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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Apr 06. 2020

물리학으로 말하는 사랑의 정답

영화 [n번째 이별중] 리뷰

멜로 장르의 영화가 타임 슬립을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보기 어려운 광경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구조가 흥미로운 이유는 각 영화들이 이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이라 볼 수 있죠. 영화 [n번째 이별중] 또한 로맨스 코미디 장르에 타임 슬립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주인공들의 나이가 20대 초반으로 어리다는 점과 타임 슬림이라는 능력이 알 수 없는 힘이 아니라 주인공이 직접 만든 물건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에서 조금 의아함이 들 수 있습니다. “아니, 주인공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타임머신을 직접 만든다고?”. 영화에서 타임머신을 만드는 장본인인 주인공 스틸먼은 물리학 천재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능력은 학과 교수님보다 뛰어난 것으로 그려지고 있죠. 그런 그가 타임머신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연한 사고로 인해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는 공식이 떠오르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영화에서 타임슬립은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인 [어바웃 타임]에서도 능력의 정체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는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은 판타지와 같은 설정이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어느 정도 납득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영화의 설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겠죠. 


영화를 이미 보셨다면, 그 이유를 충분히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스틸먼이라는 인물이 타임머신을 만든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물리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스틸먼이 데비와 헤어진 뒤에 자신이 차인 이유에 대해 분석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스틸먼의 캐릭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 장면은 데비와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를 연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친구인 에반에게 보여줍니다. 마치 PPT 발표를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있었고, 그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면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죠. 

장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도 스틸먼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짐작이 가능할 것입니다. 스틸먼이라는 인물은 사랑을 감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적 현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여자 친구인 데비와의 기억 중에서 안 좋은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꿔주면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데비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소녀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스틸먼과 에반은 데비가 일하는 가게에 찾아갑니다. 뒤이어 데비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는데, 그녀가 가져온 메뉴는 스틸먼과 에반이 주문한 메뉴가 아닌 전혀 다른 메뉴인 것이죠. 그 뒤로 스틸먼이 데비에게 접근해서 말을 거는 장면에서도 데비는 술을 따르며 다른 생각을 하다가 술잔이 술이 넘치게 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거기에 그녀는 물리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어떤 남자와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이러한 모습에 스틸먼은 그녀를 포기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그 뒷 장면에서 스틸먼이 두고 간 노트를 데비가 우연히 보게 됩니다. 데비는 그 노트에 있는 내용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것에 대해 능숙한 스틸먼에게 관심이 생깁니다. 사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영화의 결말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비가 스틸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두 사람이 잘 맞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영화가 결말부에 말하고 있는 내용과 이어지는 부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노래에도 있지 않습니까. God의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고. 

데비는 자신이 모르는 분야를 잘하는 스틸먼에게 매력을 느낀 것이죠. 그런데 앞서 이야기만 스틸먼의 행동은 모두 데비에게 맞춰주려고 했습니다. 싸움이 벌어질 것 같으면, 데비의 취향에 맞춰주려 하고, 그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애초에 전혀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의 취향에 맞춰준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스틸먼의 노력을 통해서, 어느 정도 관계 회복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스틸먼도 무조건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뒤에 말을 하고, 상대방이 기분이 나쁠 것 같다면 사과를 하는 등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의 끝은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데비가 스틸먼에게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리는 왜 한 번도 안 싸웠을까?”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스틸먼의 기분은 어떨까요? 당연히 좋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그동안 자신이 했던 노력이 모두 거부당하는 느낌이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면, 한 상황에서도 수십 번 이상의 반복이 등장하는데, 실제 그는 더 많은 문제점들을 고쳐왔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스틸먼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위해서 자신만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 노력 또한 데비에게 보여줄 수 없는 노력인 것이죠. 그러한 계기로 스틸먼은 섭섭함과 허무함 등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포기하려고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등장합니다. 바로, 그의 친구인 에반도 그 타임머신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스틸먼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러한 대목에서 영화는 새로운 시선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스틸먼은 자신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친구도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 보이지 않은 노력이라는 것을 타임머신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타임머신을 통해서 과거로 가면, 타임머신을 작동시킨 당사자가 아니라면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러한 타임머신을 사랑이라는 것과 동일 선상에 두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극 중 타임머신은 무결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느 시점에는 오류가 생겨서, 의도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이때, 고장 난 타임머신을 대하는 스틸먼의 태도가 흥미롭습니다. 오류가 생긴 뒤로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스틸먼이 고장 난 타임머신을 대하듯이 데비에게 관심을 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타임머신이 무결한 존재가 아닌 것처럼, 사랑이라는 것도 무결한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는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떠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어진다면 그때 사랑이 식었다고 할 수 있겠죠. 

스틸먼이 테비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타임머신을 만들고, 만든 뒤에도 몇 번의 시간을 반복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그녀를 진정 사랑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데비는 스틸먼과의 관계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데비도 분명 어떠한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우리들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스틸먼의 노력이 데비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상대방이 그런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많은 생각이 들 수 있겠죠. 그것을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하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결말까지도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와 흐름을 잘 유지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연인 사이라면 더 많이 싸우고, 감정을 상하게 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관계가 친구 사이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이는 그만큼 연인 사이가 특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대를 하게 되는 것들이 존재하고, 그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칼은 무언가를 썰기에 좋지만, 그만큼 베이기도 쉬운 것이죠. 

결론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싸운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아오면서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싸운다는 것 자체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이 동반된 것이 아니라면, 싸움이라는 과정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이고 이를 통해서 내가 싫어하는 것과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싸움 이후일 것입니다.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밀고, 서로의 오해를 푸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우리는 배운 적이 없죠. 싸우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면, 화해라는 과정 자체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스틸먼도 화해를 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이야기한다면, 상대방도 그에 맞는 배려를 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스틸먼이 데비에 대해서 섵부르게 생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감정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화들이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모두 공감이 가능한 것을 생각해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감정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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