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근육 짱짱맨!
투고 전쟁 중입니다... 마무리 글을 쓰고 있어요... 하루에도 열천번씩 때려치고 싶은 맘을 꾹꾹 누르고, , 글에 대한 피드백이나 응원 댓글 남겨주시면 투고가 좀 빨라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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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Muscles : 들어는 봤나, 마음 근육!
프리랜서로 살면서,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이 ‘마음의 근육’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버틸 힘은 쉬이 주어지지 않았다. 굳이 난이도를 따지자면 아이 둘을 출산한 후 늘어진 배로 복근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돌발 상황이 생겨도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 것에는 필요 이상으로 비굴해지지 않는 것. 통역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도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내 진심까지 B급 취급을 당하게 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 내가 기대한 만큼 긍정적인 피드백을 못 받으면 밤에 이불킥을 해대며 스스로를 고문하는 버릇을 시원하게 갖다 버릴 수 있는 용기.
그렇게 쿨하고 당당한 '마음 근육' 빵빵 프리랜서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나이만 먹으면, ‘별의 별’ 종류의 사람을 더 많이 만나면, 어느 새 그런 사람이 돼 있을 거라 믿은 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오랜 시간 불안과 조급함으로 쌓아 올린 나의 커리어의 체질을 바꾸는 데는 더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강력한 처방은 난청과 어지러움으로 왔다. 육체의 집이 허물어지면서 나는 모든 것을 제로에서 시작하게 됐다. 청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그동안 그렇게 죽살이치며 일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시간이 허망해졌다. 어지러워서 누워있기만 하는데, 내가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이, 국제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난청 진단을 받고 일주일간 숨어서 울다가 병원 갔다 오는 길 갑자기 설움이 폭발한 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이제 귀가 안 들릴지도 모른다는데, 나는 평생 이렇게 어지럽게 살다 죽어야 할 것 같은데, 그동안 왜 열심히 살았나 모르겠어. 열심히나 살지 말 걸. 엄마 나 너무 무섭 고 억울해. 엉엉.”
딸이 광광 울어제끼는 것을 내가 9살 이후로 본 적이 없는 엄마에게, 나는 9살로 돌아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길거리에서 허물어지며 흐렁흐렁 울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날 이후 눈물이 말랐다. 속시원한 살풀이를 한 것처럼. 이제 다시는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도 예전처럼 무섭거나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는 것’, ‘존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화려한 커리어의 워킹맘이 아니라 아직 어린 딸들에게 곁에 있어줄 수 만 있다면 그까짓 일 평생 못하게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어달이 지나 돌발성 저음 난청을 겪은 이들 중 30%만이 예전의 청력을 회복한다는 그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다. 나는 극적으로, 청력도 돌아오고 몇 년 간 나를 괴롭히던 어지러움도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영어프리젠터로, 행사 MC로 나는 복귀했다. 공교롭게도 복귀 후 맡은 영어프리젠테이션은 십여 년간 내가 만나 본 고객 대표들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분이셨다. 발표 리허설을 대표님만을 위해서 여러 번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분의 스케줄에 맞춰서 몇 시간을 대기하거나 발표 의상을 미리 컨펌 받거나 하는 이전엔 만나보지 않았던 유형의 까다로운 분이셨다.
처음에는 내가 이런 부당한 대접을 받으며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에 당장 그만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틀 남긴 발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어서 나는 하기로 한 발표를 무사히 잘 마쳤다. 1시간 넘게 진행된 경쟁 PT발표가 끝나고 그 대표님은 나에게 바짝 붙어서 질문하셨다.
“요즘, 바쁘세요? 이거 끝나고 뭐 다른 일 또 하세요?”
또 다른 프로젝트를 나에게 맡기려고 하는 의중이 너무나 잘 읽혀진 나는, 대표님을 똑바로 쳐다보며 살짝 미소 띤 채 말했다.
“저요? 저 은퇴할 건데요.”
“예?? 은퇴요? 아니 왜, 왜, 왜요?”
그 뒤, 나에게 전속 프리젠터로 자기 회사와 계약하자는 제안을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프기 전의 나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처세였다.
