잗다랗게 빛나는 단어의 별
1. 영어, 음악이었다.
누군가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언어가 있다면, 그 언어의 첫인상은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음악’ 일 것이다. 나에겐 영어가 그랬고,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 불어 통역사였던 분도 프랑스어가 맨 처음엔 음악으로 들렸다고 하셨다. 12살, 다소 늦게 영어를 처음 접했던 나는 동네 공부방에서 받아온 영어 교재의 비디오에서 ‘그 음악’을 들었다.
미끄러지듯 음률을 실은 30대 여성의 세련된 북미 표준 영어. 한국어의 분절되는 음성과 달리, 가느다란 거미줄에 매달린 단어들이 끊어질 듯 말 듯 경쾌한 리듬으로 높은음과 낮은음의 파장을 타고 춤을 추듯이 와서 내 귀에 박혔다.
영어는 한국인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언어 중의 하나-언어학적으로도, 우랄 알타이어계에 속하는 한국어와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영어는 닮은 점이 없는 대척점에 서 있는 언어-이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닮은 점 없는’ 이국적인 요소에 반해서, 30년 넘게 영어를 놓지 못하고 살고 있다. 유려한 음악으로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수십 년간 영어를 체화시키면서, 내가 말하고 쓰고 이해하는 영어는 이미 나의 오장육부에 스며든 내 신체의 일부분 같은 것이 되었다.
그렇게 받아들인 영어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가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 자연스레 나의 강점 이자, 통역사, 영어 프리젠터, 국제행사 진행자로 일할 수 있는 중요한 밥벌이수단이 되었다.
한창 영어를 익히는 시절에는 영어로 밥벌이할 정도가 되면 ‘영어 정복’이란 산꼭대기까지는 아니어도 9부 능선은 넘었을 것이란 예측을 했다. 그러나 나는 지난 30년간 단 1초도 같은 모습을 유지하지 않는 언어의 퍼레이드를 지켜보며 그 다양함과 깊이에 매 순간 압도당하다, 다시 언어의 바다에 빠져 살기를 반복했다. 그 바다에서, ‘영어 정복’이란 까마득하게 먼 섬을 향해 미미하게 허우적대며 살아왔다.
하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목표를 향해 가는 일상은 지난했으나, ‘언어를 옮겨주는 일’이 필요하다면 어디든 닥치는 대로 해 내느라 내 프리랜서의 삶은 늘 새로운 분야,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비즈니스를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어떤 날은, 전 세계 성인용품 판매 2위 독일 제조사의 매니저와 한국 총판을 따낸 대표님과 영등포, 강남 등지의 성인용품 판매처에서 다소 민망한 신제품 시연을 통역하고, 또 어떤 날은 전등 스위치에 붙이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Apple社 인증을 따내기 위한 미팅을 통역했다. 2년 전에는 나이지리아와 케냐에서 활발하게 건설업을 하는 한국 기업의 회장단과 나이지리아, 케냐 대통령 개별 면담을 통역하느라 국가 보안요원들의 삼엄한 경호 아래 롯데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 떨며 앉아 있었다.
지난 14년간 통역을 하면서 접하게 된 새로운 분야, 산업, 비즈니스 스펙트럼은 6개월 단위로 아찔하게 바뀌면서 특정 산업군에 치우치지 않고 반도체 공장의 생산라인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광고캠페인의 크레이티브를 영어 PT로 구현해 내는 등,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번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주제를 접하면서 대부분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에 그 분야의 핵심을 꿰뚫고 통역 자리에 나가야 했다. 자료가 주어지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미팅 주제와 회사 이름만 알려줄 뿐, 담당자가 어느 국적의 사람인지, 이름은 무엇인지조차 알기 힘들었다.
