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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숙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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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Jan 02. 2024

친구야, 대딩?

쑤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웬만한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더 큰 J는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인 캠퍼스 곳곳에서 나를 잘도 발견했다. 우리는 늘 반갑게 마주했다.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데면데면했던 우리. 사실은, 대학만 같은 게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마저 같았던 사이다. 다만, 중학교 땐 한 번도 교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땐 문이과로 나뉘어 여전히 접점은 없었지만, 익숙한 얼굴로, 친구의 친구로 오다가다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나눴다. 대학 입학 후엔 어쩜, 하숙집마저. 나는 정문, 그녀는 후문 근처였으니 여전히 가깝고도 먼 사이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동문회를 계기로 조금씩 가까워졌다. 나중엔 대학에서 같은 걸 복수 전공하면서, (같은 곳에 적을 둔 지) 10여 년 만에 수업도 같이 들었다. 그리고 또 나중엔, 배낭여행을 같이 다녀오기까지 했다. 45일여간의 여행을 마치고도 이 친구랑은 다시 여행 가도 좋겠단 생각이 들 만큼 좋았다. 화법도 성격도 달랐지만 알고 보니 우리는 제법 잘 통했다. 가끔씩은 번개를 했다. 보드람 치킨에서. 학교 앞 식당에서. 서로의 연애사며 진로에 대한 고민도 기탄없이 나누며.


언젠가 그녀가 내 하숙집 근처로 이사 왔다. 저녁 무렵 오가다 보면 J가 하숙집 앞 평지에서 줄넘기를 하곤 했다. 헤르미온느 내지는 척척박사 느낌의 펑키한 잔머리 펌을 들썩거리며. 둘 다 하숙생 신분이었지만, 그 넓은 서울에서 마음 잘 통하는 고향 친구가 이웃사촌이 되어 있는 상황은 언제 들여다봐도 신기했다.


첫눈에 반했다, 후광이 보였다와 같은 표현이 남녀 사이에서는 쓰인다. 그런 강렬한 경험은 내 인간관계를 통틀어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겪는다면 그 역시 좀 곤란하겠다), 다른 공식은 제법 익숙하다. 별다른 감흥이 없던 사람. 심지어 저 사람은 나랑 별로 엮일 일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진국이거나 의외로 나랑 꽤 잘 통하는 사이 말이다. J도 시작은 그랬다. 직설적인 화법에 당차고 야무진 성격의 그녀와 내가 이렇게 깊어질지 미처 몰랐다.


우리는 각자의 전공을 십분 살려 사회인이 되었다. 베필을 만나 결혼도 했다. 비록 대딩시절처럼 불현듯 만나 생맥에 치킨을 즐길 순 없지만. 년에 한두 번 연락할까 말까지만. 여전히 친근하고 애틋하다. 그리고 서로의 안녕을 가득 빈다. 인상 내지는 느낌도 중요하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것이다. 그 진리의 책장에 당당히 J가 자리하고 있다. J한테 오랜만에 연락 좀 해봐야겠다.




사진: UnsplashMelissa Ask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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