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성 난청 그 이후
1부는 여기로 https://brunch.co.kr/@ddamang/103
<2부>
그러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전학을 왔는데 시험을 치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학창시절의 소심한 모범생이었고 전학 오기 전까지 유지하던 우수한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시험지의 1번 부터 사지선다의 선택지가 춤을 추듯이 움직여서 도대체가 글씨가 읽히지 않는 것이었다. 언어영역과 영어가 앞뒤로 붙어 있는 시험지에, 나는 자신 있었던 언어영역부터 헤매자 멘붕상태가 되었다. 일단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풀자 싶어 영어 문제를 보는데 천지가 개벽했는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뒤섞여서는 영어 시험지의 듣기 평가는 각자 이어폰을 끼고 시험지를 '터치'해서 재생버튼을 눌러야 시험을 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놈의 이어폰은 도대체 어디에다 끼워야 소리가 들리는 건지,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으나 나를 제외하고 교실의 모든 아이들은 머리를 처박고 익숙하게 문제를 풀고 있었다.
시험 유형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왜 아무도 나에게 미리 얘길 해주지 않은 건지, 전학생에게 최소한의 배려도 안해주냐며 욕을 하면서 이어폰 구멍을 찾는데 이 와중에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든 것이 말도 안되게 가능한 (우라질) 꿈속에서는 시험치느라 전화를 못받는 나에게 엄마의 음성메시지가 재생됐다. 물론 다른 이들에겐 안들린다.
"경아, 느그 오빠가 며칠 째 전화를 안받는다, 무슨 일 있는거 아이제? 오빠한테 함 연락좀 해봐라"
글씨가 춤을 추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섞인 대환장 파티 시험을 치느라 똥줄이 타고 있는 나에게 우리 엄마는 꿈에서도 끝까지 자기 할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험지를 앞뒤로 넘기며 문제를 풀어보려고 용쓰는 와중에도 엄마에 대한 서운함, 기가 막힌 내 상황에 대한 서러움이 강하게 남은 채 나는 꿈에서 깼다.
눈을 뜨니 새벽 4시 50분,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만큼 생생한 꿈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나는 그날 정신과 선생님을 찾았다. 꿈 얘기를 털어놓으며 아직도 다른 사람이 내게 하는 평가, 성과에 대한 압박이 내 무의식을 채운 것 같다고 말한 내게, 선생님은 나의 무의식과 욕망의 가장 아픈 부분을 꿰뚫는 해석을 내놓으셨다.
"제가 보기엔, 아날로그는 연경씨가 아프기 전, 그리고 디지털은 회복 이후 삶을 뜻하는 것 같아요. 아프기 전에도 그렇게 열심히 애를 쓰고 살았는데, 지금 아프니까 강제로 쉬고 있긴 하나 '쉬는 것도 잘, 그리고 빨리' 끝내서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강한거죠. 그런데 디지털 시험지에서도 헤매는걸보면, 쉬고 난 이후 자신의 삶이 너무 불안한거죠. 쉬고 나면 내 삶이 커리어가 끝나 있을것 같은, 쉬는 내내도 불안할 수 밖에 없는게, 아프고 난 이후 회복되는 것에 대한 기대나 긍정적인 마음보다는 이 아픔의 끝이 부정적인 결말이 되리란 걱정이 더 많은거죠. "
나는 선생님이 쉬는 것도, '잘' 빨리 성과를 내서 쉬는것도 잘했다는 인정을 받고 싶단 욕구를 얘기할 때 어디 숨고 싶었다. 귀가아프고 어지러움에 정신 없는 동안 쉬는것도 잘해서 인정받고 싶단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의식 깊숙히 찔린 걸 보니 선생님의 해석은 다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과거에도, 현재에도 애쓰고 또 고군분투하는데 주변에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고, 그 와중에 가족들은 나를 힘들게만 하는... 그동안 연경씨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어요. "
나의 외로움도, '외롭다고 느낀적이 없었는데요' 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내 눈에 이미 맺힌 눈물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게했다.
