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데블스 플랜]에 분노하는가?
요즘 사람들의 분노를 가장 많이 사고 있는 예능이 있다면, 아마 [데블스 플랜 시즌2] 일 것이다. 초반에는 지적이고 전략적인 게임 예능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불만은 단순한 게임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시즌에서 시청자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 부분은, 일부 플레이어들이 승부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본인의 생존이나 우승이 아닌 타인의 우승을 돕는 데 몰두하는 듯한 모습 때문이었다. 전략이라기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게임이라기엔 너무 느슨한 선택들이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과연 '두뇌 싸움'을 보여주는 예능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특히 감옥동-생활동의 구도 속에서 형성된 정서적 연대가 전략보다 우선시 되는 상황은, 본래의 재미 요소였던 '정정당당한 두뇌 싸움'을 기대한 시청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더 나아가서는 게임 구조적으로 한 번 형성된 연대를 벗어나기 힘들게 구성되었다는 면에서 단순 출연자들만 비난을 받는 상황은 아니다. 이러한 구조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모습이기에 더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과거 영화 [기생충]을 관람한 몇몇 사람들은 너무 현실적인 모습에 불편함과 거북함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리얼리티가 현실의 모습,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노의 이면에는 하나의 감정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바로 '승부에 대한 기대'다. 우리는 단순히 누가 이기고 지느냐보다, 어떻게 이기고 어떻게 지는가를 보고 싶어 한다. 이기기 위해 감정을 컨트롤하고, 최선의 수를 계산하는 그 긴장감. 그게 바로 우리가 이른바 '두뇌 게임'에서 느끼는 재미다.
잠시 개인적인 그리고 이 브런치의 본질인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가 보려고 한다.
(사실 이전부터 영화 <승부>를 관람한 이후에 '승부'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이 글도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 에세이로 풀어갈 예정이었다.)
영화 <승부>는 '승부의 감정'을 다시 일깨워준 작품이었다. 바둑이라는 정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그 안에 담긴 심리전, 거리감, 그리고 관계의 온도를 굉장히 세밀하게 그려냈다.
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승부'라는 것을 피하며 살아왔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면 아예 도전하지 않았다. 일에서도, 연애에서도, 심지어 취미에서도. 랭크 게임처럼 누군가와 직접 경쟁하는 구조는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피했고, 혼자서 편하게 할 수 있는 게임을 더 선호했다.
게임은 원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경쟁 구조 속에서는 도리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무언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할 때, 내가 지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피하기'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런데 <승부>는 내 안에 묻혀 있던 감정을 다시 꺼내줬다. 바둑이라는 게임은 어쩌면 가장 정직한 승부의 구조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액션도, 말싸움도 없이, 오로지 흑과 백, 두 사람이 머리로 부딪히는 싸움. 그런데 그 안에는 감정이 있었다. 승부를 진짜 승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적인 흔들림. 상대를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관계 속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흔들림.
그게 마치 나 같았다. 승부는 못 하겠고, 지는 건 두렵고, 이기면 관계가 멀어질까 걱정되는. 어쩌면 나는 '이기고도 외롭고, 져도 무너지는' 그런 구조 속에서 계속 눈을 피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부>를 보고 난 뒤, 나는 다시 경쟁하는 세계로 발을 들였다. 랭크 게임도, 한동안 흥미가 식었던 E-스포츠도, 심지어 야구도.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승부의 핵심'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내 이득의 극대화, 상대 이득의 최소화. 그 간단한 논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승부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워졌다.
