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녹음된 목소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대학 때 시작한 라디오학회, 그리고 몇 번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이후였던 것 같다.
학부 때 매스컴을 전공하고, 언론사 아나운서 시험등을 치러 다니고 최종에서 고배를 몇 번 마신 후 나는 역시 비주얼은 안되고 '오디오'로 먹고살 일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이후, 회사를 다니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5년 동안에도 목소리로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일에 대한 관심(정확히 말하면 미련)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프리랜서 14년 동안, 다행히 인디 성우로나마 처음의 호기심과 열정이 다 꺼지지 않게 살고 있다.
10년 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2만 원, 3만 원의 녹음부터 시작해서
서초구 양재동 주택가에 숨은 지하 녹음실, 홍대 근처 작업실, 심지어 제주도에 여행 가서까지 현지 스튜디오를 찾아 녹음을 하는 등
내 목소리를 '선택'해준 것에 매번 감격해하며 녹음을 하러 다녔다.
지금 이사한 집에 아예 녹음부스를 들이고 홈리코딩 시설을 완비하기까지, 아마추어 성우들의 녹음 시장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튜브가 점유율을 한참 높이던 5~6년 전엔, 동네 치킨집에서도 바이럴 비디오를 만들어 올리던 시절이었기에, 재작년까지가 적은 예산의 단발성 바이럴비디오 녹음 수주의 마지막이었나 보다.
AI가 동네방네 업종, 브랜드, 산업군 불문하고 다 쓰이는 시절이되자, AI목소리가 자연스러워지는 만큼,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도 합리적으로 낮아졌다.
아직까진 물론, 인공지능 목소리가 사람 목소리만큼 자연스럽지 않지만, '휴먼'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하이엔드 브랜딩 광고 외엔
중저가 녹음 시장은 쇠락해 가는 게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이제 10살, 8살이 된 두 딸을 낳고 기르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겠다고 호기롭게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커리어도, 육아도 맘처럼 되지 않아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반정도는 미쳐서(?) 꾸역꾸역 버틴 그 시간 동안 그나마, 밤 12시에 백일 된 아기를 재우고 할 수 있는 일이 녹음작업이었다. 애'만' 키우는 나 아니고, 일하는 '나'로써의 자아를 지켜준 그 고마운 일을 AI에 밀려서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AI가 해 줄 수 없는 '휴먼'느낌 진득한 목소리는 어떤 것인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비용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사야 하는' 목소리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고객들도, 성우들도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과제이다.
최근, 가성비에 민감한 국내 녹음 시장의 스튜디오와 고객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트렌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