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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Nov 16. 2020

기교없이 우직하게 배우의 힘으로

영화 [내가 죽던 날] 리뷰

영화 [내가 죽던 날]은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를 마무리하는 영화입니다. 올해 9월에 한국 영화 시장 철수를 결정한 뒤에 개봉하게 되어서, 무언가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내가 죽던 날] 이 외에 [조제]와 [킬링 로맨스]가 아직 개봉 예정 중이긴 합니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가 사업 철수를 하는 배경에는 ‘코로나’의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전에 개봉한 [인랑], [악질경찰], [광대들], [장사리] 등이 큰 제작비가 들어간 것에 비해 제작비가 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내가 죽던 날]은 한국 영화보다는 외국 영화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교를 최대한 줄이면서 서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극 중에서 발생한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주인공을 따라가며, 진실이 밝혀질수록 주인공의 개인적인 삶과 맞닿아있는 부분을 알게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상처와 그런 상처의 극복을 다룬 영화입니다.

외국에서 제작되는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에서는 이런 구성을 가진 영화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한국 상업 영화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구성입니다.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구성이 메시지 전달이나 서사를 표현하는 것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관객들에게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죠. 상당히 많은 사건을 촘촘하게 엮는 방식보다는 인물 중심의 영화이기 때문이죠. [내가 죽던 날]로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현수라는 인물이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된 이유와 다른 인물들보다 사건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즉, 사건의 인과가 어찌된 것인지 지 자세히 설명하는 것보다는 인물이 사건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과 변화하는 태도 등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형태의 영화보다 배우의 역량이 상당히 중요한 영화이죠.

이 말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영화의 많은 부분이 김혜수 배우의 역량으로 채워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김혜수 배우의 제대로 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영화가 지루할 수 있는 지점들에서도 김혜수 배우가 가지고 있는 매력으로 그 지루함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초반, 관객들이 어디에 집중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건의 비밀과 인물의 비밀 중 어느 쪽에 관심이 있는가에 따라서 영화의 의미와 흥미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인물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를 해야, 조금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영화는 인물에 대한 관심 유도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은 의도적으로 사건에 무언가 끔찍한 비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이상엽’ 배우가 있습니다. 최근 이상엽 배우가 출연한 [동네 사람들]이라는 영화 때문인지 이상엽 배우의 이미지가 이중적인 사이코패스의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화를 보는 관객이 사건의 비밀을 찾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 영화는 그리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사건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에서 흥미가 생기는 지점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무언가 큰 의심이 들 수 있는 정황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풀어가는 속도가 느린 편이기에 추리물을 기대하신 분들에게는 다소 흥미가 떨어지는 구성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인물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고, 그런 관점으로 봐야 영화의 메시지에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죠. 인물 중심으로 영화를 본다면, 현수의 감정적인 변화가 왜 생기고 있으며, 그런 변화의 원인을 밝히는 것에 대한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인물의 행동들이 이해되는 순간이 존재하기에 메시지적 관점에서 이해가 조금 더 쉬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서사가 흥미와 효율보다는 정직하게, 우직하게 진행하는 방식이라는 것이죠. 그 때문에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여지도 상당히 많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구간입니다. 한 문단으로 구분해놓을테니, 원치하으신 분들은 참고해주세요.


영화에는 크게 3명의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사건의 조사를 하는 현수, 피해자인 세진과 주변 인물 순천댁입니다. 이 인물들은 공통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런 요소가 인물들에게 동기를 유도하고,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죠.

자살하려는 세진은 이전부터 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진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들 세진이를 걱정하는 듯하지만, 그 아무도 그녀가 왜 죽음을 결심했는지에 관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즉, 진심으로 걱정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사람이 세진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부분은 자기 일이기에 혹은 겉치레였다는 것이죠.

현수는 자신이 과거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집착이 생긴 것입니다. 그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죠.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면서는 세진에게 그런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순천댁은 자신과 과거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세진의 마음을 이해한 것이고, 그런 세진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는 것이죠. 그것을 이해하는 현수의 경우, 그런 순천댁과 세진을 모르는 척해주는 것입니다. 분명 아는 척을 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들추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세진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누군가가 자신의 과거를 안다는 것,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선뜻 이해가 어려울 수 있지만, 비슷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목의 의미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죽던 날]이라는 제목은 인물들에게 다시 태어난 날이라는 의미가 생깁니다. 극 중 현수 또한 사건의 모든 것을 알게 된 이후에 과거 자신의 삶을 유지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많은 것이 바뀐 현재를 붙잡고, 과거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현수가 세진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두 사람이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사람으로 서로를 마주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내가 죽던 날’은 과거 내가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난 날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을 겁니다.







관객들에게 생각해볼 이야기를 전해주는 결말과 그런 메시지를 향해 움직이는 인물과 사건들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좋은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모든 사건의 발단과 결과에 대해서는 인지를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는 것이죠. 비유하자면, 두서없는 글을 읽다가 마지막 3줄 정리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영화의 결말에 다다라서야 ‘아, 이런 이야기였어?’라는 형태죠.

저는 이런 전개가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조금씩 이해를 쌓아가는 식의 탄탄함이 아니라 설명을 하다가 안 되니까, 포기하고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한다는 느낌이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재밌다는 질문을 하신다면, 저의 대답은 YES입니다. 충분히 좋은 메시지를 전달해주며, 김혜수 배우를 포함한 배우들의 연기. 특히 김혜수 배우의 매력과 에너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해 드립니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추리물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보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루즈한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장르도 미스터리 추리가 아닌 평범한 드라마로 밝힌 것을 보면, 서사가 조금 더 중요한 영화라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를 환영하는 편입니다. 한 배우를 중심으로 끌고 가는 영화는 배우의 연기를 깊게 느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기교가 없다는 점을 통해서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영화보다 서사에 집중하였기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더 가까이에서 들은 장점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흥미 면에서는 분명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분께 어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분명 추천해 드릴 수 있는 영화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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