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충분한 하루.

by 쑥쑤루쑥

언제부터인가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에 '네 그냥 지내죠'라고 답하는 게 일상이 됐다. 매번 진심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안 친한 사이에는 '그래서 어쩌라고'와 같은 눈빛을 되받을 수 있을 멘트이기에, 기꺼이 가까운 사람에게만 내보인 속내였다. 사십 줄을 넘기고도 잘 지내냐는 말을 들으면, 내가 잘 지내는 건지 몇 초간 생각하고 답하곤 했다. 그러고도 내뱉는 답은 늘 거기서 거기였지만.


'그냥'이란 말은 뭔가가 부족한 뉘앙스를 풍긴다. 성의가 없다거나, 정성이 없다거나, 고민이 없다거나, 가볍다는 느낌. 우리의 기준은 늘 '아우 그럼요. 잘 지내죠!'와 같이 아주 명쾌한 긍정의 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묵은똥 밀어내고 한껏 개운해진 듯한 몸놀림으로, 내 몸 어딘가에 무지갯빛 샤랄라 반투명 날개가 달린 듯한 말투로, 그렇게 흔쾌히 행복해하는 날이 어디 흔하단 말인가. 내 경험치로는 '오늘 하루 정말 좋았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은 손에 꼽았다. 웃음보다는 고민이, 개운함보다는 피로가, 행복보다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 한쪽이 밥이라면 나머지 한쪽은 김가루 같달까. 아무래도 김가루 쪽이 적고, 짧았다. 압도적으로. 해가 갈수록 점점 더 그랬다.


오늘 하루를 되짚어본다. 두통과 요통이 도드라진 하루였다. 큰 동심이는 위염에 걸려서 먹는 게 시원찮으면서도 자꾸 토를 했다. 작은 동심이는 내가 일하느라 유치원 문 닫기 직전까지 돌봄반에 있던 날이라 나와 못 논 것을 많이 아쉬워했다. 남편은 회식이다. 삼춘기 큰 동심이와 오늘도 신경전이 있었다. 몹시 피곤한 마의 수요일이었지만 걷기 운동을 하며 뒤늦게나마 무거운 몸을 깨웠고, 아픈 아이 상태를 살피며 적절히 도와주었다. 작은 동심이와도 짧은 시간이지만 성심성의껏 시간을 보냈다. 신경전 후에는 큰 동심이와 대화로 풀고 화해도 했다. 남편은 모두가 잠들 무렵에 들어올 것이다. 사소한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넘어가졌다. 이만하면 충분한 하루였다. '너무 행복해!'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이냥저냥', '이 정도면 됐지'.


'그냥'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차선은 된다. 그거면 된다. 충분히 괜찮다. 오늘 같은 날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가 될 수 있는 '그냥'의 미학. 나는 '그냥'을 점점 좋아하고 있다.



사진: UnsplashAlex Ngh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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