내가 통역해야 할 대상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확보하고 가도 현장에서 내가 알 수 없는 얘기들이 오고 가기 때문에 통역자리는 늘 터지기 직전의 긴장으로 가슴을 꽉꽉 채우고 앉아 있어야 한다. 그나마 담당자의 이름을 구글과 Linked In 같은 SNS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출연한 유튜브 동영상을 미팅 직전까지 보면서, 상대의 영어 억양과 말투, 습관에 내 귀를 최대한 노출시키고 간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많지 않다. 대부분은 평소 나의 실력과 집중력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트라우마처럼 남은 몇 년 전 폭삭 망한 통역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각 통역마다 시험 공부하듯이 내가 찍은 분야와 주제에서 얘기들이 나왔고, 통번역대학원 출신은 아니지만 대기업, 공기업 등에서 직장생활을 해 본 경험치로 한국의 조직문화와 비즈니스 생리에 잘 맞춰진 통역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번 새로운 분야와 세계로 다이빙하듯이 뛰어들어서 짧은 시간에 밀도 있게 알아가는 것이, 늘 나의 안온한 울타리 너머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내 성격에 잘 맞았다. 극 외향적인 성격인 나는 새로운 분야에 열정과 통찰력을 가진 고객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지경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대가를 지불하면서 세상 이치와 지혜를 가르쳐주고 영어를 계속 쓰면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계속 성장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니, 나름의 고충이 많지만 프리랜서로 일하길 잘했단 생각을 하며 지냈다. Chat GPT 같은 AI만 아니면, 나의 타고난 성격과 호기심, 일에 대한 열정 덕에 내 마음껏 ‘단어를 부리며’ 지루할 틈이 없는 내 일을 계속 신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최근 있었던 3일간의 통역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2.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미국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라고 했다. 전 세계 라이브 콘서트를 주관, 운영, 프로모션 하는 회사인데 K-Pop 아이돌이 소속된 에이전시들과 계약 관련 미팅을 하는 자리에 3일간 같이 다니면서 통역을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미팅 3일 전 이메일로 받은 통역 의뢰서에는, 미국본사에서 참여하는 부사장 두 명의 이름, 미팅장소와 시간이 찍혀 있는 일정표가 전부였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첫째, 아무리 한국에 지사가 없다지만 본사에서 부사장 두 명이 오는데 한국에서 대응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것, 그리고 k-pop 아이돌들의 해외 공연과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회사에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십 년이 넘게 통역을 하면서 내가 가장 꺼리는 상황은 두 가지이다. 통역을 하는 자리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끼는 것, 그리고 얼굴을 볼 수 없는 콘퍼런스 콜에서 전문 용어가 오고 가는 기술 미팅을 하는 것이다. 지난 통역에서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호되게 겪고 얻은 것은, 예전 비즈니스의 전후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영어를 잘하는’ 실무 담당자들이 배석하는 자리에 통역이 끼면 통역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아주 애매한 상태가 된다는 것, 그리고 얼굴 표정도 볼 수 없는데 상대의 영어 억양에 적응도 못한 채 (상대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경우) 어려운 기술 관련 이슈를 계속 통역해야 하는 것도 재앙에 가까운 상황이다.
그나마, 내가 이 통역을 할 수 있겠다 느낀 것은, 온라인 회의가 아니었고 내게 제일 익숙한 북미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 1명과 호주인 1명(그나마 이메일에 나온 이름을 뒤져서 알아낸 정보)을 주로 대하면서 이들이 한국 에이전시 담당자들과 소통이 원활하도록 도와주면 되는 역할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k-pop 아이돌 월드 투어 관련 미팅이라니, 솔직히 반도체 포장 비밀 납품 업체의 통역보다 회의 어젠다부터 신나지 않은가!!!!!
