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 시각 정문 앞이 아이 데리러 온 학부모들로 몹시 북적이던 학기 초의 어느 날이었다. 비가 와서 제각각 우산까지 들고 섰으니 아이들 시점에선 앞줄 말곤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을 거다. 유난히 앳된 목소리의 어떤 남자아이가 목놓아 외치기 시작했다. "김 OO 할머니~ 어디 있어요? 김 OO 할머니~!"
또 어떤 날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한 아이가 교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곧장 내게로 오며 엉엉 울었다. "엄마가 안 왔어요~ 흐어엉~." "엄마가 오기로 약속하셨니? 그럼 조금만 기다려보자. 엄마 전화번호 알아? 아줌마가 전화 걸어줄까?"하고 달래고 있으니, 마침 아이 엄마가 헐레벌떡 온다. 아이는 엄마에게 달려가 고개를 파묻으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두 아이 모두 1학년인 듯싶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속 아이는 자기 목에 스마트폰을 걸고 있으면서도 울기부터 한 걸 보면 아직 전화기 사용도 서툰 상태였다. 어른한테야 별 것 아닌 일들이 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1학년한텐 얼마나 무섭고 다급한 순간이었을까.
'상어잡이'. 나는 지금도 이게 어떻게 하는 놀이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 놀이를 한다고 놀이터에서 약속 없이 마주친 세 명의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지척에서 어떤 형아가 조용히 아이들의 동선을 따라 같이 이동하고 있었다. 조용히 안테나를 세운 듯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 같으면 그때 그때 도와주면서. 마침내 '상어잡이'가 시작되자, 형아가 말했다. "야, 상어잡이 나도 같이 하자." 몰랐던 사이면 어떤가. 나이가 다르면 또 어떤가. 아이들은 한데 어우러져 신나게 놀고 헤어졌다.
어느덧 한 학기가 끝나 간다. 앞서 언급한 두 아이 모두 지금은 하굣길 돌발 상황에 대처할만한 내공이 쌓였을 거다. 동생들에게 같이 놀자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즐거이 어울릴 줄 아는 그 형아는 그런 용기로 또 다른 순간을 추억으로 만들 거다.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같이 뭔가를 하고 싶을 때도 있고, 혼자서 해결 못 할 위험을 감지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용기를 잘 냈었던가. 혹시나 거절당하거나 무안해질까 봐, 심지어 아무도 뭐라지 않았는데 혼자 자존심 상해하며 끝내 도움의 목소리를 삼키진 않았던가. 그렇게 일을 더 어렵게 만들어놓고도 창피는 면했다고 합리화하진 않았던가. 이따금 아이들을 보며 어른인 나의 삶을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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