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풍경

by 쑥쑤루쑥

요즘 작은 동심이와 놀이터에 자주 나간다. 코시국엔 놀이터를 거의 끊다시피 해서 몇 년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인싸인 작은 동심이는 무리가 딱히 없다. 유치원 같은 반 친구들은 물론이요, 유치원 언니 오빠들과, 어떤 자매 또는 남매와, 심지어 그날 처음 본 초딩 언니들과도 일행인 양 잘 녹아든다.


그중 같은 동에 사는 어떤 자매와는 놀이터에서 자주 조우하는데, 언니가 작은 동심이를 그렇게 챙긴다. 자기 동생은 제쳐두고. 작은 동심이에게 허리손이나 어깨손을 해가며 한 쌍의 잠자리처럼 놀고 있는 걸 보노라면, 언니의 안중에 없어도 필사적으로 언니를 따라다니는 그 집 동생이 눈에 들어온다. 꼬마가 안쓰러워진 나는 의식적으로 꼬마를 챙기게 된다. 어쩜. 자기 동생은 나 몰라라 하고 남의 동생 예뻐하는 건 맏이들의 본능인가. 우리 집 어떤 맏이 생각에 헛웃음이 난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선 눈물바람이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 품에서 운다. 친구가 자기랑 같이 안 논다고 말한 게 서러운 모양이다. 가만 보니, 두 아이가 다시 가까워질라치면, 친구가 좀 전에 울던 그 아이에게 저리 가라고, 너랑 놀기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고함이 커지다 결국 두 아이 모두 울고 만다. 얼마나 놀기 싫으면 울기까지 하고, 얼마나 같이 놀고 싶으면 매번 울면서도 또 다가간단 말인가. 밀어내는 아이의 보호자는 민망하고, 밀리는 아이의 보호자는 야속한 눈치다.


또 한 켠에서는 나이 지긋한 아빠가 대여섯 살 딸아이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한 채, 젤리로 놀이터 투어의 종영을 유도하는 한편, 나 홀로 놀이에 나온 어떤 아이는 누구와 같이 놀까 살피느라 바쁘다.


참으로 다양한 저마다의 감정이 솟구치고 뒤섞이는 곳. 심지어 그 모든 게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곳. 놀이터에서. 오랜만에 활기를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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