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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도씨 Sep 07. 2021

"엄마 미워"

18년 만에 처음으로 엄마가 밉다고 말했다.

2003년 5월 9일의 일기, 지금의 나는 남보다 나의 마음을 알고 싶다.



무슨 야단을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밉다”라는 말을 곧잘 표현하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해코지하고자 하는 복수심이 아닌 온전히 나의 속상한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말.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가 미워도 밉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나는 어릴 때부터 일찍이 어른들이 말하는 똑 부러진 장녀가 되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나는 내 이름을 한글로 쓸 줄 알 때부터 우리 집에 결핍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빚더미에 얹혀져 하루하루 먹고살 벌이가 못 되는 가정 형편,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기 싫었던 아빠는 매일 술에 빠져 집을 며칠씩 비우기 일쑤였고 그런 아빠를 엄마는 너무나도 힘들어하고 미워했다. 아빠 역시 그런 엄마를 귀찮아하고 미워하고 있었다. 두 미움은 날카로운 말들로 표현되었고 때로는 말을 넘어서 몸으로도 표현이 되었다. 조롱과 불만이 섞인 목소리가 살려달라는 애처로운 비명이 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불 속에 숨어 자는 척을 했다.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어.’


내가 깨어 있어도 그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을 알았고 눈을 뜨고 그 상황을 보게 되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서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나서서 말리기보다는 숨기를 택한 것이다. 나의 어린 동생들도 나란히 누워 자는 척을 했다. (실제로 동생들도 자는 척을 하고 있었는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이불 속에서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 잠이 들고, 그렇게 아침에 눈을 뜨면 아빠는 속옷 바람으로 뻗어 자고 있었고 엄마는 아침을 준비해 상을 차려주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온 식구가 태연하게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는 했다. 그런 평온함을 깨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동생들과 손을 잡고 등교를 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면서 간밤에 있었던 무서운 일들은 머릿속에 정말 없던 게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나나 동생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방법을 찾아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그 판단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두 변함없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어린아이의 눈물로 호소했어도 그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을 게 분명했기에.


이게 나와 우리 가족의 일상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착한 아이였기에 이 모든 일이 가난함과 아빠의 폭력으로부터 비롯되어 일이 시작되었다는 걸 알았고 그렇기에 나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힘들게 키우고 있으니까.’

‘엄마도 일하면서 집안일 하는 게 힘들겠지?’

‘아빠가 못되게 구니까 엄마가 많이 아플 거야.’

 

엄마에게 나라는 존재만큼은 아픔을 주는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TV 속 화목한 가정이란 완벽한 틀에 맞춰지지 못하는 우리 가족이 어떻게든 그 틀에 맞춰지기를 바랐고, 그 틀에 맞추기 위해서는 내가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었다. 장녀로서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만큼 내가 엄마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를 져왔다. 그게 내가 이 집안에서 해내야 하는, 화목한 가정이 되기 위해 꼭 해내야 할 역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은 똑 부러진 장녀의 의무로서, 그리고 점차 커가면서 내가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가 되었을 땐 엄마와 딸보다는 여자와 여자로서 엄마의 삶에 점차 공감을 해왔던 것 같다.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일찍이 돈을 벌다가 23살에 예기치도 못한 첫 출산을 하고 그 후로 내리 둘, 서른이 되기도 전에 삼 남매를 키워야 했던 그녀. 경제력은 없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우고 걸핏하면 술에 취해 폭력을 일삼았던 남편과 함께 살아가야 했던 그녀. 그런 엄마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지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아픔을 함께 안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미움, 슬픔을 내 마음속에 꼭 숨겨두었다. 밉다는 말이 입안에서도 맴돌지 못하게 몸속 저 밑바닥에 가라앉혔다.


그런데, 18년이 지나 처음으로 밉다는 말이 나의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자연스러운 배설이 아닌 마치 구토를 하듯 더는 내 의지로 감정의 분출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엄마, 왜 이렇게 미워?"

"아빠, 대체 왜 그렇게 살았어?"


이제는 나의 부모, 나의 가족에게 미움을 고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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