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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Kim Jun 06. 2019

(3)프리랜서,그들이 몰려온다

사소하지만, 위대한 습관

  (1)물리적 안전 시스템 - 일터와 루틴 (Routine)

                                            

                 "옆 방으로 출근해요"

프리랜서는 출퇴근할 ‘직장'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물리적으로 구별된 ‘작업공간'이 꼭 필요하다. 비용 절감 측면에서 자신의 집을 일터로 삼는 이들이 많은데, ‘컴퓨터'가 주로 있는 곳이 작업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컴퓨터뿐만 아니라 마치 항공관제탑처럼,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일과 앞으로 할 일을 한 눈에 파악해서 언제든 고객의 요구와 질의가 있을 때 필요한 장비를 즉각 탑재하고 전투기처럼 날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사무실을 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직군이라 할 지라도 ‘구별된 작업공간'이 주는 혜택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만의 ‘사무실'은 일의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1인 기업'의 가시적인 테두리를 제공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복잡한 개인사와 커리어를 구분짓는 도피처가 될 수도 있다. 프리랜서라서 자유롭게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지만,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커리어를 지지해주고 뒷받침해주는 느낌이 드는 물리적인 공간, 일터를 가지는 것은 작업의 효율을 위해서도,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멘탈관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나 같은 경우는 홈 레코딩(성우작업)하는 공간을 사무실로 만든 셈이다. 책상 위를 방음벽으로 두르고 마이크, 마이크대, 헤드셋등을 설치하고 편집용 커다란 모니터와 노트북 그리고 그 주변 책장에는 지금까지 진행한 행사, 통역, 번역 관련 자료, 스크립트, 책자, 영어 학습 서적 등을 꽂아 놓았다. 방음벽 덕분에 흡사 독서실 책상 같이 주변이 차단되어있기에 집중해서 번역을 하거나 영상 편집을 하거나 할 때 아주 요긴하다. 집안일, 육아를 다 마치고 밤 11시부터 녹음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마이크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잠시 화면을 응시하면 지난 5년간 이 마이크 앞에서 녹음을 했던 내 안의 일하는 ‘나', 무언가가 내 안에 스며드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프로그램을 열면서, 입을 풀고, 성대를 푸는 동안 ‘일하는 공간'이 주는 에너지를 받으며 나는 ‘일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사소하지만 위대한 습관"

나만의 사무실을 만들었다면, 루틴(Routine)을 만들 차례이다. 사실, 프리랜서 10년차를 지나면서 제일 효율적인 자가 안전망으로 찾은 것도 이 루틴이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루틴은 ‘프리랜서로 존재할 수 없을 때’ 더 빛을 발한다. 프리랜서로 존재할 수 없을 때는 언제일까? 일을 하지 못할 때이다.


프리랜서는, 일을 따내지 못하면 그냥 ‘프리(free)’하기만 한 개인이다. (ㅠㅠ)


컨설팅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컨설턴트'라는 직함을 파고 다니는게 무의미하다. 국제회의 MC라고 하지만,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면 MC가 아닌것이다. 프리랜서가 되는 순간, 일이 곧 내 자신, 정체성이 된다.  일이 곧 내 자신이 되면, 일이 잘 풀릴 때는 내 자존감도, 성취감도 상승곡선이지만 일이 잘 안될 때는 고꾸라지는 실적과 함께 곤두박질치는 ‘자아'도 떠안아야한다. 이럴 때 늘 해오던 루틴이 있다면 그 루틴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기 그지 없는 시간을 버틸수 있다.