사실,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 바이어, 관계자들과의 미팅 통역 때, 내가 음악처럼 접했던 북미식 영어를 구사하는 찐 ‘미국인’을 만난 일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나이지리아 대통령 통역 때는 나이지리아 국영 방송을 끼고 살고, 이탈리아인 통역할 때는, 이탈리아인이 영어로 현지 법인설립과정을 설명하는 영상을 종일 틀어 놓으며 고생했던 걸 떠올리면서 광화문 호텔로 미국인 부사장을 만나러 가는 난, 내심 기대했다. 회의 주제도 어렵지 않고, 영어 악센트도 문제없으니 3일간 예전의 통역과 달리 덜 스트레스받으며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행복 회로를 돌렸다. 그러나, 왠지 마음속 깊은 구석 ‘영어를 못하는 사람’ 찾기가 힘든 상황이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쌔한 기운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아… 아니나 다를까, 나이를 먹으면서 쌓이는 쌔한 기운의 ‘촉’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미국인 여자 부사장은 상냥하고 친절했지만, 한국에서 이 회사를 도와서 오랫동안 같이 일해 온 한국 에이전시 회사가 있었고, 그 회사의 대표와 직원들이 모든 미팅에 다 같이 참여를 했다.
미국회사 입장에서도, 지금까지는 한국의 현지 에이전시의 직원들과 늘 같이 다니며 k-pop 아이돌 회사의 해외프로모션 담당자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해왔기 때문에 한 번도 통역을 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외부 통역사를 고용한 것은, k-pop 에이전시의 대표, 임원급들과 미팅을 할 때, 혹시 영어가 불편한 상황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그리고 한국인들끼리 얘기가 오갈 때 모든 말이 통역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맥락을 적절히 눈치껏 통역을 해주길 바라서였다.
전 세계 굴지의 공연기획사가 자신들의 콘서트에 한국 아이돌 그룹을 섭외하기 위해 ‘의전용’ 통역사를 대동해서까지 한국 공연관계자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한다는 점이, 그동안 서구권 회사의 VIP들을 위해서만 통역을 했던 상황이 역전된 셈이었다. 통역을 하면서, 한국의 팝컬처 영향력이, K-POP의 위상이 이렇게 강렬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내 안에 나도 모를 역사적 피해의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과 을이 바뀐 듯한 상황에 한국인으로서는 짜릿함(?)이 있었지만 미국회사를 대변해서 통역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한국인’들이, 내가 가장 많은 눈치를 봐야 할 ‘갑’이었다. 한 달에 반 이상을 아이돌들과 함께 해외투어를 다니는 실무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업무를 대신 설명해서 말해야 할 땐, 묘한 긴장감과 기싸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하여 ‘만일을 위해 고용된’ 나는 3일간 서울의 용산, 홍대, 상암, 청담에 있는 회사들을 오가며 내가 모르는 예전 협력프로젝트를 줄줄 꿰는 한국인 직원들 사이에서 입을 뗄 때마다 ‘얼마나 잘하나’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내가 아는 선에서 통역을 하면, 이 업계에 20년 이상 비즈니스를 해온 한국 에이전시의 대표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업계의 뒷이야기를 버무려 영어로 보충을 하셨다. (알고 보니 이분은 한국계 교포이셨음)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그분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과 견줄 수 없었고, 그렇게 할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 임원들은 거의 다 알아듣는 것 같은데 그걸 또 통역하면 기분 나빠할 것 같고, 어떤 부분은 못 알아들어서 나한테 묻고, 손은 끊임없이 회의 내용을 요약해서 적어댔지만, 머릿속은 어느 타이밍에 끼어들어서 통역을 해야 하는지 눈치 보고 분위기 살피느라 길지 않은 회의 시간이어도 진이 빠지긴 마찬가지였다.
14년 동안 쌓은 나만의 통역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난관 속에서, 나는 3일간 고군분투했다. 영어를 애매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끼어 있는 회의가 어떨지 예상했던 어려움과 3일간 입을 뗄 때마다 평가받는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 사이에서 나의 ‘언어 단지’는 혼돈 그 자체였다.
