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 없이 슬픔 없이 내일 없이

가슴 해방, 레이빙, 찌찌파티 후기

by 때 입니다


토요일의 밤, 사람 없는 영등포의 공업단지에 여자들이 하나둘 모였다. 나를 포함한 이들의 행선지는 찌찌파티다. 이 파티는 여자 또는 퀴어만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하지만, 무엇보다 누구나 가슴을 해방할 수 있다.

천변에서 러닝을 하면 티셔츠 없이 뛰는 남자가 있다. 테크노 클럽에서 윗도리를 벗고 춤을 추는 남자가 있다. 바다 수영을 하면 남자애들만 상반신을 드러내고 논다. 모두에게 달려 있지만 한쪽 성만 드러낼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있다니, 이것 역시 세상을 가르는 수많은 불평등 중 하나다. 집 밖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일은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다, 오늘까지는. 찌찌파티는 어떤 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슴을 꽁꽁 싸매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슴을 해방하고 즐기는 레이브*다.


갤러리를 개조하여 만든 간이 파티장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첫 번째 디제이가 내는 소리만이 댄스 플로어를 채웠다. 적당히 박자에 몸을 맞춰갔다(금붕어를 수조에 풀 때 하는 물맞댐과 비슷한 작업인데, 딱 맞는 말이 있으면 좋겠다). 함께 간 '하'는 디제이 선곡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며 이리저리 붕 떠 있었다.

빈 댄스플로어는 금방 사람들로 채워졌고, 뻘쭘함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어느새 가슴을 드러내고 공간을 활보하는 사람도 보였다. 납작한 가슴, 커다란 가슴, 가터벨트를 찬 가슴, 그림을 그린 가슴, 타투가 있는 가슴, 늘어진 가슴, 트랜스젠더의 가슴, 수술 자국이 남은 가슴... 아주 많은 가슴이 있었다. 주변의 가슴에 자꾸 눈이 갔지만 금방 적응했다. 지금껏 가려온 타인의 몸을 본다는 사실에서 오는 기묘함과 태초의 그대로 돌아간 듯한 자연스러움이 공존했다. 그 공간은 이를테면 찜질방의 여탕과 같은 분위기였는데- 여탕만큼 연령대가 다양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젠더는 다양했다.

반면 내 상체는 실리콘 니플패치와 타이트한 실크 소재의 검정 나시와 짧은 반소매 셔츠를 걸친 채였다. 이렇게 하면 옷깃 때문에 젖꼭지가 도드라지지 않는데, 가슴이 자라고 십수 년 동안 체득한 기술이다. 해방감이 주는 열기에 당장 니플패치를 뗐다.


디제이가 바뀌자 좀 더 춤추고 싶은 기분이 났다. 디제이 앞에서 몸을 크게 흔드는 사람도 생겨났다. 나는 테크노 클럽에 갔을 때 봤던 현란한 몸짓을 재현하려 노력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들썩이며 점잖은 척하는 변태처럼 놀던 하도 점점 신나 보였다.

일렉트로닉댄스뮤직에 매료된 건 최근의 일이다. 반복되는 기계음, 킥 드럼, 스네어 소리, 커다란 스피커에서 울리는 파동, 아무도 어느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세상에 음악과 자기만 남았다는 듯 구는 사람들, 사람에 관심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디제이, 무한히 분출되고 산화하는 소리들(참고로 나는 음악적 소양이 없는 편이고, 이디엠의 장르 구분도 모른다). 홍대의 호객하는 클럽만 알던 나는 테크노와 하우스를 트는 클럽을 경험하고서야 춤을 위한 클럽이 뭔지 깨달았다.

음악은 잘 들리면서 디제이와 눈은 마주치지 않는 거리로, (줄의 개념이 흐릿하지만) 대략 앞에서 세 번째 줄에서 춤을 췄다. 앞 사람이 춤추면서 자꾸만 뒤로 왔기에 그와 부딪히지 않으면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했지만 자리를 비키고 싶진 않았다. 번쩍이는 원색의 조명으로 눈이 피로해 눈을 감고 춤췄다. 가끔 눈을 뜰 때마다 주변 풍경이 조금씩 바뀌었다.


댄스플로어 옆 방엔 간단한 칵테일이나 바나나 등 주전부리를 파는 간이 바와 바디페인팅 부스, 긴 소파나 의자 등이 있었다. 바디페인팅 부스엔 색색의 물감 파레트와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비즈가 있었다. 누군가의 가슴에 페인터가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몇몇 가슴을 드러낸 사람이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성스러우면서도 편안했고, 돌보는 장면 같았다. 긴 소파엔 지친 사람들이 드러누워 쉬었다. 언젠간 나도 저기서 쉬어야겠군. 하와 함께 가슴 모양 쿠키와 술을 들고 나섰다.

파티장 밖은 담배 피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음악 소리가 건물 밖까지 쿵쿵 울려댔다. 불을 붙이는 하를 두고 주변을 둘러봤다. 평화상사·태평상사·대성산업... 누구도 지나가지 않는 골목, 낡은 간판들 앞에서 화려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담배 피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은 가슴을 드러낸 채였다.


