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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공 Jul 20. 2020

받아쓰기 20점 받던 날

교사와 엄마 사이 어딘가에서.

- 오늘은 어땠어?

저녁 식탁에서 던진 일상의 질문에 갑자기 목소리가 잠기는 둘째.
- 오늘은 슬픈 일이 있었어. 받아쓰기를 20점 맞아버렸어.
이미 눈이 벌게져서 금방이라도 툭 터질 거 같은 표정을 보며 살짝 당황했지만 애써 꾹 눌러 담고 말했다.
- 어려웠어?
- 아니 선생님이 너무 빨리 불러서 다 못 썼어.
- ... 괜찮아! 다음엔 좀 더 빨리 쓰는 연습도 해 보자. 더 연습하면 돼.
아이고 받아쓰기가 뭐라고,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그래도 한동안 잘하더니 등교 수업이 오랜만이라 긴장했나, 얜 어떻게 받아쓰기도 이렇게 힘드냐 20점이라니.. 등등의 생각은 다 속으로만 했다. 난 둘째 엄마니까.
괜찮단 엄마 말에 살짝 마음이 녹은 녀석이 한 마디 덧붙인다.
- 엄마 근데 왜 20점인지 모르겠어. 20점은 두 개만 맞은 거잖아.
 
저녁상을 치우고 학습꾸러미를 챙기다가 받아쓰기 노트를 꺼내본다.


- 재인아, 너 받아쓰기 20점 아니고 70점인데?
- 어? 선생님이 20점이라고 썼는데.. (20점이란 말을 꺼내며 다시 울먹울먹..)
- 아니야 봐봐, 이거 7이라고 써 있는 거잖아. 밑에 줄때문에 2라고 생각했나보다. 70점이야. 실수를 하긴 했지만 20점까지는 아니었어.
- 응 나도 왜 20점인지 몰라서 이상했어.
- 그럼 선생님께 여쭤보지 그랬어.
- 아니.. 선생님이 안 불렀어.
 
아이고... 받아쓰기 노트를 받아드는 순간 20점이란 숫자에 마음이 쿵 했는데 선생님께 왜냐고 묻지는 못하고 집에 오는 내내 슬펐다는 이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왜 안 여쭤봤냐는 말에, 선생님이 안 불러서 못 갔다니. 궁금한 니가 가야지. 그래도 다음엔 궁금할 땐 한번 용기 내서 여쭤봐. 어려우면 집에 와서 엄마한테 얘기해도 괜찮지만 집에 올 때까지 속상하잖아.



필요한 말은 정확하게 하고 사는 나는, 나와 꼭 닮은 첫째를 키우다가 이런 둘째를 마주하며 몹시 당황한다. 자존감이 낮은 건 결코 아닌데 왜 표현을 못 할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선생님이 안 불렀어. 하는 둘째의 표정에서 익숙한 교실의 장면이 떠올랐다.


지필고사 서술형 답안을 채점하고 나면 꼭 본인확인 작업을 거치는데, 정해진 채점기준안을 제시해도 꼭 0.1점이라도 더 받아보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매번 점수를 보고 고개만 푹 숙인 채 돌아서는 아이들이 있다. 초검 재검은 기본, 몇 번이나 다시 확인을 해가며 채점을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오류의 가능성이 0은 아닌 법, 이런 경우 마지막까지 남은 오류의 가능성을 붙잡아야 하는 건 결국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우긴다고 채점 기준이 달라지거나 안 줄 점수를 더 주는 일은 절대 없지만, 최소한의 가능성은 확인해야 하지 않나.


고백하자면, 초검 재검 후 아이들 확인까지 끝낸 최종 답안지에 확인 도장을 찍다가 오류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보고 또 보고 또 보는데도, 두 명 이상의 교사가 교차점검을 하는데도 그렇다. 그럴 때 아이를 불러 채점에 실수가 있었다고 말해주면 돌아오는 답은 ‘감사합니다.’뿐이다. 아니 근데 왜 확인하러 안 왔어? ‘그냥 제가 잘못 쓴 줄 알았어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대체 얘넨 왜 이러는 거야?



세상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려고 신께서 내려보내는 게 자식이라고 했다. 나에게 둘째는, 사람들 성격이 다 너 같지 않다는 걸 알려주려고 내려보내신 선물인가 보다. 부르지 않아 날 못 찾아온 녀석은 없는지,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꺼내지 못해 꾸욱 눌러 담은 녀석은 없는지, 내 앞에서 고개 푹 숙이고 말없이 돌아서는 아이가, 실은 속으로 마음이 쿵 한 건 아닌지, 좀 더 살펴보며 살라고. 한 번 더 챙겨보고 돌아보라고.


눈가가 벌게져서 나를 바라보는 둘째 얼굴에서, 그동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몇몇 아이들이 스쳤다.

얘들아. 미안하다.
 
그나저나, 진짜 얜 누굴 닮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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