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두 번째로 가진 장래 희망은 대통령이다. 나라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던 여덟 살이었기 때문이다. 그 야심은 다음 해 출마한 반장 선거에서 득표수 1을 달성하고 끝났다. 그리고 십오 년 뒤, 나는 눈썹을 긁으면서 대통령이든 뭐든 아무 꿈이나 제발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다. 일 년 하고도 반 학기를 휴학했으니 결코 학교에서 적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올해 입학한 대학생은 나와 무려 다섯 학번 차이가 난다. 잔뜩 꾸민 채 마냥 들뜨고 해맑은 그들을 보고 있자면 배알이 조금 꼴린다. 나도 새내기 때엔 밑도 끝도 없이 의기양양했는데, 나를 보는 ‘화석’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운 좋게도 내게 대학 진학은 확실히 선택의 영역에 있었다. 대학 밖에서도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많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입학을 한 건 순전히 학구열 때문이다. 사회에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는데, 무엇이 왜 이상한지 공부해 비판의 언어를 만들어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철학자는 세상을 단지 해석할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산당선언>에서 읽은 문장을 내 공부의 표지로 삼고, 실천하는 학생이 되자 다짐했다(젠장. 이게 다 마르크스 때문이다). 매주 책과 논문을 읽고 글을 쓰고 연구를 하고 수업을 들었다.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부당해고 투쟁 현장에 나가서 청소 노동자 사이에서 구호를 외치고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외치며 도로에 누웠다. 풍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농악 경연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집회 행진에 연대공연도 나갔다. 친구들과 어려운 책을 읽으며 세미나를 하고, 몽골과 제주와 정동진과 통영을 여행했다. 거기에 알바와 인턴과 연애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충실히 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졸업을 석 달 앞둔 지금 나는 날마다 절망에 몸을 푹 담근다. 막연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와 버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공부를 이제 써먹어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꼭 이십오 년 간의 내 삶을 첫 직장을 통해 심사 받는 기분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먹은 밥값을 하고 있습니까? 쓰레기처럼 살지는 않았습니까? 당신이 추구하던 가치는 어떻게 남아있나요?
종종 구직 사이트를 들어가고 합격 자소서를 읽는다. 학점 관리와 대외 활동과 어학 자격증과 공모전 경력까지 다들 취업 준비를 어찌 그리 열심히 했는지. 취업 생각만 하면서 대학을 다닌 거니? 나만 해맑게 하고 싶은 일만 한 거냐고. 아직 그 누구도 뭐라 하기 않았지만 힐난 받는 기분이다. 오, 자꾸만 자격지심이 튀어나오려 한다.
가장 두려운 건 이력서 쓰기다. 내 인생을 기간과 소속이라는 항목에 한 문장으로 구겨 넣어야 한다니. 고작 몇 줄만으로 무수히 다채로운 내가 작은 대학을 특출나지 않게 다닌 변변찮은 사람이 된다. 시민단체가 아닌 직장에서 노동 운동 소모임과 실천 환경 학회 활동이 이력이 될 수 있을까? 무능력한데 심지어 사상까지 불순한 지원자가 되는 게 아닐까?
좋은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서 일하는 삶을 바란 적은 없다. 난 항상 행복이 제일 소중한 가치였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잘하고 싶었다. 제일 큰 문제는 아직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돈을 적게 벌고 사는 것보다 더 무섭다.
“어쩌면 우리가 대안학교 출신이라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에 집착하는 것 아닐까.” 친구의 말이 맞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하지만 재미없는 일에 하루에 최소 여덟 시간을 써야 한다니 그렇게 끔찍한 일이 어딨는가? 심지어 방학도 없이 말이다.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응하며 살고 있는 게 신기하다. 난 진짜 별나게 자랐구나.
