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죽는 거 아니야? -1부-

돌발성 난청 그 이후

by Claire Kim

5월에 2주간 왼쪽 귀가 먹먹해지고, 귀 안이 팽창하는 듯하면서 웅웅 대더니, 결국 '돌발성 저음난청' 진단을 받았다. 내 귀는 스피커의 우퍼가 떨리듯이 작은 소리와 진동에도 '벌벌벌' 떠는 상태가 되었다. 상상해 보건대, 뇌와 연결된 깊은 귓속, 내이의 세포까지 다 발가벗겨진 듯, 귀 밖으로 튀어나와 세상의 모든 진동과 소리를 흡수하는 양, 극도로 예민해지고 치명적으로 섬세해진 내 감각은 '통증받이'가 되었다.


소리와 진동이 느껴지지 않게 창문을 꼭꼭 닫고, 두꺼운 암막 커튼을 치고, 방 안 이불속에 누에고치처럼 웅크리고서 나는 지금 내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는 당황스러움과 영원히 청력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심에 계속 울었다. 2년 전, 이석증이 생겼을 때 내 삶에 무언가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일을 줄이고, 마음을 비우는 일에 매진했다 생각했는데 그 지긋지긋한 어지럼증이 1년 반이나 계속되고 이제 괜찮다 싶을 때쯤 난청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지러움도 다시 시작되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짐작해 보는 것조차 화가 났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인지, 나에게만 가혹하다 느끼는 세상에 화가 난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하다가 가족들까지 힘들어지는 걸 더 볼 수가 없어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개성 있는 외모와 독특한 아우라의 정신과 선생님은, 나의 우울증이 아주 오래되었으며 뇌파 검사상으로는 전두엽이 거의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인지와 기억력에 불편함이 있었을 거라 했다. 어떤 일이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엄두가 안 났을 것이며, 겨우 무언가를 시작해도 '이거 해서 뭐 해...' 쉽게 동력을 잃는다고 했다.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에너지가 다시 올라오려면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간간히 통역 일을 계속했는데 인지와 기억력에 장애가 있으면 못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선생님은 내가 통역을 매일 출근하듯이 하지 않고, 가끔 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 정도 일하고 나머지는 쉬면서 한 두 방울 쌓인 에너지를 끌어다 썼을 거라고 하셨다. 'reserve'라고 하는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당겨다 쓰면서 지금의 탈이 난 거라고...


지금, 잘 쉬고 잘 자면서 회복하지 않으면 난청은 또 재발할 거고, 어지러움도 마찬가지라 했다. 나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성취 지향적이라 늘 동시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뇌가 쉬는 경우가 잘 없다며, 지금 쉬는 것을 최우선으로 둬야 한다고 했다. 난청 치료를 위해 먹은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때문에 몸의 면역 기능이 회복되는 데 3개월은 필요하다며 절대로 무리하면 안 된다고도 하셨다.


그래서, 그 뒤 나의 일상은 '이렇게까지 누워 있을 만큼 무리를 한 것이 맞나'를 계속 의심하면서 대학병원 진료와 정신과를 오가며 면역 저하로 얻은 축농증 치료까지 약을 한 주먹 털어 넣고 누워 있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난청 진단 이후 한 달쯤 되자, 청력은 완전 정상까진 아니지만 돌아오고 나비 날갯짓에도 벌벌 떠는 듯했던 진동 증상도 사라졌다. 문제는 어지럼증이었는데, 대학병원 교수님은 청력이 돌아온 것만 해도 엄청나게 운이 좋은 경우라 어지럼증은 달리 해 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매일, 쌀을 씻고, 닭다리를 손질하고, 오이에 소금 뿌려 절이고 하는 등의 식사 준비를 하는 중간중간 의자에 앉아 쉬면서 겨우 한 끼만큼의 에너지를 내어 아이들 밥을 챙기고, 3일 치의 에너지를 내어 수건을 삶고 빨래를 갰다. 그리고 날이 너무 더워지기 전까진, 밤에 양재천을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어지러우면 마트에서 카트를 밀면서라도 다녀야 어지럼증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대학병원 교수님의 말 때문에 어떻게든 운동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 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스테로이드 때문에 각성 상태가 돼서, 잠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새벽 3시나 4시에 깨면, 핸드폰의 네모난 작은 화면으로 들어가 스스로 갇힌 상태가 된 기분이었다. 유튜브 뉴스 영상 속 제멋대로인 트럼프를 욕하다가, 영화 리뷰 유튜버들의 채널을 다 훑었다가, 알고리즘이 온통 세기말, 아포칼립토 영화 리뷰로 채워질 때쯤 해가 떠올랐다. 유튜브 때문에 어지러운 일상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유튜브 때문에 내 뇌는 도파민에 절어 이대로 끝나겠구나 싶었다. 하루 중 대부분을 누워서, 작은 네모 속에 존재하는 남의 인생만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서 모멸감이 느껴졌지만, 달리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철저히 혼자인 삶은 아니었다. 회사 다니면서, 박사 학위 공부하면서, 애들도 같이 챙기면서 내 가방 들고 병원 진료에 매번 따라와서, 잔뜩 긴장한 채 내 귀 상태를 진단하는 의사의 입을 천금처럼 바라보는 남편을 보자니, 미안하기도 짠하기도 하면서 그간 자존심 싸움에 날 세운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병원 다녀온 날, '자꾸 아파서 미안하다'며 남편을 안아줬는데, 남편은 나를 토닥이며 "꼭 나아야지, 나을 수 있어, 이제 아프면 안 돼, 꼭 나을 거야..."라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주억거렸다.


9살, 11살인 두 딸이 학교에서 오면, 급식 메뉴부터 시작해서 관심 가는 같은 반 축구선수 남자친구얘기, 요즘 듣는 아이돌 신곡 얘기, 어떻게 하면 맛난 자두를 고를 것인가에 대한 얘기까지 '엄마'로써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프기 전에도 아이들 얘기에 추임새 넣어주고 고민 상담해 주는 일에 소홀했다 생각하지 않지만, 아픈 이후엔 아이들의 빛나는 유년 시절이 더 아깝고 소중해졌다.

아이들에게도 쑥스러워서 자주 사랑한다 얘기해주지 않던 나는, 조금 부끄럽지만 등교할 때도, 자기 전에도, 생각날 때마다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그러자 막내도 전화 끊기 전 뜬금없이 '웅, 옴마, 샤랑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나란 사람을 엄마로 맞이해서 사는 동안 내 안의 들끓는 불안과 모든 좌충우돌의 에너지가 아이들도 흡수하며 살았을 생각을 하니, 애 둘 다 예민해서 키우기 힘들다 토로하던 나 자신도, 아이들도 조금 더 짠해졌다.


그러나,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어지럼증과 무기력한 일상,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몸이 버티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 '일본 가정식 계란찜'처럼 나폴대는 부드럽고 나약한 일만 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면서 나에겐 오지 않을 '완치판정'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허무하기도, 갑갑한 하루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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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전학을 왔는데 시험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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