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도둑질

별풍 생기기도 전에 게이머 후원하던 어린이

by 때 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어쌔신크리드고 롤플레잉 게임에선 항상 도둑 직업군을 선택한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정의를 실천한다는 특성이, 임무를 누가 수행하는지 모를 수록 더 유능하다는 특성이 멋져 보였다. 정작 나는 도둑질에 젬병이다. 책잡힐 일을 만드는 게 무서워 상상만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어쩌다 절도를 한다면 밤새 잠을 뒤척이다 쇠한 얼굴로 경찰서에 이실직고할 거다. 그런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도둑질이 있다.


학교 가는 긴 골목 초입의 딱따구리 문구점에서 파는 볼펜, 백 원짜리 뽑기, 더 걸으면 나오는 분식집에서 파는 파란색 노란색 슬러쉬(마시고 나면 꼭 혓바닥에 색이 남았다). 여덟 살,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게 가지고 싶은 건 많았다. 정기적으로 받는 용돈은 없었고, 어쩌다 한 번 받는 오백 원 천 원을 아껴가며 쓰던 터라 쇼핑하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볼 뿐이었다.

딱따구리 문구점 앞엔 네모난 게임기 두 대가 있었다. 조이스틱으로 동작하는 게임기는 백 원을 넣으면 캐릭터가 죽을 때까지 게임을 할 수 있었다. 한 게임기엔 동물 철권이라고 불리는 블러디 로어가 깔려 있었고, 다른 게임기는 펭귄 캐릭터가 적에게 폭탄을 던지는 게임인 펭귄 브라더스가 있었다. 나는 조작이 그나마 쉽고 캐릭터가 귀여운 펭귄 브라더스를 아주 좋아했다. 문구점 게임기 앞은 항상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교를 하다가 다섯 여섯 명 되는 아이들이 멈춰 서 십 분 넘게 구경하다 집에 가는 식이었다. 관람객은 특히 고학년 오빠들이 게임의 최종 보스까지 도전할 때 몰렸다.

나도 적은 돈을 가지고 게임에 도전했다. 하지만 손가락도 굼뜨고 소위 ‘게임 뇌’가 발달하지 않았던 나는 첫 번째 라운드 보스인 소라게를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유독 내 펭귄만 금방 죽어 분했다. 꼭 마지막 라운드 보스를 격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라운드를 깼을 때 철옹성 같은 게임기가 어떻게 패배를 인정할지도 궁금했다. 아쉽지만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친구에게 자리를 내어줘야했다. 나보다 더 많은 라운드까지 간 친구의 등 뒤에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나의 한계를 깨달았다. 전략을 바꿔야 했다.


게임기 앞에서 자주 마주치던 오빠가 ‘아 씨’ 말하며 일어났다. 화면엔 멍청한 표정을 한 펭귄이 계속하고 싶냐 물으며 십 초를 세었다. “이걸로 해!” 나는 그에게 얼른 백 원을 건넸다. 시간이 가기 전에 백 원을 넣어야 죽은 라운드부터 이어 할 수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는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얼떨결에 돈을 받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높은 라운드라 펭귄은 금세 쓰러졌다. 나는 또 그의 등 뒤에서 백 원 든 손을 불쑥 내밀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이 죽으면 백 원을 건네줘 계속 게임을 하게 만들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린 여자애는 딱따구리 문구점 게임기의 큰손이 되었다. 그들에겐 전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우리 사이엔 어떤 강압도 오가지 않았다. 순전히 자발적 행동이었다. 더 오랫동안 펭귄이 모험하는 걸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순수하게 기뻤다. 하지만 초딩에게 펭귄의 모험은 너무 험난했다.

몇 안 되는 나의 돈은 게임기가 무참히 먹게 되었다. 하교 시간에 문구점 사장님에게 천 원 지폐를 건네며 “이거 백 원짜리로 바꿔주세요!” 외치는 일이 잦아졌다. 당연히 용돈이 모자랐다. 문구 쇼핑과 슬러쉬는 차치하고, 인생의 낙이던 이백 원짜리 과일 맛 껌, 백 원짜리 불량식품을 끊어도 부족했다.

큰손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이틀 전에 오백 원을 받은 터라 엄마는 용돈을 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따 설거지를 한다고 해볼까 고민하던 차에 불현듯 안방에 있던 황금색 돼지 저금통이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가 종종 거스름돈을 넣던 그 저금통은 다회용이라서, 아래를 뒤집어보면 저금통을 열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침을 꼴깍 삼켰다. 바른 생활(도덕) 시간에 분명 도둑질은 나쁜 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딱 한 번만, 몇백 원만 가져가면 절대로 모를 거야.


