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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Kim Jun 15. 2023

(2부) 이태리 마피아 보스와 춤을!

프리랜서 워킹맘인 제 직업을 소개합니다. #2 한영통역사 (2/2)

#1 한영통역사 (2/2)

(1부 지난 글은 여기에 https://brunch.co.kr/@ddamang/43/write)

2부.  7시간, 전쟁 같은 통역 이후 남는 것들


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신흥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의 보스같은 이 카리스마 철철 흐르는 잘생긴 남자가 그 '알베르토'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날 의뢰한 대표님 대신 먼저 당신이 알베르토 맞냐, 나는 이번 미팅을 통역할 사람이다. 소개를 하고 드디어 전쟁 같은 미팅이 시작되었다. 


오전 3시간동안 쉬지 않고 진행된 미팅에서, 나는 지난 일주일간 내가 외우다시피 한 동영상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과, 왜 한국 총판 대표님이 알베르토를 어려워하는지를 절절하게 알게 되었다. 우선, 알베르토는 Adult shop을 '아드르뚜노 숍'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었다. 본인 스스로 자기 영어는 형편 없다며, 이탈리아어 억양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으나, 한 2시간 지나고 나니 그 억양에 또 적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분의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인 대표님이 미팅 전 나에게, 본인은 잘못한 게 없는데 알베르토랑 얘기만 하고 나면 자꾸만 '혼나는'느낌이 든다고 하셨다. 정말로 그러했다. 대표님의 말을 영어로 옮기고 난 뒤, 알베르토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 2~3초의 침묵의 시간 동안 나를 쏘아보는 알베르토의 눈빛에, 기억도 안 나는 3살 때 잘못까지 빌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럴 수록 나를 고용한 대표님 편에 서서 더 확신에 찬 어조로 대표님의 입장을 전달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미팅 이후, 본사와의 실제 계약관계는 내가 통제할 수 없겠지만, 미팅 하는 동안만큼이라도 한국인 대표님에게 거의 빙의 되다시피해서,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동양인 차별 같은 건 꿈도 못꾸게, 더 프로페셔널한 매너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드디어 3시간의 마라톤 미팅이 끝나고, 강남 매장 투어전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면서 알베르토가 한국에서 2년반 정도 살았었고,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이탈리아인 '알베르토'와도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베르토가 한국에 사는 동안 제일 좋아했던 음식인 된장찌개와 불고기 전골을 같이 먹는 동안 우린 한결 편해졌고, 드디어 강남에서 매장투어를 하는 통역 2차전이 시작 되었다.


성인용품점 투어가 시작되자, 처음엔 매장에 전시된 제품이 어떤 용도로 쓰는 것인지도 몰라서 민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제품을 디스플레이 하는 방식에 대해 매장 매니저와 얘기가 길어질수록 제품을 자세히 이해하게 되고 타사의 기능(?)을 비교하는 통역을 하면서 속으로 민망해지는건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 대표님이나 알베르토나 취급하는 물품이 단지 성인용품일 뿐 한국 소비자들이 자신의 제품을 어떻게 하면 더 가까이 접할 수 있을까 아이디어를 쥐어짜는건 다른 사업가들과 다를게 없었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성인용품을 사고 파는데 법률적으로 많은 제한을 가하는데, 예를 들면 온라인샵에서는 성인용품을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가 없고,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한국만의 특수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 굉장히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3시간 동안, 매장 투어를 다니며 내가 본 알베르토와 한국인 대표님의 모습은 여러 가지 법적제재와 성인용품을 음지에서만 취급하는 문화등,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몇 백개는 될듯한 제품의 특성과 판매실적을 나노 단위로 구분하고 한국인 소매상의 관계개선을 위해, 아이디어를 계속 발굴하는등 누구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산업에 진심인 분들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가장 큰 성인용품 매장(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일 것이다)인 R 매장을 둘러보면서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가끔 지나다니던 강남역 뒤쪽 골목길에 이렇게 큰 성인용품 지하 매장이 있을 줄이야. 그러나 사실 나를 더 놀래킨 건, 그 넓은 매장을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민망한 제품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그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태도였다. 매니저라고 적힌 명찰 아래 자신의 이름 석자를 걸고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시던 그 매장의 매니저분은 신제품을 소개하게 돼서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 같아 보였다. 나는 손님이 아니라, 미팅에 따라왔을 뿐인데 나에게도 어찌나 친절하게 대해 주시던지, (내가 내내 걱정하던) ‘기 념 품’까지 챙겨주셨다. 각 잡힌 예쁜 종이 백에, 명함과 정성스레 포장된 각기 다른 향의 ‘페로몬’ 샤워젤 2개. 


