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이 불편하다는 당신에게,
유난히 긴 장마, 멍멍이 열 마리가 온 몸을 혓바닥으로 핥아대는 듯한 습도에 생리가 시작되었다. 연구실 서랍 속에 생리대는 한 개 뿐, 보건실에 가면 급한대로 한두개 더 받을 수 있겠지만 어차피 야감(야자감독)까지 하려면 수업 없는 시간에 나갔다 오는게 나을 듯 싶어 외출을 올린다.
복무상신: 연가>외출, (30분)
장소: 학교인근 편의점
사유: 개인사
결재 올리고 수업을 다녀왔더니 메세지가 와 있었다.
“선생님, 사유 좀 구체적으로 써 주세요. 개인사는 너무 두루뭉술해요.”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다시 올릴게요.”
복무상신: 연가>외출, (30분)
장소: 학교인근 편의점
사유: 생리대 구입
“아 선생님, 그렇다고 이렇게 쓰시면...”
“구체적으로 쓴 건데요?”
생리대가 필요해서 생리대 사러 간다고 썼는데 생리대 사러 가는 걸 왜 생리대 사러 간다고 쓰냐하면 나는 그저 생리대가 필요하니까 생리대가 필요하다고 쓰는 건데 생리대를 생리대라 쓰지 그럼 생리대를 생리대라고 못쓰면 뭐라고 써야 하나요.
얼마전 화이트 생리대 광고가 빨간 피를 빨간색으로 표현하여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생리를 생리라 하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길고 당연했으면 피가 빨간색인게 이슈가 되었을까 싶다. 그동안 대다수의 남성들은 생리대에 뿌려진 파랗고 맑은 액체가 순식간에 뽀송해지는 장면에서 생리의 이미지를 배워왔다는 건가. 여성이 무슨 파란피의 살아있는 화석 투구게도 아니고.
가끔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생리가 여성이 아닌 남성들의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웃통 벗은 근육질 남성이 판치는 면도기 광고처럼, 생리는 한달에 한 번 남성성이 폭발하는 날로 묘사되지 않았을까? 남자라면 당당하게 화이트!! 포장도 분명히 엄청 눈에 띄고 노골적이었을 거야. 붉은 피는 에너지의 상징으로 포장되었을 지도 모르지. 아니 최소한, 생리대 사러 온 남성에게 검정 비닐봉지를 조용히 껴 주는 점주는 없으리라.
편의점에서 차까지 몇 발짝 굳이 봉지에 담지 않아도 괜찮다며, 생리대를 손에 들고 나가는 나를 불러세워 배려처럼 쥐어주는 검정 비닐 봉지에, 생각이 많아진다. 이건, 맨손에 보이게 들고 가면 안 되는 물건인가요??
생리대 사러 간단 말에 흠칫, 놀라는 학교에서 무슨 양성평등을 교육한단 말인가. 빨간 피가 빨간 색으로 나왔다고 이슈가 되는 세상에서 무슨 평등을 외친단 말인가. 그렇다고 내가 뭐 엄청난 개혁을 하자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나는 생리대를 사러간다고 말한 것 뿐인데.
생리를 생리라고 말하는 게 불편하다면 그냥 당신이 좀 불편하시던가, 익숙해지면 좋겠다. 가뜩이나 쥐어짜면 국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덥고 습한 여름에 대환장생리파티중인 여성들이 생리를 생리라고 말도 못하도록 하는게 단지 당신의 불편함 때문이라면,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아니 난 그냥, 생리대가 필요해서 생리대 사러 나가는 것 뿐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