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4~5개월 만에 한 번씩 비행을 하며 2년의 시간을 보내니 5년 차 승무원이지만 업무적인 스킬이 온전히 쌓일 틈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눈앞에 있는 업무에 급급했던 내가 요즘은 한 발자국 뒤에서 큰 시야를 가지고 업무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장거리 비행을 갈 때면 손님의 콜에 응대를 하며 짬짬이 다음 업무를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막내 듀티가 주어지면 주로 아일에 스탠바이를 하며 손님들이 필요한 건 없는지 상황을 살피고 응대를 하곤 한다. 화장실 청소까지 끝내고 그렇게 별 일 없이 Jump-sit에 앉아있을 때면 나는 그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물론 바쁘게 돌아가는 비행 속 잠시 쉬는 시간이 될 수 있지만 조용한 비행에서 3시간에서 4시간 반정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있을 때면 시간이 마치 증발해 버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인턴 때도 나는 이런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져 비행을 가기 전 항상 주제를 가지고 비행기에 오르곤 했다. 예를 들어 그날의 키워드가 '꿈'이라고 하면, 나의 꿈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꿈을 왜 꾸게 되었는지, 내가 요새 관심 있는 꿈은 무엇인지 등등 그냥 멍하니있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그 시간을 즐겼다. 그래서 비행을 가기 전 친구들에게 키워드 하나씩만 던져달라고 요청할 때도 많았다. 업무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요즘 나의 관심사는 비행을 하면서 얻는 많은 장점들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였다.
그러던 와중 우연찮게 한 사무장님의 인스타그램을 알게 되었고 피드를 보다가 매우 깜짝 놀랐다. 본인의 색깔을 담아 사진을 찍으시곤 본인의 생각까지 아주 맛깔나게 적으시는 것이었다. 내가 놀라게 된첫 번째 이유는 평소 내가 원하던 방향성과 비슷했고 두 번째는 나와 같이 비행을 즐기는 분이신 것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비행을 하다 기회가 될 때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승무원분들에게 여쭤보곤 했는데비행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20년 이상되신 고사번 사무장님들을 제외하곤 아쉽게도 이 일을 즐기는 비슷한 또래의 승무원분을의 이야기를들어볼기회가없었다. 그래서인지 <내일은 샌프란시스코 비행을 갑니다>라는 여행에세이까지 쓰신 사무장님이 어떤 분이실지 매우 궁금했고 언젠가 비행에서 마주칠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맞팔을 해주셨고 몇 달 뒤 곧 기회가 되어 식사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약속 당일 정말 감사하게도 책과 달력을 선물해 주셨는데 책의 앞장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나는 놀란 표정으로 사무장님께 말씀드렸다.
"사무장님, 저 내일 정말 샌프란시스코 비행 갑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받은 다음 날 나는 샌프란 비행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욱이 이 책이 나를 위한 책 같이 느껴졌고 사무장님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며 함께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식사를 하며 이 책을 쓰게 되신 계기, 사진에 대한 관심, 앞으로 에 대한 계획 등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시작했고 사무장이자 작가님께선나의 질문 하나하나 진중하게 대답해 주시며 많은 영감을 나눠주셨다. 그리고 서로의 공통 관심사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연'이라는 에피소드를 서로 주고받으며 세상 모든 것이 인연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약 6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 다음 날 있을 샌프란시스코 비행 준비를 하는데 의미가 담긴 비행이라 생각이 돼서 그런지 더욱 비행이 설레어졌다. 어서 이 책을 데리고 사무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명소에서 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