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 폴리 아 되] 리뷰
개봉 첫날 CGV 에그지수 64%로 상당히 안 좋은 평가를 받은 [조커 - 폴리 아 되].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님은 재미있게 봤다고 하여, 엄청나게 궁금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전작이 만만치 않게 파격적이었던 만큼 2편에서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이번 시간에는 [조커 - 폴리 아 되]에 대한 저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영화의 부제목이기도 한 ‘폴리 아 되’의 의미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폴리 아 되’는 감응성 정신병으로 불리는데, 두 사람이 하나의 환상을 품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제가 추측한 내용으로는 조커와 할리가 같은 환상을 보게 되면서, 같이 범죄를 모의하게 된다, 마치 [보니 앤 클라이드]와 같은 느낌을 예상했습니다. 물론, 실제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영화를 본 이후에는 ‘폴리 아 되’라는 의미가 조금 더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환상’보다는 ‘이상향’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영화를 보시면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조커]의 후속작입니다. 그렇기에 전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지에 대해서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되도록이면 1편을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영화 자체가 1편의 사건 이후의 내용으로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아서 플렉의 내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다수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1편을 보신 분들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2편만 보신다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볼거리로 소비할 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편만큼은 아니지만, 불편한 장면들도 꽤나 있는 편이고요.
[조커 - 폴리 아 되]는 아이맥스로도 개봉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1.43 비율까지 지원하는 영화로 나왔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 시각적 체험이 중요한 장면이 거의 없단 말이죠. 그럼에도 아이맥스 비율을 사용한 것은, 이 영화의 특징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아이맥스 비율을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써 이용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로 영화는 가로가 더 긴 화면비율을 사용합니다. TV와 차별화를 주기 위한 것이 시작이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의 눈이 가로로 놓여 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더 편안한 비율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영화 속 장면들은 사람이 나오고, 그 뒤로 배경이 같이 나오기 때문에 심미적으로 가로가 긴 비율이 둘 다를 잡기에 용이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람의 표정을 크게 잡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로로 긴 비율은 사람을 클로즈업하여서, 인물의 표정을 강조하기에 좋은 비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로로 조금 더 긴 비율을 가진 화면비를 사용하게 되면, 디테일한 표정을 강조하기에 좋은 것이죠. 그만큼 [조커 - 폴리 아 되]는 인물의 표정이 상당히 중요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각적 체험이 아니더라도 아이맥스 관람이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것이죠. 아이맥스 화면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화라는 점에서 아이맥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이맥스로 관람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조커] 1편은 개봉 당시에 미국 사회 내에서 적지 않은 반향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화가 상영하는 상영관에 경찰이 대기하기도 하는 등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유지되었죠. 이런 이유로 1편은 문제작으로 삼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2편은 1편 개봉 당시에 벌어졌던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고, 1편을 만든 뒤에 2편의 내용을 준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조커 : 폴리 아 되]는 현실의 이야기를 잘 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사회를 포함하여, 현실의 여러 국가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원인을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제 사회 정서에 관심이 있다면, 이 영화가 말하는 이야기들에 공감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나쁜 것에 대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1편에서 등장한 다크 히어로의 면모가 2편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죠. 1편에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던 아서 플렉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아서 플렉의 행보를 보면서, 나름의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크 히어로라는 네이밍이 붙은 것도 그러한 이유였을 것이고요. 하지만 감독은 관객들의 그러한 기대를 완벽하게 저버리기로 합니다. 그렇기에 조커와 할리 퀸의 범죄를 기대하고 관람을 하려고 했던 분들에게는 큰 실망을 선사할 겁니다. 한 편으로는 그것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조커의 기행을 기대하는 영화 속 조커 지지자와 조커와 할리 퀸의 범죄를 기대하던 관객들을 동일 선상에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누가 아서 플렉을 조커로 만들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절반의 대답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저는 뮤지컬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영화가 뮤지컬 영화로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도 있었지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뮤지컬 영화는 밝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편이기 때문이죠.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뮤지컬 영화에서 뮤지컬 넘버 장면은 대체로 판타지를 그릴 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즉, 뮤지컬 영화 속 뮤지컬 장면은 영화 속 인물이 그리는 판타지로 보셔도 좋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것을 판타지의 다른 의미로 해석을 했습니다. 아서 플렉의 상상, 환상을 그려내는 것에 뮤지컬을 사용했다는 것이죠. 이것은 뮤지컬 영화의 특징을 역으로 이용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판타지가 펼쳐지는 순간도 존재하지만,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을 만들기도 하죠. 특히나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뮤지컬로 그려지고 있어서 환상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헷갈리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환상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구분이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죠. 그것 자체가 아서 플렉의 머릿속일 겁니다.