이제는 대학에서 공부조차 제대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고 밝히기 쪽팔린다.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고작 몇 년 새 배운 것도 많이 까먹었다. 본인을 말하는 감자라고 지칭하는 대학 졸업생들이 조금 유난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차라리 아는 게 없던 일 학년 때는 용감하기라도 해서 번쩍 손 들어서 질문을 던지고 토론했는데 이제는 그마저 못하겠다. 피 같은 등록금과 시간을 투자해서 얻은 것이 겨우 무지의 지, 존나게 아는 게 없다는 깨달음이라니.
고백하자면 사실 난 게으른 게 좋다. 아주 마음껏 게으르고 싶다. 침대에 누워 게임하거나 책을 읽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하고 싶은 일 적당히 하면서 소박한 집에서 배 안 곯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싶다. 아침이 피곤하지 않을 만큼 잠을 자고 싶다. 주에 4일 출근해서 6시간씩 일하고 돌아오는 저녁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가끔은 모은 돈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제발 스스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좋겠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효능감을 느끼고 싶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길 요구하는 사회가 피로하다. 대외활동스펙쌓기인턴갓생사이드프로젝트루틴미라클모닝 등등등… 영영 끝나지 않는 자기계발에 속이 울렁인다. 이 사회에서는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죄인이다. 각자에게 할당된 1인분을 못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세금을 축내는 골칫덩이가 된다. 무려 진보 진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다들 행복하신가? 내가 바라는 평등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는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도통 그럴 틈바구니가 없다. 서로를 죽어라 미워하는 것 말고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에너지가 없는 거다. 고립∙은둔 청년이 54만 명이고 출생률 0.72명에 OECD 국가 중 자살률 부동의 1위이자 하루 평균 1.6명의 청년이 자살한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실 게으름은 무한 경쟁과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급진적인 행동이다. 열심히 일할 사람이 없고 마구 만들어지는 물건을 살 사람이 없는 것만큼 거대자본에게 끔찍한 일이 있을까.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저작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이미 충분한 생산력을 달성한 오늘날 ‘근로는 미덕’이라는 믿음은 무용하다고 주장한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엔 하루 4시간의 노동으로도 충분하며, 그렇게 된다면 모두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 볼 수 있다고.
앞서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내 몸이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사회과학의 이론을 열심히 공부했고 앞으로도 할 거니 그 배움을 이야기로 만들 차례다. 내가 구축한 세계에서 사람들이 위안과 용기를 얻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테다. 그 이야기가 언제 만들어질지는 모르지만 그 때를 위해 천천히 문장을 벼리고 있다. 또 나는 책 읽는 게 좋다. 누군가 스스로와 싸우며 다듬어낸 관점을 단지 읽기만으로 취할 수 있다니. 내가 백이십 살에 죽는다 해도 세상엔 내가 읽지 못한 책이 훨씬 많을 거다. 그 사실이 너무 슬프면서도 짜릿하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하면 독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어떤 세계관에 푹 빠지는데 그게 행복하다. 꽹과리를 개갱개갱 치거나 베이스를 두둥두둥치는 것도 심장을 뛰게 한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건 다섯 살 때부터 좋아했다. 투쟁 현장에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숨이 차도 산에 오르는 건 즐겁다. 우정을 쌓고 연애하는 일도 빠질 수 없다.
모두에게 취약한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수술 후 몇 주 동안 침대에 누워 통증을 껴안고 시간을 보냈었다. 단순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도 많은 근육이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 시간 동안 엄마가 날 돌봤지만, 앞으로는 엄마도 아플 때가 올 거고 내가 그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올 테다. 서로에게 충실한 돌봄을 제공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와 너를 취약하게 만드는 변수를 덜기 위해선 게으름이 필요하고 그래도 찾아오는 취약성엔 적극적으로 게으를 수 있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어렵거나 힘들 때 충분한 쉼을 갖는 게 게으름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게으름뱅이를 자처하겠다.
신영복 선생은 혁명은 변방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어쩌면 오늘날의 혁명은 침대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엔 더 많은 게으름이 필요하고, 나의 청춘을 게으르지 않고 보내기엔 아무래도 아깝다.
그러니 고백한다. 나에게도 야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롭게 게을러질 수 있는 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