사양 할 새도 없이, 한국인 대표님께서 ‘성인용품 제품은 일반 화장품 원료보다 훨씬 엄격하고 까다로워서 좋은 원료를 쓴다’며 가서 ‘잘’ 쓰시라’고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잔뜩 담긴 진지한 어조로 얘기해주셨다. 그 표정이 어찌나 근엄해 보였던지(엄근진 그 자체) 나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집에 고이 모셔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집 샤워부스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지막 매장투어를 끝으로, 마피아 보스의 포스를 풍기던 이탈리아인 알베르토와 헤어지게 되었다. 하루 종일을 같이 보내고 나니, 알베르토와 꽤 친해져서 다시 만나면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길 무렵, 알베르토가, 오늘 잘해줘서 진심으로 너무 고마웠다며, 너는 확실히 언어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다음에 꼭 다시 보자며 악수를 건넸다. 


12월, 추운 겨울에 만난 성인용품업계라는 새로운 세계. 성인용품의 이미지 때문에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쉽게 진입하지 못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시작하게 됐다는 패기충만한 젊은 한국인 대표님과 한번 보면 절대 잊지 못할 카리스마로 업계 1위를 향해 돌진하는 이탈리아 아태 총책임자, 그리고 업종이 무엇이든 생업의 현장에서 자부심과 확신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내가 통역이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매번 새로운 세계와 도전을 접하는 것은, 호기심이 많고 늘 새로운 것에 짜릿함을 느끼는 내 성향에 너무나 잘 맞는 일이다. 통역을 준비하는 과정은 늘 너무나 고통스럽고, 후회스럽다. 대우건설과 나이지리아 대통령 면담 통역 때는 대학원 석사 논문 쓸 때처럼 자료를 찾고, 부담감에 잠도 못 자고 그런 통역을 하고 나면 미팅이 잘 끝나도, 몸의 모든 기름기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며칠간 이불 속 소라게가 되어 지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통역을 하겠다고 나서는 건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기 좋은 조건도 있지만, 내가 가진 작은 재능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을 선물처럼 받기 때문이다. 자료준비, 평소의 칼 같은 통역실력도 매우 중요하지만 통역의 성공 여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마음을 얼마나 잘 헤아릴 수 있느냐에 달린 것 같다. 고객이 이 미팅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아젠다, 계약 조건, 금액 등 최선을 다해서 그 계산에 같이 동참하고, 상대의 마음을 얻고자 쓰는 단어, 표현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내 고객이 한국어로 했다면 썼을 것 같은 표현 말이다. 


이 모든 사전 작업과, 현장에서의 긴장, 대치관계가 다 지나고 나면 전쟁 같은 통역 후에 나에겐 ‘사람’이 남는다. 계약이 잘 안 풀려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고, ‘대표님’과 같은 마인드로 한다는 내 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게 된 많은 ‘대표님들’이 남는다. 그리고 기념품도.


알베르토 이후, 이 대표님과 다른 미팅을 한 번 더 진행했고 알베르토는 일정이 안 맞아 못 만났지만, 젊은 한국 대표님의 총판 유통은 본사의 신임을 얻어 순항 중이며, 나의 샤워젤은 가끔 기분 전환으로 쓸 때 독보적인 향기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샤워젤을 쓸 때마다, 내 직업의 ‘선물 같은’ 순간을 생각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도 선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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