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에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기차라서 옆자리에 아무도 없겠거니 기대하며 5호차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미 내 좌석 옆자리에는 2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옆으로 비스듬히 모로 기대앉아서는 다리 한쪽을 받침대 삼아 핸드폰 게임 삼매경이었다.
창가 측이라서 살짝 목례로 양해를 구하고 좁은 좌석에 간이 책상 편 후, 백팩, 커피등 살림을 늘어놓고 나서야 한숨 한 바가지를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좌석에 등을 기대자마자 어디선가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몸이 들썩일 정도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좌석이 덜덜덜 떨리면서 안 그래도 어지럼증이 남아있는 나는 이 진동의 실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어로는 적당한 험한 말이 생각 안 나지만, 영어로 하면 What the hell.. 이 자동으로 발사되면서 주위를 보니 옆자리 그 청년이 아이템을 발사하고 있는 건지, 니죽고 내 죽자 모드인지, 다리 한쪽을 미친 듯이 떨면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1분가량을 참아보았다.
'이번 판 죽으면 다리를 안 떨지도 몰라...', 자기한테도 진동이 느껴지면 그만두겠지..
그러나 간절한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다리에 모터라도 단 양, 20대 후반(30대일 수도 있지만, 암튼 젊은..)의 다리 발전기는 이젠 좌석 전체에 기분 나쁜 진동을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다리 힘줄에 쥐가 나거나, 아니면 성인 ADHD가 틀림없다고 혼자 주억거리면서 나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꼼히 들고서는 도망갈 빈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좌석은 거의 다 찼고 적당히 옮겨갈 빈자리는 없었다.
이제 내가 안동에 도착하는 2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딱 2가지이다.
1. 참는 것
2. 옆자리 승객에게 얘기해서 당장 저 짓거리를 멈추게 하는 것
1번은 다시 눈을 감고 억겁 같은 몇 분을 더 참아보려 했지만 6개월 넘게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는 나에게 이 진동은 머릿속에서 지진이 계속 일어났다 멈췄다를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참다가 옆자리 청년에게 구토를 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로 생각이 옮겨가자, 2번을 어떻게 얘기할까로 대사를 짜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버스, 택시, 지하철 진상 또라이 승객들의 사례가 생각나면서 나의 전략은 최대한 '친절하게, 자극하지 않게, '였다. 마음속으로 대사를 두 번 읊어보고, 드디어 입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