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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Feb 13. 2023

오해

4학년 때로 기억한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한 녀석 집에 놀러 갔다. 친구집은 학교에서 가까웠다. 친구 엄마는 학교 근처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친구가 열쇠를 잃어버렸던가 집에다 두고 왔던가.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됐다. 상황에 맞게 다른 곳에서 놀 궁리를 하면 좋았을 걸. 그때 우리는 친구집에서 뭔가를 하기로 약속했던 것 같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쥐어짰다. 헌데 별 수 있으랴. 요즘처럼 도어락도 아니었고, 반드시 열쇠만이 답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클립인가 실핀인가를 일자로 펴서 열쇠 구멍에 넣고 요리조리 맞춰 보는 거였다. 집에서 본 영화 '터미네티미터 2'에서 나온 장면이었다. 당연히 될 리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어쨌더라. 그건 기억이 안 난다. 근데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다음 날, 그 친구가 내게 와서 말했다.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나는 억울했던 것 같다. 내가 뭘 훔치려고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 친구 엄마의 기억 속 나는 도둑 내지는 비행청소년쯤이었을 거다. 얼마나 오랜 세월 그리 기억되었을진 모르겠지만. 내게 그 일은 오해에 대해 처음으로 오래도록 생각했던 사건이었다. 억울했지만, 친구 엄마의 반응에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의외로 수긍을 잘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해를 살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단 교훈을 크게 얻었었다. 


사실, 이 나이 먹고도 오해는 억울하다. 그런데 내 행동이 남한테 어떻게 비칠지 일일이 신경 쓰고 사는 건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오해를 받더라도 그 사람이 내게 중요치 않은 사람이면 그냥 넘기는 경우도 생겼다. 쿨내 나는 인생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매번 그렇게 넘기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때만큼은 내가 아니면 된 거지 뭐 그런 마음이 든다. 억울한 건 여전히 별로지만, 기빨리고 피곤한 게 더 별로인 그런 사람이 된 거다. 다행히 도둑은 아니요, 도둑 심보를 싫어하는 지극히 상식적은 어른으로 컸음이다. 





사진: UnsplashEveryday ba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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