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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Jul 07. 2020

팬들을 기만한 최악의 후속작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리뷰

1편의 성공 이후 많은 분들이 기다렸던 [라스트 오브 어스 2]. 출시 전 평단의 좋은 평가 때문에 게임 팬들의 기대는 더욱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플레이를 해본 유저들의 악평이 줄을 이었습니다. 현재는 처음 출시되었을 때에 비해서, 양 쪽의 반응이 어느 정도 비슷해졌지만, 평론가들의 평점과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플레이 전 기대

먼저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에 가졌던 기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전 [라.오.어] 1편에서는 딸을 잃고 절망 속에 있던 조엘이 엘리라는 소녀를 만나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의 스토리였습니다. 게임은 조엘의 입장에서 플레이를 하며, 엘리를 인류의 희망으로 설정하여 그녀를 지켜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1편의 절망을 맞이한 두 인물이 서로를 통해서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의 결말 또한 모든 사람이 동의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조엘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는 이해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즉,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후속작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더불어 새로운 희망을 위해서 떠나는 이야기를 그려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좀비가 창궐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모르는 어딘가에 생존하고 있거나, 그들보다 조금 더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그들에게 또 다른 절망과 함께 희망을 찾기 위한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즉, 전작과 마찬가질 절망 속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러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주제였습니다. 파트 2의 이야기는 복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좀비가 존재하는 세계관을 다루는 스토리에서 좀비와는 상관없는 복수의 이야기라는 것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가 전작과의 연결고리가 있다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입니다. 

전작에서 좀비 바이러스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존재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통해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사회적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올바름에 대한 가치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면 선민의식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심하면 본 콘텐츠를 침범해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미 몇몇 영화에서 사회적 올바름에 대한 과도한 표현으로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라.오.어 2]에 등장하는 인물만 보아도 이러한 가치관의 반영을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 동성애를 비롯하여, 유저가 플레이하는 인물은 모두 여성입니다. 이런 식으로 올바름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과 반대의 모습도 존재합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에비’는 불륜이라는 코드를 가져왔습니다. 애초에 이 게임이 추구하는 폭력이라는 코드가 올바름과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좀비를 죽이는 것을 넘어서 자신과 함께 했던 동료도 죽여야 하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죽여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입니다. 

이런 식으로 게임 내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에비’의 경우, 적이지만 자신을 살려주었던 레브와 야라는 끝까지 지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조엘 또한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해준 인물입니다. 더 나아가면, 조엘이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 이유는 엘리의 죽음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행동에 공감을 하면서 플레이할 유저는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전개

이는 단순 애비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엘리의 감정에서도 공감되지 않은 장면들이 존재합니다. 물론 이를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설명을 들어도 공감되지 않습니다. 이는 이전 우리가 알던 그녀와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조엘이 백신을 만드는 것 대신 엘리를 살린 것에 대해서 엘리는 백신을 만들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엘이 희생되어했다고 한다면 엘리는 조엘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내용에서 공감하지 못하니 플레이에 흥미가 생기지 않습니다.

특히나 애비를 플레이할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게임 중반 이후 애비로 플레이시 엘리와의 싸움을 하는 파트가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저는 플레이하기 정말 싫었습니다. 1편에서부터 애정을 보냈던 캐릭터를 왜 내 손으로 때리고 제압을 하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플레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플레이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플레이를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인물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입니다. 정말 뜬금없이 죽습니다. 스토리에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억지로라도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긴장감은커녕 의아함과 더불어 짜증이 났습니다. 만약 이러한 감정을 유도한 것이라면 더더욱 실패입니다. 짜증이 아닌 슬픔이나 안타까움이 들어야 했을 상황입니다. 영화 속에서 동료의 죽음은 슬픈 장면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를 하는 인물에 대한 공감으로 감정이 이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짜증이 나는 순간은 동료를 죽인 인물에 대한 원망이 아닌 이 스토리를 만든 제작자에게 향합니다. 즉, 감정이 향하는 곳이 극 중 인물이 아닌 게임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이런 당황스러움은 게임에 대한 흥미를 더욱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메시지만을 위한 이야기

게임을 제작한 ‘네이티 독’은 이 게임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요? 그것을 모르는 유저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 대해서 공감하지 않을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그것을 상당히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게임을 하면서 어떤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임을 하는 것은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지 무언가 의미를 찾기 위함이 아닙니다. 영화의 경우, 생각할만한 소재나 교훈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게임은 직접 플레이를 하는 즐거움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 비중이 적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을 제작할 때는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몰입을 하여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작에서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스토리를 공감이 가능하도록 구성하여서, 플레이 시에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몰입과 공감이 가능했습니다. 

게임 플레이를 우선 시 하여서 게임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듯한 느낌이었던 전편과 달리 메시지를 정하고, 어떤 식으로든 그 메시지의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들려는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애비에 대한 당위성과 공감을 부여하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와 애비의 플레이 시간을 비슷하게 편성을 하였는데, 전편의 조엘과 엘리를 사랑했던 유저의 입장에서 애비는 보기도 싫을 텐데, 플레이까지 해야 한다는 것에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임 플레이

전체적인 플레이의 느낌은 전작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두 명의 인물로 나뉘어서 플레이를 한다는 차별점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두 인물에 대한 감정이나 스토리를 배제하더라도, 저는 이 점이 단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어떠한 콘텐츠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이것에 해당할 것입니다. 성장 코드를 가지고 있는 게임에서는 캐릭터를 성장시켜서 무기나 능력치를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습니다. [라.오.어]에서는 새로운 무기나 교범을 등장시켜서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단점이 되는 이유는 게임을 반 정도 했을 때, 유저가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엘리를 플레이하면서 그녀의 능력과 무기를 업그레이드를 했지만, 애비를 플레이하게 되면서 다시 업그레이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무기와 콘텐츠도 사용할 수 없는 것이죠. 저 또한 애초에 애비를 플레이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기와 능력이 이어지지 않아서 더 불만이었습니다. 

그 외의 플레이도 전작에서 더 나아지거나 새롭게 등장한 점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전작에서 느껴진 방탈출 같은 요소들도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결국 스토리가 중요했던 게임이었는데 스토리가 유저들에게 공감을 사지 못하면서 게임에 대한 평가가 안 좋아졌다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사실 이러한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작자는 의도적으로 인물에게 공감하지 못하게 하여, 이들이 벌어지는 행동들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콘텐츠는 게임입니다. 영화는 관객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사건들이 진행이 되지만, 게임은 유저 스스로가 사건을 진행시켜야 합니다. 이것에 불만을 품은 일부 유저가 게임을 진행시키지 않아 버린다면, 유저들은 끝까지 이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것이죠. 

어찌 되었든 간에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게임을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공감은 하지 못하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게임의 각본을 제작한 ‘닐 드럭만’은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증오하길 바란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토리의 메시지만 본다면 그런 생각에 대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유저들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었을까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혐오스러운 사진을 보여주며, “난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끼길 원한다”라고 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일까요?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은 엘리와 애비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 자체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는 게임을 제작한 사람, 더 나아가서는 각본을 만든 ‘닐 드럭만’에 대한 불만입니다. 유저들의 불만이 그들에게 향하는 것은 극 중 캐릭터들의 선택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결국 메시지만을 위한 전개의 과정에서 설정에 대한 부분은 소홀이 한 것이 유저들의 불만을 산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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