내 머릿속 영어와 한국어의 ‘단어 단지’ 속에 같은 뜻을 찾아 연결해 주는 화살표가 엉키면서 적확한 단어가 적절한 시점에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 때마다 자꾸 꽝이 나오는 기분이었다. 한번 잃어버린 자신감은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하게 진행될 거라 믿었던 (믿고 싶었던) 미팅에서 좀체 살아나지 않았고, 나는 내가 해왔던 통역들 중 가장 작은 목소리로 그 어떤 확신도 없이 위스퍼링 통역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다 미국의 티켓몬스터란 회사의 티켓 판매 독점 행태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지난 주말 내내 미국공연산업 근황에 대한 기사를 찾아본 나는 미사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미 사법부의 독점판매조치에 관한 부분은 그 자리에 있던 어떤 관계자도 나만큼 알고 있진 않았다. 내가 한국어로 된 기사를 읽어 주는 것처럼 통역을 끝냈을 때, 한국 회사의 임원 분들은 ‘오…..’라고 소리를 내며 얼굴엔 새롭고 중요한 정보를 얻은 표정이 가득했다. 그때가 3일간의 통역 중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3. 그림자에는 영혼이 없어요.
통역을 한다는 것은, 무대에서 철저히 그림자가 되는 삶이라고 했다. 주인공들이 그저 찬란하게 빛나도록 그들의 입이 대신되어주는 역할 말이다. 예전의 한 지인이, 더 이상 ‘그림자’로 살고 싶지 않아서 통역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게 어떤 종류의 답답함이나 좌절감을 품고 있는 말인지 잘 몰랐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언어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이의 입이나 번역기의 도움 없이 내가 ‘부리는 단어’들로 외국어를 쓰는 세계에 들어섰을 때, 뿌연 가림 막이 씌어진 상태가 아니라 언어가 살아 있는 세계의 본질을 생생하게 마주한 느낌. 나의 언어로 현지의 온도와 습도를 느끼고, 사람들과 웃음을 주고받고, 감사를 표현하고, 감탄하는 그 순간의 소통. 경계선 너머의 새로운 무언가를 늘 찾아 헤매는 나에게 그 ‘소통’의 순간은 그 어떤 성취감보다 값지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나에게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하는 고객들에게 나는 그들에게 내가 발견하고 느끼는 만큼 고객들이 똑같이 느꼈으면 했다. 작은 중소기업의 사활을 건 절실한 계약에서 민감하고 복잡한 이슈, 상대측의 뉘앙스 등을 내가 포착한 만큼, 나의 고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고용한 고객들이 내가 ‘대표님과 같은 마음’으로 통역을 한다는 것을 알아주는 게 가장 중요했다.
신흥 마피아 조직의 보스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이탈리아인 매니저도, 그 매니저의 기에 눌려 회의 내내 긴장했던 한국인 대표님도 마지막엔 내가 전해주는 말과 분위기로 화기애애하게 끝이 났고,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애플사의 중국인 담당자에게 끈질기게 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주고받은 나에게 한국 중소기업 사장님은 무한 신뢰를 보냈었다. 그런 신뢰와 지지 속에서 형성된 라포(rapport)가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란 것을 3일간의 통역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이전의 다른 그 어떤 통역일보다 더 잘 해내고 싶었고, 고객의 신뢰와 인정을 받고 싶었던 이번 일은 역설적이게도 매 순간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맞는가, 끊임없이 되물어야 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자격미달’이란 꼬리표를 스스로 달고 말이다.
통역사는 ‘철저히’ 그림자로 충실해야 한단 말에는 내가 추구해 왔던 그런 ‘라포’가 없다. 감정을 철저히 배재한 채, 정확하고, 적확한 단어와 표현을 전달하는 역할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물론 통역의 기본을 논하자면 무조건 맞는 말이다. 언어를 해석하고 재창조해서 전달하는 과정의 매개자로서 가장 근본적인 자질은 ‘사실’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실력이란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그림자’로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Chat GPT 등의 AI가 발전하면 할수록 제일 먼저 대체될 직업으로 늘 거론되던 통역, 번역이 AI처럼 사실 전달에만 충실하다면 그 그림자의 역할을 AI가 맡게 될 것이다. 사실 기술서, 의학서 등의 분야에서 AI가 주도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건 이미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현실이다. AI의 기술을 이용해 고래들의 울음소리를 10년간 모아서 일정한 규칙을 찾아 고래 언어의 알파벳을 만든다든지, 화석처럼 굳어버린 고대 파피루스 문헌의 문자들을 투시로 읽어 내용을 알아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기술의 천문학적인 효율성에 압도되지만 찰나 같은 짧은 순간, 다른 언어가 오고 가는 시공간의 매개체로 우뚝 서서, 정보뿐만 아니라 감정과 맥락을 이어주는 역할을 AI가 해 낼 수 없으리라 확신이 있다.
