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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Feb 11. 2020

영화와 인생, 당신과 영화감독

영화 [페인 앤 글로리] 리뷰



영화의 제목인 [페인 앤 글로리]는 번역하자면, 고통과 영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단어의 의미만을 생각해보면, 크게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일반적인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무감각할 수 있으나, 이러한 단어를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용을 한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죠. 


흔히 예술의 도시라고 하면, 유럽을 많이 생각할 것입니다. 영화 또한 그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죠. 미국이 상업적인 즐거움과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유럽은 영화의 예술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역사적인 시선으로 보아도, 영화의 사조들은 거의 유럽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도 있죠.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대체로 유럽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창작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인물이 느끼는 고뇌와 갈등을 표현할 때, 조금 더 극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죠. 그런 갈등 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예술이 탄생한다는 패턴입니다. 그런 방향으로 생각해본다면, 제목의 의미가 영화의 내용과 어울리는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살바도르라는 영화감독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화감독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죠. 과거 제가 영화를 배우던 시절에 종종 듣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파는 사람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한다고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감독의 경험이 은연중에 반영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창작자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고, 그 감정들을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당시에는 ‘맨날 자기 이야기만 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네요.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랜 기간 활동을 안 하고 있던 영화감독이 오래전에 같이 작업을 했던 배우인 ‘알베르토’를 찾아가면서 찾아오는 변화들을 담은 내용입니다. 저는 영화의 중반까지는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내용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없었던 것이죠. 영화의 내용을 조금 더 풀어가자면, ‘알베로토’에 의해 마약을 하게 되면서, 과거의 상상이 등장하고, 이러는 과정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한 예술가의 타락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영화에 대해서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시작이 되는 설정은 [맛]이라는 제목의 영화이 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영화 속 살바도르 감독이 32년 전에 연출한 영화이고, 기록원에서 이 영화의 행사를 하게 된다는 연락과 함께, 32년 만에 자신의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알베르토’와의 인연과 사연이 자연스럽게 노출됩니다. 알베르토는 과거 살바도르와 촬영을 하면서 이런저런 일로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이죠. 안 좋은 일로 서로를 안 보게 되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나름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살바도르가 과거에 알베르토가 마약을 안 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영화 촬영 내내 마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영화 행사장에서 관객들에게 하게 됩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알베르토는 살바도르에게 화를 내고, 두 사람은 다시 사이가 나빠지게 되죠. 이러한 과정들에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살바도르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솔직하다는 성격과는 별개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가 항상 과거에 살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알베르토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32년 전의 앙금으로 연락 한 번을 하지 않았다가, 영화 관련 행사 때문에 둘은 다시 만나게 된 것이죠. 아마, 이러한 행사가 없었더라면 두 사람은 평생 안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그 마저도 오랜 관계 지속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32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이 다시 사이가 나빠진 것이 32년 전 기억이라는 것이죠. 영화는 한 동안 활동을 하지 않은 영화감독인 살바도르가 이 일을 시작으로 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할 것 같았지만, 크게 변화한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알베르토가 하던 마약을 배우게 되었죠. 


마약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가 알베르토가 마약을 하는 모습을 보고 왜 마약을 시작했는가에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는 단순 호기심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 뒤로 점점 마약에 찌들어 가는 모습으로 변화하죠. 그가 마약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살바도르에게 헤로인은 허전함을 채워주는 무언가라 생각해봅니다. 취미도 없고, 일도 안 하는 그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낙이라 볼 수 있죠. 

그가 헤로인을 하고 난 뒤에 잠이 든 뒤에 꾸는 꿈들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이고 그에게 과거 이야기들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로 표현됩니다. 그 과거의 이야기는 주로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이고, 어머니와의 기억들이 주로 등장하죠.

그 뒤로 살바도르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자신이 썼던 글에 관심을 보이던 알베르토를 찾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글을 넘겨주면서 극으로 제작할 수 있게 허락합니다. 그 뒤로 알베르토는 작업을 바로 시작하고, 살바도르도 마주 앉아서 헤로인을 하려고 합니다. 헤로인을 알베르토에게 권하자 그는 중요한 일에는 맑은 정신으로 임하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을 합니다. 영화와 살바도르는 이 지점부터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 일은 과거 살바도르의 기억과는 상충되는 일입니다. 알베르토의 말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그는 과거 영화 촬영 때도 마약을 안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살바로드가 32년 동안 가지고 있던 기억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죠. 


