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불분명한 영화화의 사례
희곡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연기를 배웠던 분들이라면, 이 희곡을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희곡이 영화로 나왔다고 하여 기대를 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저는 원작 희곡을 몰랐지만, 러시아의 유명 작가인 ‘안톤 체호프’가 쓴 희곡이라고 하여 관심을 가졌습니다. 고전 희곡을 현대의 영화에서는 어떻게 해석을 했을지 궁금했습니다. 영화 [갈매기]입니다.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은 종종 있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멕베스’ 등이 있습니다. 우선, 저는 영화 [갈매기]의 원작인 희곡 [갈매기]를 보지 않았습니다. 전작에 대한 정보 없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를 같이 관람한 친구가 연기를 공부하고 있어서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관람하려고 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고전 희곡이 원작이라는 점과 러닝타임이 짧다는 점입니다. 저는 러닝타임이 짧은 영화를 좋아합니다. 영화의 내용이나 주제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짧은 임팩트를 주는 작품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영화 [갈매기]는 1시간 3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2시간이 넘는 영화라는 착각이 듭니다.
전 이 영화가 재미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작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 때 원작을 아는 사람만 보라고 권장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분명, 영화도 하나의 작품입니다. 그 작품은 그 작품에서 모든 것이 끝나야 합니다. 마블 유니버스처럼 이어진 내용이 아니라면, 이 영화는 통해 영화의 내용과 말고 싶은 이야기가 전달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가 어렵더라도 보면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있어야 합니다. 최근 개봉한 [버닝]은 결코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생각할 이야기가 많고, 상징적인 표현이 많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풀어가야 할 물음표가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버닝]을 보면, 주인공의 욕망과 분노가 보입니다. 디테일한 것까지 모두 잡을 수 없더라도, 관객들이 가장 주된 이야기의 맥락이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 영화 [갈매기]가 그런 배려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좋은 이야기만 하는 영화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분명 보는 재미도 있어야 합니다. 흔히, 예술성이 높은 영화라고 하면 지루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가 없는 영화는 예술성이 높은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중얼중얼한다면 아무도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말을 하는 주체가 설득력이 있고, 신뢰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공감 혹은 감정의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가 영화 초반에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영화 속 인물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공감 코드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인물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겁니다.
혹은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그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부여되어야 합니다. 주인공의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필요한 것이죠. 저는 이 영화에서 공감되는 인물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영화가 중간중간 생략이 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콘스탄틴으로 보였습니다. 그가 하는 생각이나 고뇌를 보면, 마치 [버닝]의 종우를 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이리나입니다.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고집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내가 무엇을 생각해봐야 하고,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점을 시사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유희를 위한 것이라면 이 영화는 굳이 왜 다시 만들어졌을까요?
저는 이 영화가 선택과 집중에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을 현대의 영화로 재해석해서 희곡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현대물을 만들거나, 정공법으로 연극적인 연출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도 있고, 캐릭터들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여 분명 매력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짧은 영화임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였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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