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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Apr 06. 2020

가부장제 타파로 보는 가족의 의미

영화 [이장] 리뷰

좋은 영화는 관객들에게 여러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슬픔, 웃음, 사랑을 포함한 여러 감정들이 있겠지만, 무언가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 때도 많습니다. 흔히 엔딩 크레디트를 본다는 행위가 이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일어납니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영화를 본 나의 감정은 아직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올라오면서, 그 감정들을 정리할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이장]이라는 영화는 참으로 특이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웃으면서 보았지만, 영화의 결말부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집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은 대사도 없이, 그냥 인물들이 함께 있는 장면입니다. 잠시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버지의 산소를 이장하기 위해 자매들이 모였지만, 큰 아버지는 장남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들을 되돌려 보냅니다. 그녀들은 연락이 안 되는 막내이자 장남인 승낙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남성의 부재로 인해 생겨난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받은 인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육아 휴직으로 회사와 갈등을 겪는 혜영과 남편의 바람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금옥, 책임감은 전혀 없는 남자와 결혼을 앞둔 금희, 여성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혜연. 극 중에서 그려지는 남성들은 모두 문제가 있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죠. 만약, 이런 식으로 영화가 마무리가 되었다면 다소 편향된 시각을 가진 영화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느껴지는 이야기들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가족 관계에 대해서 무지하던 자매들과는 다르게 정확하게 알고 있는 승락과 끝까지 자신의 동생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 큰 아버지 관택과 사고뭉치로만 느껴졌던 동민까지. 이들의 사건이 마무리된 후에 알 수 없고,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인물들의 감정적인 변화는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가부장제에 대한 일침을 날리면서도, 가족이라는 구성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자매들만 보아도 저마다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아버지의 이장을 치른 이후에 느끼는 미묘한 감정은 모두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인물들의 관계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중간, 금희와 혜연이 크게 싸우면서 잠시 떨어진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전화통화로 서로의 위치를 물어보며, 퉁명스럽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생각해봅시다. 저는 이 장면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장면이라 하고 싶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죠. 그렇기에 서로에게 기대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라, 아니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문제를, 어려움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하나일 것입니다. 마음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겠죠. 

영화의 초반, 보상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혜영이 형제끼리 나누자는 이야기를 한 뒤에 금옥이 결혼을 앞둔 금희에게 다 주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상황을 생각해보면, 각 자의 이해관계가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인물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결되지 못한 채 넘어가게 됩니다. 아마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넘어간 문제가 상당히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영화의 후반에 각 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해소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아버지인 관택을 다루는 영화의 태도에 집중했습니다. 가부장제의 타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영화의 입장에서는 이 사단의 원흉이라 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관택에게는 크게 세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동민과의 관계입니다. 혼자 있는 동민을 발견한 관택은 동민을 강압적으로 데려가려고 합니다. 동민이 반항하자 관택은 동민에게 이야기합니다. “얌전히 갈텨?”. 그리고 동민에게 손을 내밀고, 동민은 그의 손을 잡습니다. 영화 상에서 동민이 처음으로 누군가의 말을 듣는 장면이자, 처음으로 손을 잡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이장 전날 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상에서 짧게 등장하는 장면인데, 그의 아내인 큰 어머니 옥남이 관택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둬요”. 가부장제라는 틀에서 장남으로 살아온 관택이지만, 자신의 아내인 옥남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장을 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 이장 당일 날의 이야기입니다. 이장을 위해 묘지로 가족들이 이동을 합니다. 그리고 관택은 자신의 동생은 번호가 아니라 이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쩌면 아버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들, 딸이 아니라 그의 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 가족을 이끌던 아버지이기 이전에는 누군가의 동생, 가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더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유언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화 [이장]은 철저하게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 영화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남성으로 어릴 적, 제사를 지낼 때에 고모와 사촌 누가가 절을 하지 않을 것을 보고 아버지께 여쭤봤다고 합니다. ‘여자니까 못하는 거야’라는 대답을 듣고, 누군가를 추모하는 의식에도 차별이 있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고, 그런 과거 기억이 영화의 시작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영화가 ‘여성 서사’, ‘여성영화’로 포장되기보다는 가족영화로 포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온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자칫 무거운 분위기로 갈 수 있음에도 유쾌하게 풀었다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전 리뷰에서 말씀드렸던 한국 독립 영화의 장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연출한 정승오 감독이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 이유,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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