이후 알베르토는 살바도르의 글을 각색하여 모놀로그(1인극)를 하게 되었고, 반응 또한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 공연을 본 페데리코라는 인물이 알베르토를 통해서 살바도르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살바도르는 그의 연락을 기점으로 이전보다 더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한동안 마약에 의존을 했던 살바도르는 과거의 연인이었던 페데리코를 만나기 직전에 마약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약을 모두 버리죠. 살바도르는 알베르토에 의해서 마약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알베르토에 의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죠. 





그 만남 이후 그는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마약을 끊기 위해서 병원을 찾고, 건강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이 그것이죠. 자신을 케어해주던 메르세데스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서 검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메르세데스는 살바도르가 자주 사래에 들린다는 것을 의사에게 이야기하며,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도 풀어가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중후반을 넘어서면, 현재의 어머니가 처음 등장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에 대한 여러 인사이트를 만들어줍니다. 과거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첫 번째입니다. 살바도르가 기억하는 내용과 조금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다른 이야기는 팩션에 대한 언급입니다. 영화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어머니의 입에서 팩션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을 살바도르가 신기해하는 모습이죠. 그리고 어머니의 겉모습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살바도르의 회상에서 등장한 어머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죠. 이 장면 이후로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들이 모두 의심스러웠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 이야기들은 연결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살바도르가 말하는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이 모두 사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처음 보여주는 시점은 알베르토가 일할 때는 헤로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살바도르의 과거 이야기는 항상 좋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잊고 있었던 좋은 기억도 존재하고 있었죠. 영화를 보면 그에게 좋은 기억이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결말을 살바도르의 어머니가 한 이야기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바로 그의 엄마가 언급한 팩션이라는 것이죠. 팩션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기억이 사실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아가죠.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진짜 팩션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영화처럼 영화감독이 가지고 있는 시선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자신 인생의 영화감독이라는 것이고,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실을 자신이 재해석하여 구성이 된 것이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 살바도르를 통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그에게 새로운 작품,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그가 과거에 묶여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영화가 보여준 사례로 생각해보면 살바도르의 몸 상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살바도르는 자신이 자주 사래 들이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건강 검진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본 메르세대스는 의사에게 사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녀에 의해서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 설명을 해줍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식도를 누르고 있어서 음식물이 지나가지 못하고 걸린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살바도르의 지금 모습과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과거라는 큰 무게가 누르고 있어서, 새로운 것이 지날 틈이 좁아지는 것이죠.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이 간단하다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살바도르에게 사래는 일상에서 불편함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본인이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타인에 의해서 그 문제점을 알게 되고, 간단한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죠. 그리고 살바도르는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눈을 감게 됩니다. 눈을 감게 되는 것에도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겁니다. 단순히 마취를 하게 되면서 꿈을 꾸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끝나 있는 수술처럼, 살바도르에게 과거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러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살바도르가 초반에 말했던 것처럼 한 번 봤던 영화는 다시 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고, 지나갔던 흔적처럼 지켜보기만 하고, 더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죠.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충격을 줍니다. 살바도르의 과거의 기억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은 영화의 장면들이었던 것이죠.

물론, 이는 살바도르의 영화인지, 누구의 영화인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가상의 세계에게 살바도르가 과거를 회상할 때 보여주기 위해서 영상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살바도르가 과거에서 벗어난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다르게 본다면, 현실의 이야기로 생각했던 과거를 한 편의 영화처럼 떠나보낼 수 있었다고 해석해볼 수도 있겠죠. 


극 중 살바도르는 영화 감독입니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서는 우리 모두 자신의 인생이라는 영화를 연출하고 있는 연출자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기억을 정확한 사실로 알고, 거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 봤던 영화처럼 ‘재밌었다’라는 감상을 가지고 현재의 촬영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라는 말처럼, 자신의 영화를 연출하고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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