사람은 결국 승부하며 살아간다. 회사에서도, 관계 속에서도,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그 승부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즐기는 것. 그것이 어쩌면 '성숙함'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데블스 플랜]은 나의 승부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선택지였다. 특히나 플레어들이 자신의 생존 혹은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순간, 그리고 그 순간에 상충될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데블스 플랜]과 같은 두뇌 게임을 보는 이유는, 그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게임들이 하나의 '승부'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스포츠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도 단순한 신체 활동 때문만은 아니다. 진심으로 임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감정과 서사, 그 과정 자체가 우리를 끌어당긴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그렇게 치열한 승부를 자주 마주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스포츠나 게임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유로파리그에서 우승을 한 손흥민 선수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그의 오랜 시간에 걸친 도전과 노력,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울컥할 수밖에 없다. 전성기에 함께했던 동료들이 모두 떠난 뒤, 주장을 맡아 어린 선수들과 함께 팀을 꾸려가면서, 선수 스스로가 가장 힘든 시즌이라고 언급했던 만큼, 그렇게 힘겹게 거머쥔 승리의 순간이기에, 보는 이 역시 그의 마음고생을 함께 떠올리면 그것을 지켜봐 왔던 팬들도 감정적으로 동화되기 마련이다.
[데블스 플랜]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을 꼽자면 단연 세븐하이다. 그는 매 게임마다 최선을 다했고, 무엇보다도 '승부를 승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승부가 끝난 뒤에는 감정을 정리하고,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또한 감옥에서 함께 지낸 손은유 역시 모든 게임에 진심으로 임했다. 그들의 플레이는 전략적이었고, 마지막 순간에 서로의 판단을 존중해 주는 모습은 진정한 스포츠맨십 그 자체였다. 세븐하이가 팀에서 벗어나 개인플레이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손은유는 그 선택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마저 하나의 '승부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데스룸에서 본인이 가장 먼저 생존했음에도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승리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함께 진심으로 승부를 펼쳤던 상대에 대한 존중, 그리고 긴 여정 끝에 터진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다. 이 순간, 그녀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을 시청자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승부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앞에서 언급한 두 플레이어도 인간적인 매력은 저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들이 승부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부 플레이어가 승부에 최선을 다한 그들을 기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에 분노한 것이다. 누군가는 감옥동에서 벗어나 우승, 아니면 생활동에 한 번이라도 가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누군가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우승을 도우며 감옥동 사람들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 자기 팀이 아닌 다른 팀의 승리를 돕는 선수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첫 번째 게임이 잘 풀려서 생활동으로 가게 된 그들은 어쩌면 본인이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람을 선택한 것일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면으로 보자면 그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의 우승을 바랐던 것이다. 다만, 그것이 우승을 위한 승부를 하기 위해서 모인 집단에서 그런 행동이 등장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데블스 플랜]에 참여한 일반인 참가자들의 경쟁력은 1000:1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데블스 플랜]이라는 게임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그런 곳에서 게임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앞세우려고 했다면,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 <데블스 플랜> 초반, 빌런일 것 같았던 그는 <데블스 플랜>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다. 승부의 진심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호전적인 태도였다. 그만큼 그가 승부의 진심이었던 것이고, 승부에서 벗어난 그의 모습은 가장 인간다움을 보여준 플레이어였다. 건전한 마인드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뛰어난 학업 성적을 위한 학습을 받았다면, 그는 교육을 잘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교육감이라서 그런가?...)
* 프로그램 내에서 가장 안 좋은 환경에 오랜 시간 있었음에도 그 누구보다 긍정적인 모습이 매력적인 그녀다. 특히나 투덜이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그녀였다. 그런 마인드만큼이나 매 게임에 최선을 다했던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프로그램 곳곳에서 그녀의 직업인 M&A 변호사다웠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해서 흥미로웠다. (갈등 상황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듣고, 중재하려는 모습이...)
우리가 이러한 승부에 열광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을 경험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이 사라진 모습이기에 사람들은 더욱 분노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 물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승리를 위해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최현준이 오히려 프로그램 취지에는 더 잘 맞는 캐릭터였을지도 모른다. 세븐하이나 최현준 모두 방법이 달랐을 뿐,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다만, 세븐하이의 방법이 조금 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태도를 보여주었기에 대중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결국 승부는 누가 이기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임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그 승부는 이미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모든 경쟁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방식으로 이기는 법, 지는 법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