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크홀] 리뷰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 여러분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감독의 전작이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고, 예고편과 포스터의 느낌부터 그리 재미있는 영화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아마 영화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관객분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보지 않고 영화를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까더라도 보고 까자는 것이죠. 그것이 제가 이 영화를 보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많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과도한 비판을 하다보면 분명 억지로 비판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들 것이고, 혹시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의 감상을 헤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싱크홀]은 예상만큼 아주 못 봐줄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도 있고,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 잠이오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서론을 이렇게 펼처놓았으니 제가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 아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영화 [싱크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영화의 ‘톤 앤 매너’입니다. 재난버스터를 표방하는 이 영화를 보다보면, 조금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보통 재난 영화를 떠올려보면,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아무리 재난 영화에 코미디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재난 상황만큼은 진지하게 표현되어서 나름의 긴장감을 형성하여서 영화의 상당부분을 담당한다는 것이죠. 영화 [싱크홀]을 보다보면, 분명 심각한 상황으로 보이는데 웃음이 세어나오는 순간이 생깁니다. 약간은 웃픈 상황들이 연출된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에는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영화가 재난의 심각함을 제대로 연출하지 못했다는 것과 웃픈 상황을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연출한 것이다라는 건데, 제가 보기에 [싱크홀]은 이러한 상황을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슬랩스틱의 아버지인 ‘찰리 채플린’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영화 [싱크홀]은 바로 이 말을 영화의 기조로 삼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인물들에게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상황인 것이죠. 이러한 코미디 연출은 상당히 고난이도 기술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으로 영화 [괴물]의 장례식을 꼽을 수 있습니다. 괴물에 의해서 희생된 희생자의 합동 장례식에서 주인공 강두가 자신의 딸인 현서의 영정사진을 보고가족들과 오열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영화는 이것을 코믹하게 연출을 하였습니다. 분명 인물들의 상황은 심각한 상황인데, 영화는 이것을 코미디로 연출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연출을 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바로 블랙 코미디나 풍자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영화 [괴물]은 하나의 거대한 풍자극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괴물이라는 괴생명체가 대한민국 한강에 등장했는데, 그 배경에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횡포가 존재했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죠. 심지어 자신들이 연구중인 약품이었던, 에이전트 옐로우를 실험하려는 모습까지 등장하죠. 크리처 영화였던 [괴물]에 내포되어 있는 이야기는 한국 내에서 미국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비판이 숨어있던 것이죠. 이러한 이야기는 [싱크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영화의 설정부터 풍자를 노린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어렵게 자신의 집을 마련한 주인공의 집이 하루 아침에 땅으로 꺼지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죠. 영화 속에서도 집 값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등장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집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등장합니다.
감독은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블랙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누구는 집을 사고 몇 달만에 2억이 올랐다더라, 원룸사는데 결혼을 어떻게하느냐 등 집 값에 대한 현 상황을 영화에 녹여내어서 풍자를 하려고 한 것이 감독의 의도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영화의 톤도 심각하지 않게 그려냄으로써 이 영화는 재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과장된 톤이 등장하기도 하고 약간의 신파가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이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바로 영화에서 느껴지는 허술함이 그것이죠. 영화의 의도는 상당히 괜찮게 느껴집니다.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마련한 주인공이 하루 아침에 집이 사라지는 상황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건이 필요할까는 고민하다가 내놓은 것이 싱크홀이라는 소재가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영화가 해야할 일은 싱크홀이라는 재난을 얼마나 그럴싸하게 표현하냐는 것이죠. 하지만 영화는 재난을 표현하는 것에는 꽤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영화가 ‘싱크홀이 생겼다’라고 했다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적게나마 그 원인에 대한 언급도 필요하고, 이런 재난을 대처하는 방법 등에서도 분명한 설명이 필요했으리라 봅니다.
이러한 설명을 하다보면 앞서 이야기한 블랙코미디라는 측면에서 너무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을 필요한 작업입니다.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을 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필연적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영화의 경우 상황은 진지하게 흘러가되 인물을 코믹하게 설정하여서 두 가지의 중심을 맞춰갑니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 [괴물]의 경우도 영화의 이야기를 상당히 진지하게 흘러가지만 주인공인 ‘강두’의 상황은 상당히 코믹하게 흘러갑니다. 즉, 상황은 진지한데 캐릭터가 매력적이라서 웃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죠.
이러한 지점에서 [싱크홀]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합니다. 싱크홀 밖에 있는 구조대의 상황은 진지하게 만들고, 빌라 주민들이 있는 상황은 코믹하게 그려낸 것이죠. 두 공간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구조대의 진지한 태도가 그렇지 않게 느껴지게 됩니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조대가 진지한 톤을 가져가다보니 싱크홀 내부의 이야기가 등장했을 때는 분명 웃긴 상황인데 웃기가 애매한 상황이 등장하는 것이죠.
결국 [싱크홀]은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아주 과장되어서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일처럼 보이게 만들던가, 진지하게 연출하여서 현실성있게 연출을 하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낀 [싱크홀]은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외부에 있는 구조대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주인공들끼리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구조라서 더더욱 개연성과 거리가 있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영화 내부에 노력한 흔적이 보이긴 합니다. 김성균, 차승원, 이광수 등 코미디에 능숙한 배우를 캐스팅하여서 배우들의 코믹 호흡을 보는 것에 흥미가 있었고,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신파에서는 상당부분 자제한 듯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소재와 목적이 가지는 한계는 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영화에 대한 결론을 내려보자면 저는 이 영화를 무난히 볼 수 있는 코믹 영화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주 망작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시도가 될 수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고, 가족끼리 보러가기에도 크게 부담이 없고 억지 눈물을 유도하는 과도한 신파도 없기 때문에 부담없이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포스터의 모습과는 달리 재난을 소재로 하였지만 재난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재난 영화를 보러간다는 생각보다는 코미디 영화를 보러간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홍보과정에서 대형 재난이라는 이야기보다는 코미디에 초점을 맞춰서 홍보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한국 관객에게 한국 재난 영화에 대한 신뢰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고, 영화도 재난보다는 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에 코믹재난극이라는 워딩을 사용한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