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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Oct 18. 2020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 이야기

영화 [소리도 없이] 리뷰

솔직하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유아인, 유재명 배우 연기 잘하는 것은 잘 알고 있고,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휘했습니다. 다만, 이것은 배우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고, 영화 자체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화가 아주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면서 욕이 나오거나 졸음이 올 정도도 아니고, 구성 자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좋냐, 나쁘냐라는 이분법적으로 본다면 좋다는 쪽입니다. 인물의 감정선도 잘 쌓았고, 표현의 디테일 등을 섬세하게 잘 담아내어 영화 자체는 꽤 좋은 편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당혹스러움을 표한 이유는 이 영화의 태도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이전에 개봉한 [사라진 시간]과 비슷한 포지션이라 생각합니다. 상업 영화로 인지하고 본다면, 큰 감흥을 얻지 못할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영화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좋은 일입니다.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구분 없이 개봉과 마케팅이 이뤄지고, 결과가 어찌 되었든 관객들이 이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대와 다른 영화가 등장했으니, 당황스러울 수 있고, 심하면 비슷한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는 영화를 배급한 ‘에이스 메이커 무비 웍스’의 전략으로 보입니다. [사라진 시간]도 같은 배급사의 작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예술적 성향의 영화를 대중의 시선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내로남불과 권선징악’입니다. 영화는 주인공 태인과 창복을 친근한 인물로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 좋은 인물로 그려서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합니다. 그를 위해서 조금은 코믹하게 두 사람을 그려내고 있죠.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에도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는 블랙코미디라 볼 수 있는 것이고, 영화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괴리인 것이죠. 분명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임에도 범죄가 아닌 것처럼 그린다는 것이죠. 

이런 괴리를 보여주는 내용이 이들에게 일을 맡기던 팀장의 존재입니다. 극 중에서 주인공들을 하찮게 구는, 괴롭히는 듯한 인물로 묘사되어서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 팀장을 안 좋은 시선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후 팀장이 밧줄에 묶이는 장면이 나올 때, ‘고소하다’라는 생각을 하신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의도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분명 범죄자들임에도 그들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죠. 무의식적으로 주인공을 나와 같은 편이라 생각하게 되고, 그들을 괴롭히는 인물들은 나쁜 편이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영화의 기조는 영화의 후반까지 이어집니다. 우연히 유괴범이 되고, 납치된 아이인 초희와 좋은 유대관계를 가집니다. 그에 반해 초희의 부모님은 초희를 찾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이들이 제시한 돈을 깎으려고 하거나 시간을 끄는 등 초희에게 관심이 없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 정도가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희의 부모님이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셨다면 영화는 다시 한번 성공한 샘이죠. 마음 한 켠에는 초희가 태인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태인’은 범죄자입니다. 영화는 관객들을 범죄자를 옹호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그를 위해서 태인이라는 캐릭터를 말을 못 하는 인물로 설정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을 못 하기에 그의 생각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 수는 있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즉, 관객들은 태인의 감정을 100%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짐작으로 태인의 생각을 “예상”한다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영화를 ‘내로남불’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죠. 관객들이 주인공의 편에 서있기에 그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본다면 옹호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이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그루밍’ 범죄와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서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범죄입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로맨스처럼 느껴질 수 있겠죠.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영화가 가지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이들을 잡으려고 하거나 개도 하려는 세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화 초반보다는 후반에 등장하는 부분인데, 이들이 이전보다 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서 스스로 불안해하는 장면들이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창복이 쫓기는 장면일 것입니다. 접선하기 전부터 상당히 불안해하는 그는 돈 가방을 가진 뒤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태도를 취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 누구도 그를 쫓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평범하게 지나갔다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그 스스로 자신을 가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일말의 양심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죽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후에 등장한 경찰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초희가 도망을 쳐서 만난 인물은 자신이 경찰이라며 도움을 주겠다고 하지만 초희는 다시 도망칩니다. 누가 봐도 수상해 보였던 이 인물은 실제 경찰이었죠. 다만, 술을 한 잔해서 조금 불량해 보였을 뿐입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내용과 연관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한솔’이라는 이름을 가진 경찰이 태인의 집을 찾습니다. 물론, 마을 주민이기 때문에 친근하게 대하지만 태인은 범죄자였던 것이죠. 초희는 경찰을 보고도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찰을 묻으려는 태인을 도와주려 하죠. 이처럼 영화는 겉모습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합니다. 

두 주인공의 범죄를 일상적으로 그려서 별 일 아닌 것처럼 표현을 하면서, 그 이미지로 인해 범죄라는 사실이 미화되는 듯한 느낌이죠. 이들이 계란 장사라는 설정도 그런 내용의 반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란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용물이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성질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껍질을 깨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영화는 역으로 인물들을 포장한 것입니다. 관객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작업인 것이죠. 


이런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영화의 결말도 이해하기 수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만의 세계에서 있던 인물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는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그들은 사람들을 피한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영화의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영화는 겉모습과 내면의 괴리라는 코드로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다리와 언어 장애라는 결핍을 주어 인물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게, 측은함을 가지도록 설계를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에 대한 표현과 위협적이거나 강압적인 느낌보다는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로 그려집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직업이고, 일상인 것처럼 상당히 평범하게 그린다는 것이죠. 강압적인 인물로 등장한 팀장은 사망했으니 말이죠. 그들 사이에서 주인공은 조금은 낮은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같은 범죄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는 그저 범죄자일 뿐이었죠. 

반대로 세상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면, 그들은 범죄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결핍이 있는 약자로 볼 수도 있는 그들에 대한 무관심, 그렇기에 창복의 죽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항복은 소리도 없이 죽어간 것이죠. 

태인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사연을 설명한다면, 조금은 참작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태인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죠. 결국 영화의 결말은 범죄자가 맞이하게 되는 최후라고 볼 수도 있지만, 결핍을 가진 인물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편견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해볼 수 있는 것이죠. 


리뷰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영화를 포함한 모든 콘텐츠를 소비할 때는 그 콘텐츠에 가지는 기대가 있습니다. 액션 영화에는 액션에 대한 기대, 상업 영화에서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하죠.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도 그것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재미와 메시지 중에서 무엇에 무게를 두는가로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소리도 없이]는 예술 영화에 가깝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일반 영화(상업)로 분류했지만, 이는 예산의 규모가 판단 대상에 포함되기에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소리도 없이]를 상업영화로 생각하고 관람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객들에게 메시지가 강조된 영화는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아마 ‘예술 영화’라는 타이틀로 나왔다면, 조금 더 가볍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부 관객들의 안 좋은 평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전 이런 시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접하도록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일이죠. 상업적인 재미를 기대하고 보신 분들 중에서도 [사라진 시간]이나 [소리도 없이]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이 한국 독립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런 관심이 늘어나면 조금 더 퀄리티 있는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분들도 마냥 안 좋게 생각하기보다는 영화가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 어떤 방법을 썼는지 생각해보시면, 영화를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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