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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Jun 04. 2021

'싱어게인'으로'싱투게더'

JTBC의 <싱어게인>을 즐겨봤다. 전편을 본 건 아니지만 음원을 날마다 듣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참가자들의 노래가 정말 좋다. 원곡과는 다른 색깔이 매력인 곡도 있고, 원곡보다 더 좋다고 느껴지는 곡도 있다. 게다가 가사가 자극적이지 않아서 아이들과 함께 듣기 편하다.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싱어게인 음원을 틀면, 동심이들의 떼창이 자동으로 시작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밥 먹다가, 차 안에서, 심지어 길 가다가도. 특히 길 가다가 손에 든 뭐라도 마이크인 양 입에 갖다 대고, 감정을 표정에 실어가며 열창하는 동심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저 바다에 누워~', '못다 핀 꽃 한 송이 퓌우뤼롸~', '치리치리뱅뱅~' 등 동심이들의 애창곡은 장르 불문 여러 가지다. 


큰 동심이는 되고 싶은 게 많은 나이. 그간의 장래 희망이 모두 초기화되었다. 그리고 가수가 꿈이 되었다. 싱어게인의 영향이다. 홍일 씨, 소정 씨, 승윤 씨, 무진 씨, 요아리 씨, 하진 씨 등등 가수들의 이름도 제법 많이 익혔다. 가사를 찬찬히 보고 싶은 노래가 생기면 내게 출력을 요청한다. 직장 관둔 지가 10여 년인데 워드를 이렇게도 써먹는구나 생각하며 출력한 게 하나씩 모여, 어느새 아이의 가사 모음집이 꽤 두툼해졌다. 게임, 유튜브, TV 등  종류를 막론하고 미디어 시청 시간에 제한을 두는 편인데, 요즘은 그 금쪽같은 미디어 시청 시간에 다 같이 싱어게인을 보기도 한다.   


큰 동심이는 싱어게인을 얼마자 자주 생각하는지 싱어게인에 관한 대화를 우리는 자주 나눈다. 거의 날마다. 몇 장면만 소개해본다. 


<기상하자마자 아침밥상에 앉은 큰 동심이가 한숨을 쉰다. 짐짓 심각한 표정>

나: 무슨 일 있어?

큰: 간밤에 꿈에서...내가 싱어게인에 나왔는데... 인기가 너어어어무 많았어. 많아도 너어어어어어무 많았어. 요아리 씨 번호를 내가 달았어. 요아리 씨랑 붙었는데 우리 둘 다 올어게인을 받았어. 블라블라...


<10호 참가자 노래를 듣고 큰 동심이가 말했다>

큰: 엄마, 10호 아저씨 목소리가 굉장히 울퉁불퉁해. 


특유의 음색이 아이에게도 인상 깊었던지 이후 가수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목소리가 울퉁불퉁한 아저씨'라고 칭한다.


<그 밖에 한 번씩>

큰: 엄마, 소정 씨가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

큰: 엄마, 정홍일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지? 

큰: (길 가다 스친 어떤 이를 보고) 엄마, 방금 저 사람 승윤 씨 같았어.

큰: 엄마, 무진 씨 머리가 엄마보다 길어? 

큰: 엄마, '미아' 부른 아저씨는 목소리가 참 고운 것 같아. 

큰: 엄마, '러브홀릭' 그 2호가 '유미'씨한테 왜 '네가 더 무섭다'라고 했어? 그게 무슨 뜻이야? 

큰: 엄마, 요아리 씨는 슬픈 노래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큰: 엄마, 홍일 아저씨는 저렇게 샤우팅을 하는데 왜 목이 안 쉬어? 

큰: 엄마, 소정 씨가 ('비상'을 부르면서) 왜 저렇게 슬퍼? 

등등. 기억나는 일부만 옮겨보았다. 


몇 년 전 종영한 <나는 가수다>를 기억한다. 지금보다 오디션이 훨씬 참신하게 느껴지던 때다. 게다가 현직 프로 가수들의 경연이라니 화제가 될 만했고, 그 방송을 즐겨 봤었다. 특히, 알고 있는 가수도, 흥얼거리는 노래도 전혀 다른 부모님과 같은 방송을 보고 같은 가수, 같은 노래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어 뜻깊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역할을 지금 우리 집에서는 <싱어게인>이 하고 있다. 세대를 초월해서 같은 노래를 부르고, 그와 관련한 대화를 이리도 꾸준히 나눈다. 아이 몰래 예매해 둔 <싱어게인 top10 콘서트>가 코시국으로 인해 자꾸 미뤄지고 있지만, 언젠가 동심이 손 잡고 공연장에 가면 큰 동심이는 성공한 덕후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10대를 목전에 둔 큰 동심이는 이렇게 <싱어게인>을 통해 대중문화 속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 길에 동행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Photo by Edward Cisnero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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