선생님은 숙제처럼 나에게 의문을 던지셨다. 왜 나는 계속 애쓰고 증명하려 하는 삶을 반복하는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끌어다 쓸만큼 열심히 살려고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불안할 때 마다 일을 하면서 해소하려고 했던 이유를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고. 아마 한번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을 거라고, 휴가를 가도 늘 머릿속으로 다음 일, 다른 일, 다음 스텝을 생각하면서 지냈으니 '쉰다'는게 어떤 건지 경험 해 본 적이 없었을 거라고. 이젠 그런 패턴으로 계속 살 수 없다며, 스스로를 혹사하며 사는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언제고 난청이며 어지럼이며 또 찾아올거란 무시무시한 경고를 남기셨다.
나는, '쉼' 조차 '성과를 내는 일'로 의식하며 지낸다는 내 자신이 뜨악스러웠지만, '이제라도 그걸 '인지'하게 돼서 다행이라며 '인지'하면, 내 삶의 변화가 좀 생기지 않을까 싶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 자신을 '마력이 700,800넘는 엄청 좋은 차'로 생각하라고 하셨다. 기름이 한 두 방울 밖에 없는데, 달리면 뭐하냐며, 곧 멈추는데... 기름이 쌓일 때 까지 기다려야 달릴 수 있다고. 쉬는 동안 (기름을 채우는 동안) 스포츠카인 자신이 폐차 직전의 똥차가 되는 건 아니지 않냐고, 언제고 기름만 차면 예전처럼 잘 달릴 수 있다고. 하지만, 쉬는 동안 일하던 업계에서 자신이 잊혀지면,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현실적인 조언도 덧붙이셨다.
나의 남루한 자신감은, '절 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스포츠카일리가 없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습게도 '그래, 똥차는 아니지...중형 세단정도는 된다고 믿자.'란 생각이 올라와서 그마저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실, 선생님이 내게 던지신 질문이 엄청 새롭거나, 난생 처음 생각해보는 주제는 아니었다. 나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거나, 바쁘지 않으면 불안감에 시달렸고 결혼도, 육아도, 성과를 내야하는 일처럼 여겼다. 그렇게 흔하지 않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보겠다고 아득바득 일하며 지내는 동안,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의 공백이 생기고 난리 부르스를 떨어가며 삶의 구멍이 생길 때 마다, 내 안의 불안이 더 커질까봐 두려웠고, 일을 못하게 되어도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사람이 되느냐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대명제는 늘 마음에 품고 지냈다.
재작년, 이석증으로 어지럼증이 시작되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았으니 나의 '마음 공부' 성적표는 꽤 잘 나왔으리라 착각하며 지냈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나는, 제일 질기고 어렵고 육중한 무게의 그 질문에는 답을 못한 채, 그냥 '살던 대로' 살았던 것이다. 유니레버와 다이소 회장님의 미팅 통역 이후, 난청이 급격히 심해졌으니,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우겼던 일의 스트레스, 관계의 스트레스가 기능 상실 수준의 전두엽을 가진 나에겐 얼마나 버거웠을까?
난청 이후로, '산다'라는 말의 무게를 매일 가늠해본다.
아침에 눈이 떠졌으니, 죽지 않았으니, 그냥 살던 대로 사는 삶 말고,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색깔, 어떤 냄새, 어떤 풍경이 그려지는 것일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 내가 믿는 절대자에게 수없이 물어보았지만 그분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창백하리 만큼 하얗게 빈 A4 종이를 매일 내게 한장 씩 건네시는 듯 하다.
