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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Mar 12. 2020

본인만 모르는 복 많은 찬실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영화에는 큰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크리스토퍼 감독의 영화를 생각해봅시다. 그가 연출하는 영화는 시작부터 인물에게 커다란 목표를 부여합니다. 사실 이 점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인물이 어떤 목표를 이루게 될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인물이 커다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이 영화에서 긴장감을 높이고, 흥미를 더해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기대를 유발합니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비슷하겠지만, 놀란의 가장 큰 장점은 영화의 상업적으로도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본의 영화감독인 오즈 야스지로처럼 사건의 발생보다는 인물의 일상에 집중하고, 거기에 생기는 사소한 변화에 집중하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누군가 보기에는 상당히 시시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시시함의 연속에서 발생하는 변화들은 조금은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아니, 분명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이야기한다면서 왜 갑자기 영화감독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신 분이라면 이 영화를 안 보신 분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 프로듀서로 살아온 ‘찬실’이 사고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됩니다. 벌이가 없어진 그녀는 친한 배우인 ‘소피’의 가사 도우미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집니다. 이상한 만남은 보너스. 마지막으로 정이 넘치는 집주인 할머니까지. 일복에 치여 살던 찬실, 일이 없어진 지금부터 새로운 복이 들어올까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입니다. 




저에겐 오랜만에 본 한국 독립 영화인데요. 이 영화, 가볍게 즐기기에도 좋았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감성과는 조금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성이 한국 독립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독립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일상의 이야기를 조금은 가벼운 톤으로 재미있게 하면서도, 우리에게 생각할 무언가를 제공한다는 것이죠. 무겁게 분위기 잡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것보다는 공감이라는 코드를 바탕으로 인물의 실수나 조금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독립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시거나, 독립 영화를 입문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영화의 메시지입니다. 단순하게 메시지가 좋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도하는 방법이 좋았습니다. 영화는 알게 모르게 초반부터 메시지와 관련된 여러 크고 작은 복선과 상황을 만들어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영화의 초반에 찬실이 소피의 집으로 가는 길에 아무것도 없는 길에서 혼자서 삐끗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 이런 비슷한 맥락의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혼자서 어떤 상황에 생기는 것이죠. 이러한 내용들이 영화의 결말에 다가가면서 점점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캐릭터들이 존재합니다. 자주 잊어버리는 소피, 글은 모르지만 아는 것이 많은 집주인 할머니와 영화감독이지만 영화가 전부는 아닌 영, 그리고 알 수 없는 존재의 한 남자. 이 캐릭터들이 찬실이라는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에 조금씩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찬실이라는 한 명의 인물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가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그 메시지는 거창하거나, 아주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상당히 일상적인 일이지만, 우리의 생활에서 1순위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사는 관객들을 찬실이라는 인물이 대변하는 듯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결말 및 주요 사건에 대한 누설은 없지만, 작은 스포일러라도 원하지 않으신 분들은 여기까지만 보시면 됩니다. 




영화 속 찬실은 작은 영화들 만들어오던 프로듀서입니다. 사실 영화에서 PD는 영화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역할입니다. 어떻게 보면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오던 그녀가 지 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못하자 그녀도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시작하게 된 일은 가사 도우미입니다. 이전과 비슷하게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이 찬실의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주체적인 삶보다는 누군가에 기댄 생활을 하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 영이라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는 갑자기 한 백인 여성이 나무에 열려 있는 열매를 쳐다보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의 이야기를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예측을 해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부분도 영화의 메시지와 비슷하게 연결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시작은 앞서 이야기한 크리스토퍼 감독과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이야기를 하던 찬실과 영의 대화 장면일 것입니다. 찬실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흔히 생각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용한 영화와 작품성 있는 영화를 좋아하며, 상업성이 짙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은 모습이죠. 그래서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던 영이 놀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자 발끈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각 자의 취향일 뿐이죠. 




이런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찬실의 꿈꾸는 것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영화는 찬실이 원하는 것은 이뤄지지 않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것을 얻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위로받지 못하고, 자신에게 아픔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생각된 사람한테 위로를 받고 짜증을 내다가, 생각하지 못한 인물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이는 영화에서 찬실이 보여준 행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녀는 사소한 것에 걸려 넘어지고, 스스로 물건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합니다.


항상 누군가에 기댄 삶을 살아가던 찬실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영화와 멀어진 삶을 살면서 자신의 삶은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영화는 찬실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에서 영화를 지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무언가가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다리가 하나인 책상을 중심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다리들이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가 없어졌다면 다른 다리들도 지탱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 다리들은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에 뜻하지 않게 알게 됩니다. 찬실이 집주인 할머니에게 위로를 받은 것처럼 말이죠. 


영화의 내용들을 생각해본 뒤에 마지막으로 영화의 제목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찬실이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죠. 참고로 영화 속 찬실은 현실의 우리들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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