이 있다. 불량 배구단 학생들이 1승을 하면 선생님의 가슴을 보여준다는 말에 열심히 노력하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는 이 영화는 가슴 때문에 시작했지만, 그들이 노력이라는 것에 대한 가치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이 나온다.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름 감동받은 것이 있었다.
이 영화는 ‘누나’라는 캐릭터를 이름도 없이 남자 주인공이 가슴 타령만 하다가 끝나는 영화로 보인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도 아쉽게 느껴지지만, 이 영화는 영화 나름대로 그것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그것을 마냥 허투루 소비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누나’라는 캐릭터가 이름이 없는 것도 소년이 가슴 타령을 하는 것도 영화 속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바다라는 것이 실제 바다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바다’라는 것에 발생하는 현상들이 실제 바다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상과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해수면의 높이가 바뀌거나, 그리고 이것의 변화에 따라 펭귄들의 숫자가 변하게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따지면,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펭귄의 개체 수가 변화하고, 뭐 그렇다는 거다.
이 이야기를 뭐 이리 어렵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결론은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누나’라는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마존 프로젝트 2’다. 결국, 물이 돌고 돈다고 했다. 윤회 사상을 보여주는 부분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그 바다라는 공간에 들어갔을 때, 시공간이 뒤틀어져 있었다. ‘야오아마’라는 아이가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한다. 사실, 그 아이가 노력하지 않아도 어른이 될 수 있다. 소년이 노력하고 있는 이유는 조금 더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도 미성년이 아니라고 다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입장에서 이 소년은 진정한 어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그 소년이 논리적으로 이것을 풀려고 하는 것이 애초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가끔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논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오야먀’가 훌륭한 어른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지금 이 자체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모르겠다. 나도 궁금하다.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펭귄 하이웨이]라는 제목처럼 펭귄이 육지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고 싶은 것일까? 혹은 그것은 환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영화의 결론은 ‘아오야마’가 세계의 끝이라는 것을 탐험하면서, 이름 모를 그 누나를 만나는 생각을 하며 끝난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살면서 놓치고 있던 환상 혹은 상상 속 세계를 말하는 것 같다. 가슴이라는 지방덩어리를 신기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던 소년은 시간이 갈수록 누나의 가슴이 아니라 누나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누나라는 환상의 인물이 그 소년에게 이것을 해야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끝이라는 그 ‘누나’라는 인물과 동네에서 흐르는 냇물이 돌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내가 가는 곳이 세계의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 무엇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보지 않으면 그 세계는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은 곳이 되고 만다. 무언가에 대해 탐구해보고, 직접 연구해보는 것이 세상의 끝, 나의 생각을 넓이는 방법이라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자신이 몰랐던, 감정과 세상에 배해 배워가면서 ‘아오야마’는 여태까지 하고 있던 생각에 대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가 그 소년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사실에 대해 탐구해보고,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알고,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연구를 포기하려고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즉, 자신만의 신념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무엇이 더 우선순위에 있고, 무엇을 위해 그가 움직이는지에 대한 방향적이 정확하게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어떠한 것은 누군가의 신념에 의해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신념이 옳은 것인지는 살다 보면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나에게도 펭귄이 나타나서 깨줬으면 좋겠다.
3.5 / 5 심오한 이야기를 위한 장치로 이용된 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