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따시 Dec 11. 2020

서연이 놀라지 않은 이유는?

영화 [콜] 쿠키와 엔딩에 대하여

코로나로 인해 극장 개봉이 미뤄지면서 결국엔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된 [콜]. 공개 이후에 대체로 호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부 관객분들은 결말과 쿠키 영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개연성을 지적하시곤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영화의 쿠키 영상이 어떤 의도인지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쓸 당시에는 궁금하긴 했지만, 뚜렷하게 무언가 생각나는 것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지점이 생겨서 여러분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저는 쿠키 영상을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멀티 엔딩의 표현입니다. 멀티 엔딩이라는 형태가 영화에서는 흔하게 등장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이 멀티 엔딩이라는 단어도 주로 게임에서 등장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선택에 따라서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로 인해서 다른 이야기를 통한 다른 결말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유저는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서 여러 번 플레이하도록 유도를 하는 것이죠. 이런 모습이 영화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멀티 엔딩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즉, 인터렉티브의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최근에는 인터렉티브 영화가 등장하고 있는 추세이니, 조만간 멀티 엔딩을 가진 영화가 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콜]이 멀티 엔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의 나이입니다. 아직 30대 초반으로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나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영화 [콜]은 관객이 직접 선택을 할 수는 없지만, 인터렉티비의 요소는 충분히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인물에게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 생기고, 그 선택에 따라서 예상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는 형태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적이 과거에 일어난 가스 폭발 사고를 이용해서 과거의 영숙을 죽이려던 것이죠. 

이와 관련해서 이충현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초반부 시나리오를 쓸 때는 유튜브에 있는 호러 게임을 참고하기도 했다. 게임과 영화가 닮은 점이 많더라’ 결과적으로 영화의 구조 자체가 게임과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고,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다양한 엔딩을 보여주는 것도 게임의 형태를 빌려온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두 개의 엔딩 중에서 하나의 엔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각 자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는 식이죠.


두번째는 이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전 리뷰를 통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금까지의 영화와 다른 화면비를 가진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면 영화의 외적인 요소라 볼 수 있는데, 미세하지만 이런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무언가 달라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앞서 이야기한 멀티 엔딩의 기능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쿠키 영상을 통해서는 서연의 엄마가 사라지는 엔딩이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서연은 전혀 놀라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서 서연이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영화에서 등장한 에피소드 중 하나인 서연이 과거 자신의 아빠를 죽게 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임에도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영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해서 의아했습니다. 분명 사실과는 다르게 서연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착각인 것인지, 아니면 진짜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렇게 믿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서연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억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의 쿠키 영상을 본다면, 그녀의 착각이 반영된 결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연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게 되어, 자신의 엄마가 살아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죠. 


정리하면 주인공 서연의 망상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 망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에 어딘가에 잡혀 있던 장면은 99년도의 영숙이 입고 있던 옷과 비슷해보여서, 설마 영숙과 서연이 같은 사람인가? 라는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영숙과 서연 모두 자신의 엄마를 미워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두 인물 모두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 이유가 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영숙이 소화기를 이용하는 이유도 그것이 꿈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장치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결말과 쿠키 영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관객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의도하기도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갖추고 이야기들이 납득이 가능한 수준에서 연결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은 영화의 엔딩과 쿠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다른 이야기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희미해진 이웃의 조명, 하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