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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도씨 Sep 23. 2021

"그만 뒀다."라는 말을 그만 뒀다.

구원은 셀프, 우울에서 나를 위로하게 된 계기


"어쩔 수 없지 뭐."

라는 말을 줄곧 달고 살던 때가 있었다.


사람 간에 살아가는 일들에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든 간에 실수와 잘못들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나 역시도 남에게 항상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으니 그게 최선의 대처라 믿어왔다.


항상 즐겁게 지내던 같은 반 친구들이 갑자기 나를 무시하며 따돌릴 때에도,

술에 취한 아빠에게 손찌검을 당하며 분풀이 상대가 될 때에도,

수년간 함께 였던 사람이 "미안해. 네가 잘해줄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어." 라며 작별을 고했을 때에도.


모든 일을 나는 불가항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일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것처럼 나쁜 일도 마찬가지 일 것이고, 화를 내거나 울면 도리어 내가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며 참았다. 그래, 내 감정에 솔직해져도 벌어진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주어진 결과에 순응하는 과정이 분명 나를 단단한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단단하다 못해, 아주 작은 충격에도 유연하지 못해 쉽게 부러져 버리고 마는, 그런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어버렸다.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무식하게 학대하고 있었다.

맞아. 나는 어쩔 수 없지, 그만둘래 라는 말을 정말 하고 싶지 않았었다.


우울한 나의 정신이 내 몸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전문가를 찾아갔었다. 10주 간의 상담 시간을 통해 서툴게나마 나의 진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본인의 우울한 모습을 떠올리며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보세요. 뭐가 보이나요?”

갑자기 눈을 감고 생각을 하라니… 상담사의 지시에 나는 순간 당황하였다가 이윽고 암흑 속에 어떤 존재를 보게 되었다. 바닥에 홀로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나였다.


“본인에게 다가갈 수 있나요? 다가가서 말을 걸어볼래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왜 하필 울고 있는 나를 만들어 낸 걸까? 나는 울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나는 나를 보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말을 걸기 어려우면 옆에 앉아 볼까요? ‘나’는 어떤 반응을 하나요?”


내가 불안해하는 걸 눈치챈 상담사의 새로운 지시에 따라 나는 나의 옆에 나란히 주구려 앉기로 했다.


“… 여전히 계속 울기만 해요. 가까이 가도 계속 울기만 해요.”

“본인은 어떻게 해주고 싶으세요?”

“그냥 아무 말 않고 기다려줄래요. 다 울고 날 때까지.”


그렇게 나는 울고 있는 ‘나’의 곁에 앉아 계속 기다렸다. 나를 쳐다보지 않아도, 울음을 그치지 않아도 기다려주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면 이대로 영원히 같이 머물고 싶었다. 나를 내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었다.


그렇게 10주간의 상담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그 생경한 경험을 한 후로 나는 ‘나’와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신한다. ‘나’는 이제 고개를 들고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고. 눈물이 그치지 않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야, 팀장이 구원은 셀프란다.”


전 회사 동료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위트 있으면서 이렇게 간결하고 강한 말이 어디 있을까! 그 상담 기간 동안 나는 ‘나’를 마주하고 그 간의 나의 무기력함과 슬픔의 시간을 위로받았고 구원받았다. 우울한 삶에서의 구원의 해답은 나에게 있었다. 나의 감정, 나의 판단에 더욱 솔직해지자. 나를 더 이상 뭉개버리지 말자.


‘왜 그렇게 나를 따돌리지 못해 안달이야? 너넨 뭐 나은 게 있는 줄 알아? 혼자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들이.’

‘아빠, 내가 뭘 했다고 나에게 그래? 최악이야. 아빠도 똑같이 고통받아봐.’

‘그래 잘 가! 진작에 솔직하게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니.’


그때의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말 대신에 말이다.


얼마 전 마지막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약 6개월 만에 약물 치료가 끝이 났다. 우리 다시 보지 않기로 해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재치 있는 인사와 함께 병원 문을 나섰다.


분명 언젠가는 또 찾아오게 될 날이 있겠지. 하지만 그런 날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솔직할 수 있는, 나를 위로하고 구원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번 더 주어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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