최근 몇 년 간, AI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 내가 한국어, 영어로 하던 성우 일도, 통번역 일도 1/3로 줄어든 때가 있었다. 단편적으로, AI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내가 해오던 일을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다 맡은 일도 잘 안 풀리거나, 견적을 자꾸만 깎으려고 하는 고객들과 씨름할 때마다 이 모든 것이 AI 때문이라며 타박을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연 이 모든 것이 AI 때문 일까를 의심하기도 하고, 지옥의 끝판왕 같은 이미지로 AI를 미워하다가, 인정했다가, 이제는 애써 무감정의 상태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시기가 된 듯하다.
더불어 한창 일을 많이 할 때에 비하면,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 간헐적으로라도 일을 이어가며 AI와 전쟁 치르듯이 최근 2년을 보내면서 ‘나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무엇인가, 나는 왜 아직도 이 길을 걷고 있나’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많아졌다.
4. 언어의 교각
AI의 발전 기술을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우주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오로지 빛만이 따라잡을 수 있는 ‘광년’의 시공간만 해도 압도적인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별들이 속한 우리 은하의 지름이 10만 광년이라고 했다. 그런 은하가 우주엔 수 천 억 개가 존재한다는데, 우리 은하에서도 작디작은 태양, 지구는 그 작은 태양의 1만 20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 작은 지구에서도, 작디작은 나라, 한국에 살고 있는 나란 존재의 하찮음을 머릿속에서 계량하다 보면, 우주처럼 광활한 언어의 바다에서 그야말로 하찮게 헤엄치고 있는 내가 떠오른다. 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내가 속한 언어의 바다도 점점 확장된다. 온갖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이 떠다니는 깊고 광활한 언어의 바다에서 내 손에 걸리는 단어들을 주섬 주섬 주워서 낡고 오래된 망태기에 넣는다.
언어 전달자로써 내가 가진 도구는 AI처럼 세련되지도 압도적이지도 않지만, 혼란과 무기력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깨달은 나의 정체성은 ‘단어를 부리는 사람’이다. Chat GPT처럼, 질문에 엔터를 치자마자 속사포처럼 답을 쏟아내는 기능은 할 수 없지만,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내가 부리는 단어들로 새로운 뜻과 힘, 에너지를 가진 단어를 조합하여,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던 이들이 내가 놓은 다리로 만나는, ‘소통’하게 되는 그 순간을 지향하는 사람 말이다.
십 년이 넘게 한 분야에 매진하면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일을 할수록 ‘완전함’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던 나의 자신감, 깜냥이 지난 3일간의 통역을 통해 산산이 부서지고 다시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단어들을 부리며 살아야 할까?
AI와 같은 수준의 통역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통역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드는 언어의 교각은 오작교 같은 물성이었으면 좋겠다. 다리 건너편에 서 있는 이들의 서사와 간절함으로 만들어진 다리, 다른 차원에 존재하던 이들이 만나서 소통할 수 있게 없던 길을 만들어 주는 다리 말이다.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의 광활함에 압도되어, 미립자보다 더 작은 내 존재를 부정하기보다 지금 내 눈앞에 반짝이는 별 하나에 나의 단어를 붙여본다. 다른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아도, 어디선가 나름의 색과 온도로 잗다랗게 빛나고 있는 별처럼, 내 언어의 우주 속에서 그러모은 단어들도 제각각 빛을 내고 있다.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나는 나의 별이 빛나는 곳에 서 있을 것이다.