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키드 : 파트 1]
<위키드>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영화다’. 최근에 종영한 [정년이]와 비슷한 장점을 가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위키드>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매력이 영화의 매력일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필자는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뮤지컬을 좋아하는 편이다. 다만, 뮤지컬 <위키드>는 관람한 적이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뮤지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필자가 생각하는 뮤지컬 영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뮤지컬 넘버의 순서나 스토리를 그대로 영화화한 ‘뮤지컬의 문법으로 제작된 뮤지컬 영화’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지만 일부 내용이나 구성이 영화라는 플랫폼에 맞게 각색이나 편집이 적용된 영화를 ‘영화의 문법으로 제작된 뮤지컬 영화’라고 구분할 수 있다.
뮤지컬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에는 [캣츠]나 [레미제라블]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영화의 문법으로 제작된 뮤지컬 영화는 [라라랜드]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위키드>는 뮤지컬을 그대로 영화로 옮겼다. 대체로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 원작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을 해도 뮤지컬이 보여주는 세계관과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관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위키드>는 뮤지컬의 세계관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뮤지컬 넘버에 대한 표현에서 뮤지컬을 최대한 재현하려는 노력을 했다. 때문에 무대에서는 할 수 없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세트나 의상, CG 등을 이용해서 <위키드> 세계관에 현실성을 부여한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영화를 연출한 ‘존 추’ 감독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스텝업> 시리즈와 <나우 유 씨 미 2>, <인 더 하이츠> 등을 연출하면서 퍼포먼스가 강조되는 영화를 연출해 왔던 감독이다. 그런 감독의 특징이 영화의 초반부터 묻어난다. 영화의 초반에는 화려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관객들을 <위키드> 세계관으로 알아서 빠져들게끔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압도되는 피날레까지. 다만, 그 중간은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것은 ‘존 추’ 감독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뮤지컬이라는 콘텐츠 자체가 그런 펀이다. 1막의 시작과 피날레에 힘을 주고, 2막 전개에 필요한 모든 이야기는 그 사이에 모두 집어넣는다. 그래서 대체로 뮤지컬 1막의 중반부는 비교적 지루한 편이다. 뮤지컬을 그대로 옮기다 보니 영화에도 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것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영화화가 상당히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각적인 모습, 세트나 의상, 퍼포먼스 부분에서 상당한 눈호강을 시켜주는 영화다. 애초에 영화 기획 단계에서 이러한 것을 초점에 두고서 ‘존 추’ 감독을 캐스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급하고 싶은 좋은 기획이 바로 ‘아리아나 그란데’의 캐스팅이다. 그녀의 노래실력은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뮤지컬 넘버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뒷부분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고, 진짜 인상적인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캐릭터 소화력이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미국의 ‘백인 금발 여자’라는 캐릭터가 주는 전형성이 있다. <위키드>의 글린다도 그런 전형적인 금발 여자 캐릭터를 보여준다. ‘아리아나’는 그런 캐릭터를 너무나도 찰떡같이 연기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밉지 않은 선에서 보여준다. 심지어 영화 초반만 하더라도, 그런 느낌이 전혀 안 드는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여러 모습들이 분명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영화는 재미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반응이 호들갑이라는 생각이 드는 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반응이 납득이 되는 영화다. <위키드>라는 작품 자체가 한국인이 좋아할 작품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최근에 종영한 [정년이]는 상당히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초반만 하더라도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으나, 배우가 성장하는 과정, 연기를 하면서 겪게 되는 상황들을 상당히 잘 그려내어서 인상적이었다. 배우가 캐릭터를 만들고, 상대 배우와 연기를 맞추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 등에 대한 표현이 인상적이어서, 연기를 하고 싶어 하거나 관련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만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필자는 <정년이>를 보면서 <펜트하우스>가 떠올랐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드라마 사이에는 하나의 매력적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드라마의 주요 콘텐츠라는 것이다. 배우들도 자신의 연기를 위해서는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나야 한다. 차로 예를 들어보겠다. 시속 300km를 넘기는 스포츠카가 있다고 해보자. 이 스포츠카를 서울 한복판 도로에서 주행한다고 하면, 그 성능을 모두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것이다. 서울에서는 50km 내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스포츠카가 자신의 성능을 모두 발휘하기 위해서는 300km로 달릴 수 있는 도로가 필요하다. 이것은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막장드라마라 불리는 <펜트하우스>를 개인적으로 고평가 하는 이유는 적어도 제작진이 대충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장’이라는 장르로 배우들의 연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이야기,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배우들에게도 풀액셀을 밟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년이] 또한 배우들의 다양한 연기, 특히 감정 과잉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은 배우들의 극한의 연기, 감정이 가득한 연기를 좋아한다는 것으로 연결 지어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노래에 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뮤지컬은 높은 고음으로 내지르는 발성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 모든 뮤지컬에 그런 넘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디즈니 영화에서도 상당한 고음과 발성으로 위압감을 주는 노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체로 음악이나 상황으로 웅장함을 전달하려고 한다. 즉, 배우나 가수의 가창력에 기대기보다는 시각적, 음악적으로 뮤지컬의 색을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아닌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뮤지컬인 <레베카>, <영웅>, <위키드> 등을 보면 한 사람의 고뇌와 고민에 대한 감정이 발성 가득한 넘버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42번가>나 <캣츠> 등의 뮤지컬은 그런 특징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기에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는 해당 뮤지컬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한국 사람들은 한 사람의 시련이 담겨 있는 감정이 풍부한 노래를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배우, 가수가 탄탄한 발성으로 높은 고음으로 내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시선으로 바라본 <위키드>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위키드>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특히나 영화로써의 재미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뮤지컬 한 편을 본다는 생각으로 영화 <위키드>를 본다면, 꽤나 만족스러운 관람이 될 것 같다. 160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서는 그렇게 긴 시간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말 뮤지컬 한 편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영화가 1막이라는 것이 상당히 아쉽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모든 뮤지컬은 2막이 하이라이트다. 무엇보다 1막은 길고, 2막은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렇다는 것은 영화 <위키드> 또한 파트 1보다 파트 2가 무조건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년 이맘때 개봉할, 파트 1보다 더 재미있을 <위키드> 파트 2를 기다리게 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