1편에서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애매하게 하여서, 아서 플렉이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2편에서는 이것을 뮤지컬로 표현을 하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아서 플렉의 머릿속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론적으로는 영화가 뮤지컬 장르를 영화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에 상당히 잘 사용했다고 봅니다.
이 영화는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에 집중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품고 있는 인물이죠. 심지어는 어떠한 상황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정신 질환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사람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서, 참고 있던 감정들이 폭발하면서 뜻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죠. 그로 인해 살인죄 처벌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된 것이죠.
그의 변호사는 그를 심신 미약으로 감형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반대로 검찰에서는 그를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로 보며 사형을 구형했죠. 영화 초반만 하더라도 변호사는 아서 플랙의 편에서 그를 이해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심신 미약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것을 듣는 입장에서는 그런 그녀가 오히려 아서 플렉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마치 ‘아서 플렉은 정상적인 사고가 안 되는 정신 질환이 있는 바보다’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거기에 더해서 아서 플렉이 몰랐던, 몰라도 괜찮았을 법한 이야기까지 언급을 합니다. 그의 어머니조차 아서 플렉을 동정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 어머니의 권유로 코미디언을 꿈꿨던 그는 자신의 꿈마저 부정당하는 느낌 었을 겁니다.
오히려 그에게 수시로 경고를 하는 듯한 판사는 그가 하고 싶은 것을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도록 허용을 하고, 그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법이라는 것이 그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서 플렉에게 필요했던 것은 처벌보다는 보호와 치료, 관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언론은 ‘생방송에서 머레이를 죽인 희대의 살인자’라는 타이틀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진행하는 인터뷰에서도 아서 플렉은 은근히 자극하면서, 그가 조커의 모습이 보이기를 원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대중들 또한 비슷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하지 못한 것을 조커가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아서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조커의 모습을 잃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할리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 내면에 있던 ‘조커’의 모습이 점점 올라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서 플렉은 ‘조커’라는 가면을 쓴 아서 플렉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조커’가 되지는 못했던 것이죠. 그 계기가 된 것은 ‘개리 퍼들스’의 증언이었을 겁니다. 영화를 통틀어서, 개리만이 아서 플렉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그것이 아서가 흔들리게 되는, ‘조커’를 포기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는 ‘조커’가 되어야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약자의 분노를 앞세워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있던 것입니다. 처벌하려는 검사, 그를 변호하면서 자신의 선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변호사, 그의 ‘조커’ 다움을 담으려고 했던 언론, 더 큰 사고를 만들어주기를 바랐던 대중들까지. 무엇이 아서 플렉은 조커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대답에 영화는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합니다. 그 원인은 너무나도 다층적이기 때문이죠. 다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커’와 같은 문제아가 문제를 일으켜주기를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죠.
[바보 빅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어린 시설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던 ‘빅터’가 알고 보니 IQ 178의 천재였다는 이야기였죠. [조커 : 폴리 아 되]를 보면서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자아는 자신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로 이뤄진다는 것이죠. 선천적인 질병으로 인해서,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고, 그로 인해서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위축된 삶을 살았던 것이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삶을 살다가 어떠한 사고로 인하여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 그가 상대를 위협하자 자신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과도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관심 때문에 할리라는 사람도 만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 같았던 할리마저 떠나가게 된 순간,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잃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에 아서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장면에서 해방의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여기서 아서는 분명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왠지 그에게는 해피엔딩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커 : 폴리 아 되]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양가감정을 들게끔 잘 연출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서사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였거나, 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그저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좋아하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코미디언이 꿈인 남자였죠. 하지만 그에게 어떠한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그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런 질문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그를 ‘조커’ 만든 것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죠.
개인적으로 [조커 : 폴리 아 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수준 높은 문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다큐처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로 잘 승화하여서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아서 플렉이 왜 그런 변화를 하게 되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 영화에 다크 히어로의 면모를 기대했다면 영화에 큰 실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영화가 오히려 그러한 기대를 역으로 이용하여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야기는 여기에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그런 이유로 일반적인 상업 영화를 기대한 분들은 실망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뮤지컬 장르 자체가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라는 점에서 더더욱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이 영화에 호기심을 가질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연출한 토드 필립스 감독은 과거 [행오버]라는 코미디 영화 시리즈를 만들던 감독입니다. 그랬던 그가 [조커] 같은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전 [행오버]를 통해서 성역 없는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으나, 사회에 정치적 올바름에 너무 민감해졌다는 언급과 함께, 이러한 현상에 대한 반감이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이번 영화인 [조커 : 폴리 아 되]에서도 그런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감독인 만큼 영화다운 표현으로 말이죠.
상업적인 면보다 예술적인 성취가 더 강한 영화 [조커 : 폴리 아 돼], 영화를 관람하신 여러분들은 재미있게 보셨나요? 여러분들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조커 : 폴리 아 되] 어떻게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