어떤 날은, 보라빛과 푸른색이 그라데이션으로 물든 수국을 보며 흥분해서 앞으로의 내 삶도 이렇게 오롯이 아름답고 풍성할 거란 기대로 몽실몽실 피어오른 구름을 그렸다가, 이 와중에도 성우녹음 샘플만 받아가고 아무런 연락이 없는 광고주 때문에 열받으면 거칠게 마구 낙서를 해놓았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애쓰고 바라면 실망만 커지지, 아예 기대를 말아야지라고 궁시렁 대면서.
그러나, 선명해지는 것은,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더 깊이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난청에서 벗어나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길래, 예전엔 꾹꾹 참고 말았을 일도 솔직하게 얘기해보기로 했다. 꿈에도 등장한 엄마와, 오빠에게.
엄마에겐, 전화를 해서 대성 통곡을 했다. '어지럼이 안 나을 것 같다고, 청력이 안돌아오면 어떡하냐고, 그동안 왜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이렇게 아플 거였으면 열심히 살지나 말걸,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고...' 엄마는 9살 이후로 당신 앞에서 한번도 운적이 없던 딸이 나이 40넘어서 엉엉 울어제끼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걱정 되기도 해서 당장 부산에서 올라오시겠다고 했다. "엄마가 오면, 내가 더 힘들어 나 엄마 아침밥 못해줘"라고 끝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나니 신기하게 건드리기만 해도 펑펑 쏟아지던 눈물이 잦아들었다.
동생이 아프다는데, 사는게 바빠 전화한통 안하는 오빠에게도 전화를 해서 서운하다고 했다. 오빠가 고깝게 들을까봐 눈치보며, 얘기를 꺼낸 나에게 오빤 진심으로 미안하다며, 그렇게 아픈 줄 몰랐다고, 그동안 자기 대신 부모님 챙기느라 오빠가 미안하다며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언제든 두번 생각하지 말고 자기한테 다 얘기하라고, 직설적인 엄마처럼 살아야 이제 병이 안생긴다며,,, 오빠가 남긴 장문의 카톡을 보며, 나는 진심으로 위로를 받았다.
무엇보다, '우주보다 더 크게' 엄마를 좋아한다는 날 닮은 아이들을 보며 '애들 생각해서라도 독하게 마음 먹고 나아야지'의 억척스러운 의무감보다, 아이의 존재 자체를 오롯이 느끼며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있다. 언니 없이 엄마를 독점해서 데이트 하는 날, 집순이가 가진 텐션을 우주 끝까지 끌어올려서 엄마랑밖에서 지내는 시간 내내 자신의 행복을 만끽하는 막내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나랑 자다 내 잠꼬대 소리에 깨서는 '엄마, 내가 지켜줄게!'를 외치며 잠에 드는 첫째를 보며 신기하기도, 황송하기도하다.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이 멈춤 뒤에 나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하나도 모르겠다. 다만, '멈추면 죽는다' 생각하고 생존을 위해 계속 애쓰기만 했던 내 삶의 관성을 바꿔 놓는 이 시점에, '멈추면 쉴 수도', '멈추면, 연료를 채울 수도', '멈추면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끼워 넣을 여유와 용기가 조금 생기지 않았을까...
예전엔, 국민헌장 보듯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
내게 주어진 뭐 하나 새로울 것 없는 반복되는 일상의 A4 종이 한장에 아무렇게나 그리고 종이를 벅벅 쥐어 뜯기도 하면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며 지내다 보면, 찰나가 행복해지고, 반나절이 행복해지고, 하루가 온전해진다고 믿고 싶다.
그러다보면, 극도의 스트레스만 존재하는 일이 아니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꾸미고, 기획하고, 실행할 힘도 생기지 않을까...도파민에 쩌든 전두엽을 얼르고 달래가면서, 행복에 솔직해지기로 다짐을 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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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어있는 나에게'를 마감합니다. 이번 브런치 북을 연재하는동안 공교롭게 난청과 어지러움으로 진짜 더 '숨어 지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누에 고치 같은 삶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생기 있는 글로 찾아오려고 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