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실을 만지는 여행

오월의 광주 여행기

by 때 입니다

오월의 늦은 봄날 나는 봄과 윤과 함께 광주로 떠났다. 우리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 사이로, 모두 졸업을 후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오월의 광주를 걷고 싶다는 마음에서 제안한 여행은 일상에 치이던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광주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아시아 문화의 전당이다. 커다란 부지에 댓 개는 넘는 전시관과 극장, 커다란 도서관이 모여 있는 곳이다. 양질의 전시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곳곳이 북적였고 계단식 정원에 사람들이 누워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었다.

<녹는 점>이라는 체험형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온도를, 나와 타인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담았다는 이 작품은 관객이 바 테이블에서 물을 마실 뿐이다. 그런데 그 물은 작가 아야 모모세의 실시간 체온과 같은 온도로 데워진다. 입과 혀를 지나 내 몸으로 그의 온도가 들어와 퍼졌다. 삼십육 도라는 그의 체온은 생각보다 더 따뜻했다. 단순한 체험이지만, 누군가의 온도와 같다는 그 물을 느끼는 과정이 생소하고 야릇했다.


광주에는 1980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축하, 5.18 민주화 운동, 제주공항 여객기 사고 희생자 추모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거리에 걸려있었다. 특히 광주의 가장 중심지라고 말할 수 있는,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 외벽에는 탄흔이 아로새겨있었다.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어느 오월 계엄군의 군용 헬기가 전일빌딩을 사격했다.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계엄군은 진실을 조작하려 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역사지만, 몇 마디의 증언과 딱딱한 사건 기록, 유족의 가족이 오열하는 사진만으로도 나는 금세 1980년의 광주로 이끌려갔다. 전일빌딩 전시관의 영상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로 끝났다. 모두가 기억해야만 하는 광주의 역사가 불과 몇 달 전 반복될 뻔했다는 점이, 우리를 다시 분노케 했다.


아쉽게도 전남도청은 공사 중이라 5.18 민주광장을 거닐었다. 연휴인 만큼 민주광장엔 사람이 많았다. 청년 밴드가 한창 노래를 부르고 청소년들이 민주의 종을 둘러싸서 담배를 태웠다.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다른 광경이었다.

수십 명은 될 듯한 소년이 각자의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의 생김새에 따라 무리 지어 있었다. 그리고는, 자전거의 앞바퀴를 바닥에 고정한 채 뒷바퀴를 공중에 들어 한 바퀴 빙 도는 행동을 반복했다. 희한한 풍경에 우리는 말을 잃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자전거 묘기는 광주 청소년들의 가장 첨단의 문화인 듯했다.

더 멋진 사실은, 그들의 자전거 묘기가 다음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계속된 것이다. 모두 비가 그치면 튀어 나가 다시 뱅글뱅글 돌 생각인 듯 자전거를 낀 소년 여럿이 민주의 종각 아래서 광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회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튿날 아침엔 무등산을 올랐다. 자연을 좋아하는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었다. 등나무의 연보랏빛 꽃잎, 참으로도 오랜만에 맡는 피톤치드의 향, 발에 닿는 울퉁불퉁한 돌의 형태, 드문드문 들리는 딱따구리 소리… 애초의 계획은 무등산 초반부의 당산나무까지 가볍게 나무 내음만 묻히고 돌아오는 거였지만, 오르다 보니 다들 기분이 좋아져 중머리재에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중머리재의 한편에는 등산객 무리가 컵라면과 새우튀김을 먹었다. 대범한 메뉴 선정에 침이 꼴딱 넘어갔다.