회사에 출근할 때는 오전과 오후 때론 야근까지 해야할 일들이 늘 정해진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혼자 일을 할 때는 오전 팀미팅이나, 기안서 제출하며 눈치봐야하는 상사는 없더라도 매일 같은 시간 할 일들을 정해서 스케줄을 짜놓고, 그 루틴속에서 일을 꾸려나가는 습관을 들이는게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면 오전 작업실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고객에게 전화하기' 또는 ‘할 일 목록’ 점검하기로 정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컨설턴트는 오전에 업무 강도가 가장 센 일부터 해치운다. 제일 집중해서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일을 오전에 배치를 하고, 오후에는 업무 관련 미팅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단순한 계산을 요하는 엑셀작업등을 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오전에 제일 ‘미루고 싶은' 일을 먼저 하는 것이다. 오전 시간을 대강대강 써버리면 오후에 생기는 돌발 상황에 밀려서 그날 꼭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오전에 제일 어려운 업무나 과제, 피하고 싶은 일을 정면 돌파 하면 그날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 또한 오전을 제일 생산적으로 쓰려고 애쓰는 편이다. 커피를 마시며 영어 뉴스 팟캐스트나 TED를 틀어놓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글을 써야하거나 기획을 해야하는 일이면 오전 11시가 되기 전에 70%이상 마무리 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11시 이후까지 지지부진 하다면 거의 100%그 일은 그 날 끝내지 못한다. 그러고 나서 유튜브,블로그등 일과 관련된 플랫폼을 관리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하는 등의 작업을 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이 루틴이 중요한 것은, 프리랜서로서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지만 그 자유롭다는게 많은 시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될 수 도 있다. 제안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나, 공들여 만든 포트폴리오를 받기만 하고 고객사로부터 아무런 피드백이 없을 때나, 공모전의 결과를 기다릴 때 등 스팸 말곤 휴대폰 벨도 울리지 않고, 문자 메시지조차 잠잠할 때 나의 존재가 ‘잊혀져 가는’ 공포스런 고요만이 나를 둘러 쌀때가 그런 시간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공포스런 순간이 찾아오면 늘 해오던 루틴이 나를 지탱해준다. 늘 하던대로 고객사에 전화를 돌리고, 이메일로 자신을 홍보하고, 플랫폼을 관리하고, 영어 뉴스를 놓지 않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알리고, 필라테스와 수영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명상으로 마음 공부를 하는 그 루틴이 내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과 사회에 알려주는 셈이다. 그리고 그 루틴이 쌓이고 쌓여서 새로운 기회와 일을 가져다 준다. 자유로운 일상을 엄격하고 밀도있게 보낼 수 있다면 그 루틴으로 쌓인 내공이 생산적인 일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2)사회적 안전 시스템 - 관계


누군가 우리는 ‘외로움이 일터에 퍼져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했다. 굳이 ‘1인 economy’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전통적인 회사나 조직또한 ‘혼자이고 싶어요'를 표방하는 개개인이 모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전통적인 일터에는 눈만 돌리면 누군가가 있다. 바로 옆자리에, 앞자리에 저 건너편에 개인적인 감정은 좋지 않더라도, 같은 일을 하는 ‘동료'라는 개념의 누군가가 있다. 그들은 좋으나 싫으나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소속감'을 주는 사람들이다.

프리랜서로 독립한 사람들 중 꽤 많은 수가 이 ‘외로움'에 적응 하지 못해서 예전 직장이나 회사로 돌아가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의 해소되지 않는 욕구는 번듯한 1인 사무실과 최소 1년치 먹거리가 해결 된 상황이라 할 지라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프리랜서에게는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지속적인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고객이나 업계 관계자와의 만남을 주기적으로 잡는 등 일적으로 풀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정서적 지지기반을 가까이 두는 것은 프리랜서로 롱런할 수 있는 비결 중의 하나 일 것이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프리랜서로 독립하던 해 나는 결혼을 했다. 프리랜서로 일할 결심이 선 것은 결혼 계획을 세운 한 참 뒤였으나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부터,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고 내 안의 들끓는 열정 화산에 같이 불을 붙여 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을때 프리랜서의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호기롭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프리랜서가 되었지만 그 뒤 프리랜서의 삶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녹록치 않았고 방향성을 정하는 것도,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도 생각보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수입도, 일의 스케줄도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결혼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선택했던 것 같다.

흔히들 결혼을 하게 되면 제일 좋은 점이 정서적 안정감이라고 하는데 좌충우돌 프리랜서로 사는 나에게 결혼생활이 주는 안정감의 혜택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10년째 가장 가까이에서 내가 하는 모든 ‘실험적'인 행보를 묵묵히 지켜봐주고 잘한다 칭찬해주고 응원해주고 무엇보다 일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해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에도 나의 좌절감을 같은 공간에서 느껴 주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많은 힘이 되는 남편이 없었다면 프리랜서 5년차 쯤 그만 두고 다시 조직의 일원으로 돌아갔을 듯 하다.

하지만 각각의 다양한 이유로, ‘가족'관계에서 정서적 유대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프리랜서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랜서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싶다면 가까이에 ‘도피처'와 같은 정서적 유대 관계들을 많이 형성해 놓는 것이 가장 비싼 보험을 드는 것과 같은 가치있는 일임을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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