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고부터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 다르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과들로 가득 찬 하루하루는 뭐랄까 정신없으면서도 시간이 흐른단 체감 자체를 하지 못하는 단위라면, 1년은 정말 빠르다. ‘그래. 이만큼 애들 키운 게 어디야. 참 많이 컸네’라며 잠시 생각에 잠기고 나면, 어느새 큰 아이는 정글에 입문한 초딩이고, 어느새 작은 아이는 3등신에서 벗어난 유딩이다.
되짚어볼 때마다 ‘왜 그 시절을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내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는 육아 선배의 전철을 나도 그대로 답습하면서. 평화로운 창 밖을 내다보며 ‘일각이 여삼추 같다’ 던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이제야 나도 체감하면서.
내 인생에서 부모로 산 기간은 고작 4분의 1. 그런데 4분의 1 분량의 삶이 나머지 4분의 3을 압도하는 느낌이다. 육아를 하며 마주한 세상살이는 그 전과는 결도, 폭도, 강도도 달랐다. 내 삶에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으로 육아를 받아들이며 그렇게 나는 살고 있다. 죽을 때까지, 아마 죽어서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내 나이가 어느새 불혹이라니. 장꾸력 만렙이던 내 오라버니도 어느새 마흔 중반이요, 모이기만 하면 깔깔거리느라 즐거웠던 사촌동생들도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다. 마흔 평생 해 본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이 단언컨대 내게는 부모 노릇이다. 때로는 너무 소중하고도 귀하고, 때로는 버거우며 무겁다.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대단히 현실적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 고충을 알고 시작했던 모르고 시작했던 오늘도 열심히 사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이 안쓰럽고 존경스럽다.
큰 동심이가 얼마 전에 물었다. "엄마, 일곱 살엔 여덟 살이 되고 싶고, 여덟 살엔 아홉 살이 되고 싶잖아? 그럼 엄마도 빨리 쉰 살이 되고 싶어?" 나는 0.1초 만에 답했다. "아니, 나는 아홉 살이 되고 싶어!". 아홉 살은 큰 동심이 나이다. 아이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너도 내 나이 되면 알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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