공교롭게도 무등산에 오른 날은 초파일이었다. 혹시나 절에서 절밥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산에서 내려왔다. 역시 증심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채식 비빔밥과 절편을 주었다. 맛있는 밥도 주고 휴일도 주는 부처님은 참으로 좋은 분이구나. 유물론자인 윤을 제외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절을 올렸다. 오래전 모 절에서 사 손목에 낀 팔찌가 자랑스러웠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무등산의 이름 뜻을 검색했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불교 용어 중 무등은 너무나 평등해서 평등이라는 개념조차 쓸모없게 하는 완전한 평등의 상태라고 한다. 대학에서 공부하며 꿈꿔온 사회라, 무등산이 더 좋아졌다.


적당한 책방에서 한강 작가의 신간 산문집을 구매해, 40년도 더 된 클래식 카페에서 생강차를 마시며 읽었다. 한강은 각각 광주 민주항쟁과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을 쓰는 동안, 몇 달 몇 년 동안 과거의 기록을 읽고 과거의 사람처럼 슬퍼하고 죽음을 연습해 왔다. 그에게 그 시간은 마치 이야기가 자신에게 들린 듯했다. 그런데 자기가 느껴온 감정을, 자신의 독자들도 느꼈다고 말해오는 데서 놀랐다고 한다. 어린 한강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라는 문장을 썼다. 그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그 마음을 제 표현에 빗대어 금실로 표현했다.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구십 년이 넘은 광주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전국 유일 단관극장답게 거대하고 좌석은 무려 삼 층까지 있었다. 오래된 자재의 습한 냄새가 났지만, 난생처음 이층 좌석에서 보는 스크린은 대단히 크고 음향도 풍부했다. 한편 극장 근처의 책방들도 작지만 각자의 방향성이랄까 개성을 잘 가지고 있었다. 여차하면 몇 시간이고 산책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광주엔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대하는 공간이 많은 탓이다.


우리의 마지막 점심은 예향식당의 백반 정식이었다. 절묘한 윤기와 찰기를 보이는 흰쌀밥과 이십여 가지의 반찬이 나오는 정식이 유일한 메뉴로, 모두가 말하는 것도 잊고 밥에 코를 박을 만큼 대단한 맛을 자랑했다.

물론 호남답게 광주의 밥은 어딜 가든 맛있다. 꼬막 비빔밥•마른 메밀•퓨전 한식•절밥•이자카야•빵•와플•칵테일까지 참 많이도 마시고 먹었다. 먹는 행위도 먹성도 좋은 봄과 윤은 무엇을 먹자하면 결코 사양하는 법이 없었고, 그들과 함께 가는 식당은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나도 입맛이 돌아 웬만해서는 배부른 채로 걸었다. 어딜 가든 잘 대접받은 기분이니 광주는 더 아름다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청년처럼 극도로 자본화된 서울의 삶에 염증을 느낀다. 그런 만큼 동네를 구경하다가도 봄은 아파트가 얼마일지 추측하고, 윤은 비건 불모지에 비건 식당을 여는 상상을 하고, 나는 건실한 청년을 만나 삶을 꾸려도 좋겠다 얘기하는 등(교정기 낀 미소가 귀여웠던 이자카야 점원 때문이 아니다) 자꾸만 광주에서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는데도 여행자 특유의 낭만화가 한창 진행됐다. 난 그런 우리의 마음이 역사와 삶에 대한 도시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강의 말처럼 우리의 마음은 금실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가 다른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에게 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매 순간 되살아날 수 있는 것 아닐까. 전남도청 앞의 소년들이 시체를 만지지 않고 담배를 태우고 자전거 묘기를 부릴 수 있는 오늘이라 좋았다. 전일빌딩 십 층 바닥의 탄흔 자국 옆엔 아이러니하게도 무지갯빛이 비쳐 들어왔었다. 그 장면이 오늘날의 광주를 닮아 보였다.

한편으론 금실을 따르는 게 여행의 본질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치 첫날의 전시에서 마신 삼십 육도의 적당히 따뜻한 물처럼, 여행지 사람들의 삶을 궁금해하고 섞여보면서 서로의 몸과 경계가 적극적으로 흐려지는 순간들. 오월의 광주는 그 금빛 실이 더욱더 선명하게 만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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