아프고 난 후의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와 할 수 없는 것의 경계가 명확해진 상태였다. 늘 일주일 뒤를 알 수 없는 불안한 프리랜서의 삶에 정기적인 일을 확보해 놓으려고 애쓰던 예전을 생각하면 출근도 안하고 그저 가끔 이메일에 답장만 해주며 일정 보수를 받는 그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과거의 나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당신이랑 일하기 싫소’를 ‘은퇴’로 빗대어 말 할 깡이 생겼다.
얼마전 해외 수행 통역 제안이 들어왔다. 출장지는 미국이었고 모든 항공과 숙박을 제공한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로 밥 벌어 먹고 사는 나는 한번도 미국에 가보지 못했다. 늘 미국출장을 동경했던 나에게 그런 제안은 꿈에서나 받아 보던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해야 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이라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정중하게 사정을 얘기한 직후 거짓말처럼 나는 그 제안을 잊어버렸다.
과거의 나라면 최소 일주일동안 매일 밤 미국에 가 있는 나를 상상하며 아쉬워했을 것이다. 제안을 거절한 이후 까맣게 잊어 먹고 있다가 우연히 지인과 출장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서 그 일이 생각 났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놓아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다니, 오랫동안 갈망했던 일을 잊어버릴 수 있단 사실 자체로 나는 내 자신이 놀라웠다.
게다가 가장 최근에 내 안에 마음 근육이 차올랐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낀 일이 있었다. 최근 두 달간 일주일에 한번씩 온라인 비즈니스 미팅에 통역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건설관련 업종이었고, 중동의 고객은 공사 관련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조율하길 원했다. 중동의 액센트가 강한 영어, 미리 공유되지 않은 회의 내용, 들어본 적도 없는 업계 용어 등으로 통역하는 내내 나는 골머리를 앓았다. 당연히 통역이 매끄러울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중동의 클라이언트와 나를 통역으로 고용한 회사(나의 고객) 사이에 낀 에이전시의 담당자가 나를 불편해한다는 것이었다. 에이전시의 한국인 담당자는 처음부터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는데 나는 그 사람과 상관없이 나를 고용한 회사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회의가 계속될수록 알 수 없는 불편과 긴장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결국 제일 어려웠던 미팅이 끝나자마자 그 에이전시의 담당자는 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다음 미팅부터 ‘통역을 빼고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담당자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있던 나도 그 얘기를 다 듣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얼굴이 화끈대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놓고 나를 빼고 하자는 얘기를 들어도 나는 별로 절망스럽지 않았다. 할수록 익숙해지는 결의 일이 아니라 갈수록 더 미궁에 빠지는 듯한 회의 내용에 나 스스로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긴 했으나 차분하게, 다음 미팅부터 내가 빠지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다고 의견을 밝히고 회의실을 나왔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에이전시의 담당자가 어느 대목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안 들었을까를 생각했다. 자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것인지 자문해봤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홀가분해졌다.
딱 하루, 그 날만 속앓이를 하고 끝을 냈다.
내 마음에 생긴 근육이 아직 천하무적 용가리 통뼈 같진 않다. 머릿 속엔 ‘이 일 아니면 다른 것 하고 살지 뭐,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라고 되뇌이지만 아직 내 일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래도, 통역 망치고 두 달간 이불 뒤집어 쓰며 칩거하던 시절에 비하면 딱 하루 속 앓이로 끝낼 수 있고,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고객에게 당당하게 ‘은퇴’할 거라고, 날 찾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는 깜냥이 생긴 자신이 나는 무척 대견하다.
아프고 나서 나에게 생긴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나의 최선이 상대에게 최고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를 가장 오랫동안 끈질기게 괴롭힌 기저는 항상 ‘내 탓’이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거기에 닿기까지 애쓰고 노력한 과정을 다 부정하고 ‘최고’가 되지 못한 ‘최선’은 무가치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그렇게 나를 조금씩 갉아먹으면서 세운 화려한 커리어의 집은 골다공증에 걸린 뼈로 만든 구멍 투성이의 얼개였던 것이다.
이제는 좀 괜찮아졌다. 아프고 나서 생긴 마음 근육 덕분이다. 부디, 복근의 유효기간처럼 짧지 않기 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