파티장 앞으로 '구'가 찾아왔다. 복무 중이며 잠시 휴가를 나온 그와 포옹했다. 함께 놀고 싶다는 그와 함께 파티장으로 들어갔지만 바로 후회했다. 이제 슬슬 가슴을 해방하고 싶은데 구 앞에선 별로 벗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와 구를 떠나 다른 편에서 춤췄다.

조명이 파티장 뒤편으로 집중됐다. 돼지의 탈을 쓰고 무당의 옷을 입은 사람이 파티장으로 들어왔다. 돼지의 눈에서 피가 쏟아졌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퍼포머는 한복을 한 겹씩 느리게 모두 벗었다. 그의 나체엔 가죽 하네스만이 남았는데, 아랫배쯤 믹서기가 달려 있었다. 뒤이어 그는 에로틱하게 풀과 토마토 등을 믹서기에 넣고 갈았다. 관객에게 그가 벗은 옷을 입으로 물게 하고, 간 주스를 묻히고, 키스를 나눴다. 환호성 사이에서 그는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의 뒤쪽에 있었기에 퍼포먼스를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웠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다시 춤이 시작됐다. 구가 그만 가고 싶다고 하여 기쁘게 배웅해 줬다.


거의 밀폐된 공간에서 춤을 추니 더웠다. 타인의 끈적한 몸과 자꾸 부딪혔고, 나한테도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로 가슴을 해방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내 가슴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주변엔 맨가슴을 드러낸 사람보다 드러내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 고민 끝에 마침내 가슴을 가리던 나시를 벗었다.

시원하다, 자유롭다, 겨드랑이와 가슴 아래로 에어컨의 찬 공기가 닿았다. 파티장의 어두운 조명은 가슴을 금세 익명으로 만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알몸으로 추는 춤. 한 손엔 페트병을 들고, 바지 주머니엔 벗어던진 나시를 끼워 넣었다.


디제이의 비트가 중층적으로 쌓였다. 커지고, 빨라지다가, 잠깐 드롭했다가, 완전히 터트렸다. 팔을 들기도, 엉덩이만 흔들기도, 몸을 완전히 늘어뜨리기도 했다. 가만 서서 발 박자만 맞추다가도 크게 뛰었다. 디제이가 터트릴 때마다 댄스플로어에서 뛰는 모두의 가슴이 위아래좌우로 흔들렸다. 흔들리는 가슴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가슴의 크기와 모양, 유륜의 크기와 색, 유두의 모양을 신경 쓰지 않았고 쓸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게 그저 음악에 맞춰 흔들리는 살덩이였다. 몸이 평가의 대상도 수치의 대상도 아닌, 그저 몸이 되는 순간이었다.

가슴뿐 아니라 골치 아픈 회사나, 미래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분노나 고통 따위도 사라져 트랜스 혹은 열반에 접어들었다. “비트에 박히는 기분”이라는 매켄지 워크의 말처럼, 모든 음과 박자가 박아왔다. ‘퀴어함’을 가진 사람만이 이해하는— 몸이 침범당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거나, 허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만이 견디는— 감각. 스피커 앞에서 모두가 혼자이자 함께였다.


여자에게 밤은 위험하다. 가슴을 드러내고 노는 건 불법이고, 클럽에서 건네받은 술을 마시면 기억을 잃고, 원치 않게 몸을 만져지고 강간당하고, 그저 길을 걷다가 맞거나 죽임당할 수도 있다. 그런 밤사이에도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려는 사람이 있었다. '안전한 레이브를 만드는 건 생존의 문제였다'는 주최진의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춤과 파티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가슴을 해방하고 뛰고 땀을 흘리면서 모두가 적극적으로 살아있었다.

동시에 공간엔 서글픔이 서려 있었다. 레이브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일시적이었기 때문이다. 새벽이면 파티가 끝나고 모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제는 가슴을 드러내고 놀 수도 없으며, 본인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새벽 세 시가 넘은 파티장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레이브는 상황이다’**. 나는 이 상황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까 마신 베일리스 샷 때문에, 평소 잠드는 시간을 훌쩍 넘겼기에, 점점 졸리고 침대가 그리웠다. 앰프에서 마이크 하울링 소리만 들리던 드랙 퍼포먼스까지 보고 나니 완전히 지쳐버렸다.

나는 다시 옷을 입었다. 나시를, 셔츠를, 마지막으로 티셔츠를 입었다. 댄스플로어보다 커지던 가슴이 도로 가려졌다. 하와 헤어지고 영등포를 가로질러 심야 버스가 오는 정류장까지 걸었다. 허벅지와 팔, 그리고 가슴에 초가을 새벽의 찬 바람이 닿았다.


*레이브는 천구백팔십년대에 등장한 문화로, 주로 클럽이나 창고, 공장 등에서 비밀리에 열리던 일렉트로닉 뮤직 댄스 파티다. 광란의 파티를 의미하기도 한다.

**『레이빙』, 매켄지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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