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을 주는 사이

by 쑥쑤루쑥

몇 주 전 친구 G가 말했다. 내가 만날 때마다 자극을 준다고. 내가 자기에게 자극을 주는 게 몇 년을 한결같다고. 그리고 며칠 전 또 다른 친구 Y가 말했다. 내가 항상 좋은 자극을 준다고. 이쯤 되니 내가 뭘 어쨌길래 친구들한테 그런 얘기를 듣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것도 가진 것도 이룬 것도 나보다 많은 친구들에게서. 일단, 자극을 준단 친구들의 말을 나는 내 멋대로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제로 좋은 의도로 한 말이었고, 친구들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내 책상 앞에 네 줄의 문구를 써붙여뒀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기록은 자산이 된다', '씨앗을 심는 삶', '나는 자란다'. 매일 밤 다음 날 일과를 정리하다가도, 가계부를 쓰다가도, 글을 끄적이다가도, 빨래를 널러 오가는 길에도 수시로 눈에 담는다. 마음이 힘든 구간을 지날 때의 날 위해 써붙여뒀다. 삶이 고될 때나 열매가 고파 주저 않고 싶을 때. 내 마음이 한 층 정도는 덜 내려가게 도와주길 바라며. 어둠의 시간을 위한 말은 그럭저럭 살아지는 날에도 나만의 등대가 된 것 같다. 아직 성과랄 건 없지만, 여러 가지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식구들 챙기고 소일하는 사이사이의 쪼개진 시간들을 부지런히 활용한다. 마치, 여러 조각의 천을 이어 붙인 퀼트처럼. 여전히 시작 또는 과정뿐이지만 나름대로 분투하는 내 모습이 좋아 보였 나보다.


나 또한 친구들로부터 자극을 받는다. 친구 H에게는 출중한 재테크 실력과 절약 정신을, 친구 R에게서는 무던한 마음가짐을, 친구 A에게서는 완벽주의를 떨쳐냄으로써 극에 달한 심신의 스트레스를 넘어서는 고귀한 삶의 태도를, 친구 G에게서는 안정적인 삶과 아이들을 대하는 살가운 태도를, 친구 Y에게서는 겸손함과 차분함을.


자극을 주고받는 건 어떤 사이일까. '너는 그러냐 나는 이래'에 머물지 않고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 그러려면 견주어 보는 건 어쩔 수 없을 터. 사실은 나는 친구들이 부럽다. 꽤 자주. 나는 친구들이 부러운데 친구들은 내게서 자극을 받는다니. 그럼 도대체 자극은 뭘까. 일단, 좋아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거나 따라 했을 때 내게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해볼 만해야 한다. 제 아무리 좋은 것도 내게 너무 비현실적이라면 부러움 또는 열등감이 되어 정신적으로 날 좀먹을 것이므로. 그리하여, 내게 자극이란 '해볼 만한 채찍질' 정도로 정의해 본다. 그리고, 이따금씩 내 발목을 잡는 부러움과 열등감을 '자극'으로 중화시키는 연습을 해봐야겠노라 다짐한다.



사진: UnsplashKrzysztof Niewol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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