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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초만에 인생작이 되었다

오늘의 영화 [위대한 쇼맨]

by 따따시

때는 바야흐로 2017년 12월. 이 영화의 포스터를 처음 보고, ‘조금 촌스러운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등장하는 화면은 ’ 20세기 폭스’ 사의 로고입니다. 다만, 현재의 버전이 아닌 과거의 버전으로 등장했죠. 하지만, 이는 추진력을 얻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정확히 영화가 시작하고 11초 만에 이 영화는 저의 인생에 크게 기억이 될 영화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오늘의 영화 [위대한 쇼맨]입니다.




영화 [위대한 쇼맨]을 자신의 인생 영화 중 한 편으로 꼽으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위해서 잠시 저의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저에게 인생 영화 한 편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사랑은 비를 타고]를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곱씹고 달달 외우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인생 영화로 꼽은 이유는 저의 많은 것을 바꿔주었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영화를 공부하면서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비롯한 예술적 가치에 중점을 둔 영화만을 소비하려는 심리가 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영화는 저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업 시간에 참고 영상으로 보게 된 영화의 한 장면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 영화를 본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사람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영화가 바로 [위대한 쇼맨] 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에는 상당히 많은 음악과 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많이 비교가 되는 [라라 랜드]와 비교하자면, [위대한 쇼맨]이 더 뮤지컬 영화가 아까운 영화입니다. 사실 [라라 랜드]는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역할은 영화적 의미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됩니다. 뮤지컬로 치자면 [라라 랜드]는 일반적인 뮤지컬이라면 [위대한 쇼맨]은 쇼가 결합된 쇼 뮤지컬의 형태라는 것이죠.

쇼 뮤지컬의 가장 큰 특징은 화려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스토리에서는 조금 손해를 보는 것이죠. [위대한 쇼맨]에는 총 9개의 곡과 2개의 리프라이즈가 사용됩니다. 적게 잡아도 30분 이상이 음악에 할애가 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영화에는 생략이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클리셰가 사용되는 것이죠.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호불호를 만들게 됩니다. 스토리를 중점으로 보는 분들이라면 이 점을 흠결이라 생각할 것이고, 영화가 보여주는 화려한 쇼에 매료되신 분이라면 이러한 점을 이해하며 넘어갈 것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P.T 바넘(이하 바넘)은 실존 인물입니다. 때문에 영화 개봉 이후에 바넘을 미화했다는 이야기로 논란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바넘은 이 논란의 내용처럼 장애인을 돈벌이로 이용하고, 흑인 여성의 공개 부검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를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바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사실을 기반으로 재구성되었고, 실존 인물을 다루는 영화의 특성상,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유족의 허락과 고인의 명예를 위해서 나쁜 점을 표현하는 것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통해서 접한 바넘은 영화 속 인물로만 봐야 합니다.


극 중 바넘은 어떤 인물로 봐야 할까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약자를 이용한 약삭빠른 사람으로 봐야 할까요? 그들에게 기회를 준 인물로 봐야 할까요? 적어도 그는 이상한 사람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유니크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공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숨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엇을 하던 욕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류층 문화라 불리는 것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문화를 센님의 문화라며 바넘과 필립도 비아냥댔죠. 생각해보면 상류층들의 공연이나 서커스(바넘의 공연)나 목적은 비슷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한 유희가 그 목적이죠. 하지만 그들은 선을 그어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영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답은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입니다.


극 중에서 바넘의 단원들이 영국 왕실에 초대되는 일이 있습니다. 여왕은 단원 중에서 찰스의 이야기를 합니다. 여왕이 그에게 “생각보다 훨씬 작군요”라고 하자 찰스가 “그쪽도 찬장 맨 위칸엔 팔이 안 닿겠네요”라며 농담을 합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립니다. 바넘도 당황한 듯한 리액션을 통해서 무례하다는 느낌의 뉘앙스를 주고 있죠. 하지만 여왕은 호쾌하게 웃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웃어 보입니다. 결국 자신의 감정보다는 윗사람의 감정, 그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추종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극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이라 표현되는 그녀는 그 문화가 누구의 문화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즐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그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한 마디로 유식해 보이고 싶은 것이죠. 일상생활에서 부자들은 욕하면서 결국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바넘 또한 그런 인물이었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의 문화를 센님의 문화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본인도 그들의 문화에 속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기에 제니 린드라는 인물의 공연을 추진한 것이겠죠.

바넘이 제니 린드와 공연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도 대중의 선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취향보다는 대중의 평판을 선택하여서, 자신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필립에게도 접근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반대라 볼 수도 있는 쇼 비즈니스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바넘이 말하는 그의 공연은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가짜일지 모르나 사람들의 웃음은 진짜라는 것이죠. 현재의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을 포함한 대부분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들은 대부분이 허구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일처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가짜를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보며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그것이 가짜라도 즐겁게 소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극 중 바넘은 가짜를 넘어서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제니 린드의 공연을 장기로 추진하면서 자신의 극단에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아졌고, 관객들이 줄어들자 문구만 살짝 바꿔서 홍보하라고 이야기를 하죠.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내리막을 걷습니다. 사람들은 거짓말에는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인지 그의 공연은 평론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바넘의 자세는 남다릅니다. 신문에 실린 평론을 오려오면 할인을 해준다며,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게 됩니다. 이후 바넘과 평론과 베넷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평론가와 일반 관객의 관점 차이가 나타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이 장면에는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어느 순간에 영화를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공연을 만드는 입장에서 누군가의 비판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베넷의 글을 모두 읽었다는 징표로 글에 쓰인 서커스라는 표현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평론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도 등장하지만, 해당 글은 한 평론가의 생각일 뿐입니다. 평론가 베넷이 바넘에게 자신을 안 좋아하지만, 대중은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다른 비평가는 ‘훌륭한 인간애’라는 평을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이들의 생각은 그저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죠. 바넘 또한 그의 글을 읽으며, 수용할 것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이는 바넘이 최종적으로 깨닫게 되는 가치일 것입니다.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넘버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된 이후에 이들은 ‘지상 최대의 쇼’라며 이야기를 하고 있죠. 하지만 그곳에 바넘은 없습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장면은 바넘의 딸이 발레 공연을 하는 공연장입니다. 그리고 바넘이 노래를 이어서 부릅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 필요한 모든 것, 여기 당신 앞에 있어요’. 바넘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딸의 재롱을 보고 있습니다. 결국 지상 최대의 쇼,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 필요한 모든 것은 가족 그리고 당신의 인생일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소개하며 마칠까 합니다. 바넘이 아내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목표를 이야기합니다. 이때, 아내인 채러티 바넘이 그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어요. 곁에 좋은 사람만 몇 있으면 된 거예요”


지금까지 영화 [위대한 쇼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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