어느 날 오후, 하교한 집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출근하고, 할아버지는 경로당에, 할머니는 동생과 산책하러 나갔을 때였다. 안방 문을 슬쩍 열었다. 황금 돼지는 화장대 위에 있었다. 웃는 돼지의 눈을 애써 피해 저금통의 발을 땄다. 아주 은밀하고 치밀했다. 아무도 내가 안방에서 돈을 훔치고 있다는 생각은 못 할 거고, 기껏해야 화장실에서 발이나 씻고 있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무사히 오백 원을 꺼내고 방을 나오려는데 손에 땀이 촉촉하게 뱄다. 돼지는 여전히 순진하게 웃었다. 오백 원을 바지 주머니에 잘 넣고 얼른 문구점으로 달려갔다. 다시 큰손이자 스타가 될 시간이었다.

나의 양심적인 다짐은 다음 날 바로 깨졌다. 나는 저금통을 열어 야금야금 백 원 이백 원 꺼내는 짜릿함에 금방 맛 들여버렸다. 내 낙을 포기하지 않고도, 심지어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수첩을 사도 게임을 볼 수 있다니 행복했다. 돈이란 건 좋은 거구나. 처음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퇴근한 엄마 아빠가 저금통에 저금하는 걸 볼 때는 양심이 찌릿 아팠지만 그래도 돼지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점점 더 대담해져 한 번에 오백 원까지도 가져가게 됐다.


학교 가는 날 아침. 전날 엄마 아빠가 퇴근하기 전에 미리 동전을 빼놓는 걸 까먹어 한 푼도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이제 막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려는 중이었다. 일을 벌이기에 안전한 시간은 아니었다만 나도 곧 등교해야 했기에 마음이 급했다. 금방 빼면 되겠지. 이때까지 잘 해왔잖아. 고민하다가 슥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럴 일은 없지만, 기분 탓인지 돼지가 좀 홀쭉해진 느낌이었다. 나는 능숙하게 저금통에 있던 동전을 털었다. 오늘은 딱 이백 원만 가져가야겠다. 저금통 뚜껑만 닫고 나면 또 하나의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

그 순간, 안방 문이 활짝 열렸다. 나는 손에 저금통과 동전을 든 채로 엄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찰나가 영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온몸에서 핏기가, 온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엄마의 눈이 금세 차가워졌다. “지금 뭐 하는 거니?”

엄마는 안 그래도 최근 내 책가방에서 사준 적 없는 학용품이 발견되어 미심쩍었다고 한다. 그는 그냥 용돈을 모아 샀겠지 생각하면서도 의심을 키워갔다. 그러던 중에 등교 준비는 안 하고 갑자기 안방으로 들어가는 날 보았고, 문을 열어본 것이다. 돈은 뺏기고 저녁엔 할아버지가 등 긁던 회초리로 아빠에게 종아리를 몇 대 맞았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한 마디 씩 했다. 다들 돈을 어디다 썼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엉엉. 잘못했어요. 나는 눈물 콧물 쏟으며 사실대로 이실직고했다. 갖고 싶은 게 많았다고. 특히 딱따구리 문구점 앞 게임기에 썼다고. 내가 쓴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게임 더 하라고 줬지만 협박은 받지 않았다고. 듣는 가족의 표정이 허탈했다. 종아리도 후회도 쓰렸다. 아프고 부끄러워 눈물이 나왔다. 왜 그랬을까. 아무리 그래도 도둑질은 하면 안 됐는데, 바른 생활 교과서에 그렇게 나와있었는데.

멀지 않아 저금통은 분홍색 일회용 돼지 저금통으로 교체되었다. 큰 실패를 경험하니 다시는 저금통에 눈길도 주고 싶지 않았다. 황금색 돼지는 엄마 화장대 서랍 깊은 곳에 유배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봤던 돼지의 미소가 어쩐지 무섭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묘령의 큰손 역할도 끝났다. 문구점 앞 게임기를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게임을 잘 하는 오빠들한테도 인사하지 않고 지나쳐갔다. 결국 펭귄 브라더스의 마지막 보스를 만나지 못했다.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건 게임 스트리밍 방송을 볼 때였다. 시청자가 게임 스트리머에게 돈을 후원하고, 스트리머는 그 동력으로 게임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어쩐지 친숙했다. 그러니까 나는 게임 스트리밍 문화가 생기기 한참 전에 누군가의 시청자이자 후원자였던 거다.

이제는 딱따구리 문구점도 네모난 게임기도 사라졌다. 대신에 인터넷에서 펭귄 브라더스 게임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추억에 젖어 플레이 해보니 오 라운드까지는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유튜브로는 손 까딱 안 하고 마지막 보스를 쓰러트리는 걸 볼 수 있다. 허무하게 모든 라운드를 깨도 폴리곤 덩어리들이 좀 나오는 것 외에 특별한 장면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때의 나를 이길 수 없다. 도둑질을 결심한 용기와 실행하는 대담함, 맹랑함과 기발함, 통 큰 마음까지. 그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도둑질이었다. 스물다섯 살은 여덟 살에게 혀를 내두르게 된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과거를 회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의 나도 썩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착실히 잘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어쩌면 나한테 돈을 받았던 오빠 중 한 명은 게임 스트리머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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